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방역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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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방역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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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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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와 경기 김포에 이어 충북 충주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했다. 지난 8일 강화에서 발생한 지 2주만에 내륙 깊숙한 곳까지 번져 전국 확산이 우려된다. 더욱이 충주에서는 구제역 바이러스 전파력이 소의 100~3천배에 이르는 돼지가 감염된 것으로 드러나 가축 방역당국에 초비상이 걸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화에서는 한우·염소 농가에서 구제역이 추가로 확인됐다. 최초 발생 농가에서 6.5㎞ 떨어져 반경 3∼10㎞에 지정된 경계지역에 속하는 곳이다. 충주 양돈농가에서 발견된 구제역 바이러스는 혈청형이 강화와 김포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것이어서 강화의 구제역이 당국의 방역망을 뚫고 남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앞서 충남 보령에서 신고된 구제역 의심사례가 음성으로 나타나 한시름 놓는가 했던 충청 지역 축산농가와 지자체들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축산농가가 많은 전남 등 다른 지역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구제역은 확산 속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고 피해도 크다. 정부가 강화에서 처음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내려지자마자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 수립 후 구제역 사태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4번째라고 하는데 구제역으로 경계 경고가 내려진 것은 처음이다. 당국이 이번 구제역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가축 방역당국은 아직 전염 경로나 매개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선제적인 방역이 이뤄지지 못한 채 `사후약방문'식 방역에 급급한 실정이라고 한다. 당국이 시·도 부시장·부지사 회의를 열어 구제역 확산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자고 다짐한 지 몇 시간도 채 안 돼 충주에서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됐고 결국 양성 판정이 내려졌다. 강화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열흘 만에 김포로 넘어들어갔고, 다시 이틀 만에 강화의 최초 발생지인 한우농가에서 136㎞나 떨어진 충주 돼지농가로 번졌다. 강화의 구제역 바이러스가 충주까지 전파된 것이라면 앞으로 그 파급영향이 얼마나 클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다.

소와 돼지, 양, 염소 등 발굽이 2개인 우제류 동물에만 발병하는 구제역은 전염성이 강해 세계동물기구(OIE)가 가장 위험한 A급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악성 구제역은 치사율이 50%에 이르고, 현재로서는 죽여서 매몰하는 살(殺)처분이 유일한 예방수단으로 돼 있다. 이 때문에 일단 발병하면 개별 축산농가는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큰 피해를 보고, 방역에 구멍이 뚫려 전국 각지로 번지게 되면 국가 축산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초동 방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지난 1월 경기 포천과 연천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나 2002년 구제역 사태 때도 역시 초기 단계에서의 서투른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었는데 이번에도 이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

구제역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게 비단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구제역이 없었던 일본에서도 지난 20일 구제역이 확인됐고, 구제역이 흔히 일어나는 중국에서는 올해 들어 베이징(北京) 등 여러 곳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세 나라에서 한꺼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지난 2000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우리 당국은 축산 농가의 구제역 발병국가 여행을 엄격히 단속하고 상응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 제재와 단속이 능사는 아니므로 더욱 실효성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우리 축산농가들이 비교적 자주 노출되는 동물 전염병의 방역체계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늑장대처 행태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축산농가들은 자식과 같은 가축의 살처분을 피하려 안간힘을 쓴다고 한다. 기르던 가축이 몽땅 살처분되면 사실상 생업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살처분 보상 수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보상금으로는 재기가 어렵다고 하소연이다. 이런 가운데 강화에서 구제역 때문에 한우 수십 마리를 살처분한 50대 여성이 21일 숨진 채 발견됐다는 보도는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당국은 구제역으로 시름에 젖은 축산 농가의 무거운 짐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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