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부귀는 뜬구름과 같다
상태바
불의의 부귀는 뜬구름과 같다
  • 이우재
  • 승인 2012.06.01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우재의 공자왈 맹자왈]


5월 30일로 19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선출된 분들이라 4년간 대한민국의 국정을 이끌어가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믿고 싶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제수를 겁탈하려 한 사람, 남의 논문을 베껴 자신의 학위 논문이라고 제출하고는 태연히 교수 노릇 한 사람, 온갖 부정과 협잡을 통해 비례대표 경선을 통과해 놓고서는 50%나 70%가 되어야지 부정선거라며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까지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라는커녕 제 집안조차 다스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사전에 충분한 정보가 주어졌더라면 대한민국 국민이 이런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았을 리 만무하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갖는 한계가 그대로 노정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궁금해지는 것은 도대체 국회의원이 무엇이기에 그 자리에 그렇게 연연하는가 하는 점이다. 선거가 끝나고 이들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한 달 반 동안 모든 국민이 이들을 비판하고 자진 사퇴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이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 긴 한 달 반을 모르쇠로 버티었다. 정상인이라면 제수를 겁탈하려 했다가 발각되었다면 부끄러워 얼굴도 못 들고 다닐 텐데…. 정상인이라면 부정선거가 발각되었다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만사를 국민의 처분에 맡길 텐데…. 도대체 국회의원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양심까지 내던지며 그것을 얻으려 하고, 온갖 수모를 다 견뎌가며 그 자리를 그렇게 지키려고 하는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거친 밥에 물을 마시고, 팔베개를 하고 자더라도, 또한 즐거움이 그 속에 있으니, 불의의 부와 귀는 나에게 뜬 구름과 같도다”(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논어』「술이」) 모두들 부귀영화에 목숨을 걸지만 부귀영화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몸 밖의 물건(身外之物)일 뿐이다. 그러니 불의로 얻은 부귀가 저 흘러가는 구름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맹자가 말했다 “구하면 얻을 수 있고, 버리면 잃는다. 이런 것을 구하는 것은 얻는데 유익하니, 구하는 것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구하는 데 법도가 있고, 얻는 것은 명에 달렸다. 이런 것을 구하는 것은 얻는 데 무익하니, 구하는 것이 내 밖에 있기 때문이다.”(孟子曰 求則得之 舍則失之. 是求有益於得也 求在我者也. 求之有道 得之有命. 是求無益於得也 求在外者也-『맹자』「진심상」)

인의(仁義)는 내 안에 있으니 내가 얻고자 하면 바로 내게 이른다(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논어』「술이」). 부귀영화는 내 몸 밖에 있으니, 내가 바란다고 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死生有命 富貴在天-『논어』「안연」). 또한 남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남이 뺏어갈 수도 있다(人之所貴者 非良貴也 趙孟之所貴 趙孟能賤之-『맹자』「고자상」). 그리고 바란다고 해서 함부로 추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은 한 가지라도 불의한 일을 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비록 천하를 얻는다 하더라도 하지 않았다(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 皆不爲也-『맹자』「공손추상」). 국회의원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천하를 얻는 것만이야 하겠는가? 그런데 고작 그걸 얻기 위하여 자신의 양심마저 내팽개치다니….
 
“제나라에 처와 첩 한 사람씩을 두고 한 집에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 남편은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 돌아왔다. 그 처가 그 음식을 함께 먹은 사람을 물으면 모두 부하고 귀한 사람들이었다. 그 처가 첩에게 말했다. ‘남편이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 돌아오는데, 그 음식을 함께 먹은 사람을 물으면 모두 부하고 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온 적이 없으니, 내가 장차 남편이 가는 곳을 엿보고자 한다.’ 일찍 일어나 남편이 가는 곳을 샛길로 따라갔다. 국(國) 안을 두루 다녔으나, 아무도 그와 함께 서서 말하는 자가 없었다. 마침내 동쪽 성곽 무덤 사이에서 제사지내는 사람에게 가 그에게서 먹고 남은 음식을 얻어먹었다. 부족하면 또 살펴보다 다른 곳으로 갔다. 이것이 그가 실컷 먹고 다니는 방법이었다. 그 처가 돌아와 첩에게 이르기를 ‘남편이란 게 우러러보며 평생을 함께하는 사람인데, 지금 이 꼴이라니!’하면서 그 첩과 함께 남편을 원망하며 뜰 가운데서 울었다. 그런데도 그 남편은 으쓱대며 밖에서 돌아와 그 처첩에게 자랑하는 것이었다. 군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이 부귀영달을 바라는 방법이 그 처첩을 부끄럽게 하지 않고, 또 울리지 않는 것이 드물다.”(『맹자』「이루하」)

부귀영화를 꾀한다고 처첩을 부끄럽게 하고, 울리는 것 또한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김영태, 문대성, 이석기, 김재연이 이 이야기 속의 남편과 다른 것이 무엇이 있는지…. 아니 그래도 이 남편은 남을 해치지는 않았는데, 이들이 과연 이 남편 앞에서조차 얼굴을 똑바로 들 수 있을런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