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코드 광장의 구경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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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드 광장의 구경거리
  • 공주형
  • 승인 2013.02.2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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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공주형 / 미술평론가, 인천대 초빙교수
특별할 것 없는 어느 한 날 파리 시내의 광장입니다. 드가(Degas, Edgar 1834-1917)의〈르픽 자작과 어린 두 딸〉혹은〈콩코드 광장〉의 무대는 ‘거창한 변형’이라 불리는 개조 사업 후 19세기 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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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가, 콩코드 광장, 1875
파리가 중세의 분위기를 벗어나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입니다. 파리 개조 사업의 밑그림은 프랑스 제2제정기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 3세가 그렸고, 센 지사 오스만이 그 위에 색을 입혔습니다. 1853년에서 1870년까지 대략 공사비 25조 프랑이 소요될 정도로 파리 개조 사업의 규모는 컸습니다.
1820년을 전후로 파리에는 직물, 중공업, 화학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각지에서 몰려든 이들로 도시는 몸살을 앓고 있었지요. 인구는 넘쳐났지만 불결한 위생 상태는 날로 악화되어만 갔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했고, 폭동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파리 개조 사업은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이었습니다.
1850년 나폴레옹 3세는 도심 재개발 사업에 대한 연설에서 “새 길과 유익한 햇빛”을 약속했습니다. 파리 개조 사업의 명분이 도시 미화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체계적인 교통망 구축을 핵심으로 한 파리 개조 사업은 잦은 소요와 같은 불온한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고, 진압할 수 있는 묘안이기도 했습니다.
파리 개조 사업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특수한 상황과 나폴레옹 3세의 정치적 야심이 빚어낸 합작품이었습니다. 도심 재개발 후 파리에 많아지고, 넓어진 것은 가스등의 숫자와 도로의 너비만이 아니었습니다.
도시의 구경꾼들은 철과 유리를 이용한 건축 구조물을 통해 쉽게 볼거리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거리의 행인들은 카페 실내의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불빛을 확인했습니다. 철제 발코니에 앉아 아파트의 거주자들은 바깥세상 풍경을 주시했습니다. 거리에서 실내를 들여다보고, 집안에서 실외를 내다볼 수 있는 파리를 벤야민은 ‘마술환등’의 세상이라 표현했습니다.
이런 세상 구경에 적합한 장소로 사방이 트여 시야가 확보된〈콩코드 광장〉만한 곳이 있을까요. 나이와 성별, 관심사와 눈높이가 다른 르픽 자작 일행의 시선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25개로 정비된 노선을 따라 질주하던 사륜합승마차일까요. 거리에 운집한 군중들의 물결일까요. 인근 공원에서 이따금 울려 퍼지던 군악대의 연주일까요. 주인을 따라 광장에 산책을 나온 또 다른 애완견일까요.
〈콩코드 광장〉에서 그 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짐작 가능한 것은 이들 주변에 놓여있을 구경거리들의 다채로움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일행은 알고 있을까요. 자신들 또한 풍성한 도시의 볼거리 중 하나라는 것을요.〈콩코드 광장〉에는 흥미로운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신기한 구경거리에 정신이 팔린 르픽 자작 일행을 구경하는 키다리 신사입니다.
2월 초 암 투병 중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무대에 설 기회를 얻어 활동을 펼쳐 온 한 음악인이 타계했습니다. 말기 암 판정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곧 삶에 대한 그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암세포만이 아니었습니다. 악플이기도 했습니다. 익명의 악플러들은 그의 병을 의심했습니다. 기회를 얻기 위한 거짓이라는 것이었지요. 그의 희망도 조롱했습니다. 거짓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면이라는 것이었지요. 그의 병과 희망은 악플러들의 주장처럼 거짓도 가면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타계 후 고인과 남겨진 가족을 향한 희화와 막말은 계속 되었습니다.
21세기 광장의 볼거리는 자극의 강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콩코드 광장〉의 등장인물들처럼 머리와 팔의 일부, 심지어 아예 반쪽만 모습을 드러낸 행인들처럼 온전히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누군가의 사생활, 누군가의 진심까지도 신나는 구경거리로 광장에 내걸립니다. 충분히 알지 못하는 남의 불행, 남의 절망을 일회용 오락거리로 소비해 버린다면 나의 고통, 나의 실수 또한 결코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짐멜은 대도시의 삶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노동과 직업의 세계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을 기회’에 주목한 바 있습니다. 인격적 관계가 점점 더 상실되어 가는 오늘날 우리가〈콩코드 광장〉기억해야 할 것은 르픽 자작 일행을 향한 키다리 신사의 시선일지 모릅니다. 더 이상 우리의 삶이 소란스러운 저잣거리에 노골적으로 전시되고, 불특정다수의 동시대인들에게 적나라하게 구경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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