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모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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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모성에 대하여
  • 양진채
  • 승인 2012.08.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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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양진채 / 소설가


얼마 전 조카가 아이를 낳았다. 간호사가 아이를 데려왔을 때 어디를 만져야 할지 몰라 아기 손에 겨우 손만 대보았다면서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여리고 어린 손에 가만히 손을 대보며 그 부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며칠 전에는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았다. 린 램지 감독의 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가 주연인 영화였다. 이미 책으로도 나와 있었다.

세계여행 전문가였던 주인공 에바는 뜻하지 않은 임신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출산을 해서도 아이를 얻은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에바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가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에바를 조롱이라도 하듯 어르고 달래고 유모차에 태워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기 앞에서 좌절한다. 끊임없이 엄마의 인내심을 실험하고 조롱한다. 에바는 남편에게 아이에 대해 얘기하지만 아빠 앞에서는 착하기만 하는 아들을 보고 아내가 신경이 예민하다고만 생각한다. 아이가 지닌 폭력성은 결국 끔찍한 비극을 부르고 에바는 사회적으로도 배척을 당한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는 나도 모르게 어깨가 무거웠다. 주인공 에바의 텅빈 표정, 교활한 그의 아들 케빈의 표정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영화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케빈의 반사회적 행동을 임신을 반기지 않고 출산을 두려워했던 에바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임신의 두려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오로지 아이에게만 매달려야 하는 삶. 크고 작긴 하지만 임신을 경험한 여자들은 모두 느끼는 공통점일 것이다. 

나 역시 임신 중에는 우리 아이가 열 손가락 제대로 가지고 태어날까 걱정했고, 아이가 태어나서는 양질의 젖이 잘 나올까 걱정했다. 혹여 잠결에 아이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늘 신경이 깨어 있었다.  그 걱정도 잠시, 아이는 두 시간마다 젖을 달라고,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울었다. 첫째 낳고 한동안은 누가 아이를 대신 하루만 키워주고 12시간 푹 자보는 게 소원일 정도였다. 

아이가 태어남으로 인해 급격하게 변한 환경, 온 신경을 아이에게 쏟아야 하는 삶으로 많은 산모가 산후우울증에 시달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것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야 할 것인가. 

꽤 많은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거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결혼이라는 굴레로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다. 실제 출생률 저하는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다. 

이제는 출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수태했다는 것만으로 당연한 모성을 요구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품었다는 것만으로 애정이 생긴다면 지금도 일어나는 수많은 가정폭력이나 범죄가 왜 일어났겠는가. 영화 속에서 에바의 말에 남편이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다면 사태는 달라졌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급격한 환경변화, 몸의 변화에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산모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조카가 아이를 낳은 지 2주째 접어들고 있다. 아이를 낳은 뒤 온 몸의 뼈와 장기가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시간이 필요하듯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가 새삼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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