배우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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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인간
  • 김정희
  • 승인 2012.04.0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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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김정희 / 시인


신문을 들추다가 '조지 클루니'의 사진에 시선이 멎었다. 그가 체포되는 모습이었다. 세계적인 배우이자 감독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다니, 어떤 영화의 한 컷이 아니겠냐고? 아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조지 클루니는 수려한 외모와 카사노바형 연기로 인해 호색가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그는 기성 가치관에 반박하면서 삶을 진지하게 관조하도록 하는 영화 제작에 줄곧 참여해 왔다.

미국의 중동 석유산업 전략에 얽힌 군산복합체의 비열함을 그린〈시리아나>, 매카시즘의 내막을 파헤친〈굿나잇 앤 굿럭>, 직업과 인생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인 디 에어>, 정치판의 본질적 생리를 고스란히 드러낸 <킹메이커>, 가장의 역할과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디센던트>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조지 클루니는 뚜렷한 사회철학을 가진 소셜테이너(Socialtainer)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인권과 평화를 위해 발로 뛰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그가 반인륜 범죄를 일삼는 수단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다 체포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닌 셈이다.

미국에는 클루니처럼 각종 사회문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배우가 많다. 먼저 소셜테이너의 원조 격인 험프리 보가트와 인디언 차별정책에 항의하는 뜻에서 영화 <대부>로 받게 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부하고 항의 성명서를 낭독케 했던 말론 브란도를 꼽을 수 있다. 제인 폰다는 반전운동을 벌였고 오드리 헵번은 아동인권운동,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에이즈 퇴치운동에 헌신했다.

또 리처드 기어는 티베트 독립운동을, 수잔 서랜든과 팀 로빈스는 인권운동을,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는 아프리카 빈곤퇴치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데미 무어는 아동 성노예와 인신매매 근절운동을 하고, 숀 펜은 아이티 구호활동으로 노벨상 수상자 총회에 의해 2012년 ‘평화의 인물’로 선정되었는데, 이들 외에도 사회 참여 배우들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나는 인류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이런 인물들이야말로 미국을 리드하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미국은 부러운 대상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이 같은 자산이 미약하다. 수년 전부터 소셜테이너들이 등장하였으나 소수에 불과한데다 미국 영화계와 달리 누구나 알만한 인물은 드문 실정이다.

세계의 영화판을 흔드는 미국의 초특급 배우들이 너도나도 세상의 낮은 곳으로 눈을 돌리고 더불어 살기를 실천하는 동안, 우리의 유명 배우들은 구별 짓기에 매몰된 채 이미지 쇼에만 눈멀어 있는 건 아닌지.(아, 우리의 유명 배우들이 종교, 정치적 성향을 떠나 몸소 행동에 나설 때도 있다. 본인들의 밥그릇과 직결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운동!) 
  
숀 펜이나 김여진이 사회운동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것은 세간의 주목을 받아 더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배우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당대의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고찰하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자기 능력의 일부를 바치고자 함이다.   

이제는 판박이 시상식이나 집 자랑질 하는 연예 프로에서 말고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하는 민들레 국수집에서, 청춘들이 등록금 때문에 삭발하는 현장에서, 쌍용자동차 희망텐트에서 '유명 배우'들을 보고 싶다. 한국 정부가 유네스코 지정 생태 보존지역인 제주도 강정마을을 해군기지화 하는 것에 대해 미국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성토하고 나섰다. 우리 문제에 관해서 우리는 왜 송강호나 최민식의 사자후를 들을 수 없는가.

사회운동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가 되어 대학입시에서 주요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기업들 역시 능동적으로 실천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그런 만큼 한국 배우들도 소신껏 나서야 한다. 배우는 좋은 연기로 관객에게 보답하면 그만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할리우드 배우들의 폭넓은 사회운동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한다. 

배우는 보다 성숙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며 체험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축적된 경험들은 창조의 씨앗이 되고 좋은 연기는 바로 거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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