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은 민주적 대의의 표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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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민주적 대의의 표현인가?
  • 박인옥
  • 승인 2009.12.22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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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옥 (공존회의 운영위원/전 공동대표)

여론이 시민의 소리라는 데 크게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론은 방송과 신문의 정보를 통해 형성되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어 개인의 의사를 집단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시민 스스로 직·간접적인 행위의 주체자로서 저항하고, 때론 조정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론은 곧 ‘시민의 소리’라고 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정보는 특정계층이나 조직, 공간에서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공개되고 공통의 것으로 소유되어야 한다는 욕구와 경향이 확산된 결과이다. 특히 컴퓨터 보급이 보편화하면서 여론은 다양한 그룹과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되어 민주적 대의를 구축해나가는 메카니즘의 경향성을 갖게 되었다. 

수평적 여론형성의 공간, 인터넷
 
특히 시민이 소통과 행위의 공간이자 주체성을 인식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은 것은 인터넷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모인 촛불집회가 여론형성의 직접적인 주체자로 등장한 것도 새로운 여론생산의 집단적 네트워크 공간을 형성한 메카니즘이다. 여론은 인터넷을 통해 촛불을 제안하고, 시민 스스로 그 제안을 현실화함으로써 광장을 표현의 공간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사회의 각종 부조리와 부당한 사건을 폭로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관련 기관의 사이트에서 조직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항의하며 여론을 형성한다. 그 여론의 영역은 특정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교육, 경제, 정치, 역사문화, 예술 등 폭넓은 영역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각자의 선호와 공통의 것을 교환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런 흐름은 개인의 의사를 사회의 여론으로 표현할 수 있는 통일된 공간을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우리 사회 수평적 여론형성의 문화가 폭넓게 확산되고, 그러한 공간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방송과 신문, 인터넷이 제공하는 공급자 중심의 독점적 정보가 수동적으로 사회여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하였다면 이제는 시민이 정보를 직접 생산함으로써 공급자인 동시에 소통을 통해 정보를 분석, 해결하는 수요자로서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여론은 민주적 대의의 표현인가?
긴장관계의 생산물, 통제와 역동성

그렇다면 신문, 방송, 인터넷 등 여론형성의 역할은 사회의 공적인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장소로, 공간으로 민주적 대의의 관념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민주적 대의의 관념을 이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민주적 대의라는 이름으로 특정 이해집단에 의해 여론조종이 가능해지거나 도구로 전락하는 경향성을 묵인하고 방치할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민주적 대의의 표현이라는 여론이 삶의 저항으로 유효적절하게 작동하고 있는가?

방송과 신문, 인터넷 기사는 긴장관계를 통한 생산물이다. 긴장관계 속에서 생산되는 기사는 때로 역동적일 수 있으며, 새로운 것을 생산하기 위한 과정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긴장관계는 역동성보다는 통제에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언론사 내 경영진과 기자, 경영진과 데스크, 데스크와 기자, 기자와 기자 간 긴장관계에서 기사는 통제된다. 정치권과 언론사, 기업과 언론사, 그리고 이들과 시민단체간에도 긴장관계가 형성되고, 기사가 통제되기도 한다.

정파성은 생존을 위협하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긴장관계가 형성되는 요인과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정파성’이다. 언론의 주요기능인 객관성, 중립성의 문제는 ‘정파성’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는다. 어느 토론회에서 한 언론학자는 한국의 주요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재미있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한국의 언론이 진보와 보수로 구분되어 있음을 가정하고, 그러한 성향을 보이고 있는 주요 언론사 기자들을 대상으로 ‘정파성’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그 결과 보수 신문은 정파성의 문제를 ‘이념적 양극화’의 문제로 이해하였고, 진보신문은 ‘정치적 편향성’의 문제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언론의 정파성은 정권과 언론의 역사적 관계와 구조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좌파 정부인가 우파정부인가를 규정하여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언론의 태도, 그리고 언론과 언론사를 통제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들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정파성을 논하는 핵심이라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정치적 표현에 대한 정치권과의 긴장관계를 의미하며, 긴장관계는 자본의 진입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언론을 통제하기 위한 빌미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기능하였다는 점에서 정파성 논의의 출발이 되어야 할 터이다.

인천에 정파성은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방 언론에는 ‘정파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지방언론의 정파성은 지방정부와 어떤 구조 속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여론은 진정 민주적 대의의 표현으로 기능하고 있는가?
특정언론사의 정파성이 여론을 주도하는 지방도 있지만 대부분 몇 개의 언론사가 지역의 여론을 분할하거나 지역의 정보를 제공하는 단순 공급자 기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 개개인의 노력과 열정이 지역 언론의 전체 흐름을 주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치단체장의 정책결정은 중앙정부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점차 독선적 정책결정과 행정으로 인해 철학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도 문제다. 이러한 사례는 도시경쟁력이 국가경쟁력으로 인식되면서 더욱 빈번하게 지적된다. 지방정치권의 정치철학이나 소신이라는 것도 선거공보에서나 찾을 수 있는 한낱 공약의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지방언론의 정파성은 지방정치권과의 긴장관계라기보다 정치인 한 개인의 정치적 행위와 그에 따라 주어지는 ‘생존 수단’의 경향으로 이해될 뿐이다. 때문에 정파성에 따라 여론이 형성되고, 민주적 대의의 관점에서 여론이 표현된다는 것은 어쩌면 허구이거나 유토피아적일 뿐이다. ‘정치적 편향’이든 ‘이념적 양극화’의 관점이든 어느 쪽을 선택하여 보도하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은 시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되, 비판적 시각에서 역할을 하여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여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기자 개인의 특이성이나 특정 조직이 지역 언론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거나 지방언론의 흐름을 주도하려는 것이 위험한 것만큼이나 지방정치의 흐름에 언론의 생존이유와 가치를 내맡기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때 인터넷신문 <인천 in>이 창간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민주적 대의의 관념을 충실히 이행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유토피아적이라  할지라도 지역 언론의 정체성과 특이성을 찾기 위한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언론인들이 그 역할을 하고자 노력한다면 충분히 기대할 만하지 않겠는가? 진심으로 그러한 결과 만들기에 <인천in>이 최선을 다하길 기대한다.

박인옥은 누구?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사무처장, 인천지부장, 부회장
인천광역시 교육위원회 4대 교육위원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민관협력포럼 운영위원 (현)
공존사회를 모색하는 지식인연대회의 운영위원(현), 공동대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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