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낙오, 함께 하는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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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낙오, 함께 하는 승리
  • 공주형
  • 승인 2012.04.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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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공주형 / 미술평론가, 인천대 초빙교수

이제 경쟁이 끝났습니다. 승패가 갈리는 순간입니다.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환희의 함성과 축하의 박수가 터져 나오겠지요. 하지만 모든 승리가 그런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이동욱(1976~   ) <위대한 탄생>의 승리는 남다릅니다. 벅찬 감동이 아닌 깊은 공허에 휩싸인 그것입니다.

민머리 작은 체구의 인물이 오늘의 승자입니다. 몸집 전체가 성인 손가락 하나를 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 각인된 표정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성취감이 아닌 허탈감입니다. 세세한 표현이 가능한 스컬피라 불리는 재료의 미덕에 덧붙여진 작가의 상상력과 통찰력의 힘입니다. 무엇 때문에 목적한 바를 이루고도 그는 공허함에 기진맥진한 것일까요.


이동욱, 위대한 탄생

그 이유를 경쟁 과정에서 찾아보기로 합니다. 경쟁의 무대는 흡사 처참한 범죄 현장과 같습니다. 흥건한 붉은 피와 수직으로 꽂힌 노란 검이 살벌한 경쟁의 얼개를 드러냅니다. 책상 위에 푸른 빛 모차르트 초콜릿 상자가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앞에 줄지어 놓인 내용물이 달콤한 초콜릿이라 섣불리 단정지어서는 안 됩니다. 반짝이는 은박 종이에 포장된 것은 무찔러야 할 경쟁자입니다.

<위대한 탄생>의 자격은 한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제일 먼저 은박 포장을 풀고 나와 나머지 경쟁자를 살해한 후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승리는 이런 경쟁 과정을 거쳐 쟁취한 것입니다. 미처 포장을 풀고 나오지 못한 상대방에게 칼을 꽂기도 했고, 두 팔을 뻗어 격렬히 저항하는 경쟁자도 잔인하게 제거했지요. 그런 경쟁의 방법이 정당한 것인지 헤아려 볼 겨를은 물론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경쟁자를 물리친 후 그는 헤아려 보기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승리의 순간에 깃든 정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요. 결과에 승복하는 경쟁자도 없고, 그것에 열광하는 지지자도 없는 승리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요.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습니다. 여야의 진영싸움, 네거티브 공방전, 후진국형 선거 등…. 치열한 공천경쟁으로 초반부터 과열 양상을 보였던 선거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인류가 나아가야 할 미래 사회에 대해 발언해 온 제레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에 이어 경쟁의 종언을 고했습니다. 끝이 난 것은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법칙이 지배했던 지난 시대의 경쟁 방식일 것입니다. 의미 있는 낙오, 함께 하는 승리에 대해 성찰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경쟁은 늘 위대하지 못한 <위대한 탄생>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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