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아줌마는 정이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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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아줌마는 정이 있어야 해요!"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4.10 2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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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앞에서 23년째 문구점 하는 조미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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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회사 품질관리과에서 일할 때 수출 면장 보관하고 복사하면서, ‘복사’하고 인연을 맺었어요. 그래서 문구점을 시작할 때 ‘나도 복사해봤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친정어머니도 문구점을 했고, 6촌뻘 여동생도 문구점을 해서 어깨 너머 보긴 했어요. 하지만 장사 경험 없이 결혼하면서 시작했어요.” 올해로 ‘문방구 아줌마’가 된 지 만 23년이 되는 조미정씨(47세). 그는 구월동 동인천중학교 정문 앞에서 ‘동인문구’를 꾸려가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는 문방구가 다섯 군데 있었다. 그때는 이 동네에 방통대가 있어서 늘 북적거렸다. 하지만 방통대가 시청 앞쪽으로 이사가면서 썰물 빠져나가듯 동네가 조용해졌다. 문방구가 하나둘 없어져 지금은 동인문구 하나만 남았다. 조미정씨도 남편과 함께 장사를 했었는데, 장사가 안 돼 남편도 다른 데 취직했다. “복사 저작권 때문에 단속도 나오니까 복사 하는 것도 아주 힘들어요. 질렸어요, 질렸어. 올해도 나왔다 갔어요.”

혼자 문방구를 하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몰래 나와 준비물이며 이른바 ‘불량식품’을 사가더라도 그는 다 감당한다. “쫓겨야 빨라져요. 회사 다닐 때도 빠른 편이었죠. 어렸을 때 시골 살면서도 조개를 아주 많이 캤어요. 손이 빠른 편이었죠.” 그의 고향은 충남 대천항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원산도다. 고향은 여름에야 한 번씩 가지만 해마다 가지는 못한다. “원산도는 섬이 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조개, 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섬사람들이 다 잘 살아요. 너덧 시간 조개를 캐면 일당으로 10만원도 더 벌죠. 그래서 놀리는 밭도 있어요. 예전에는 물텀벙이 같은 생선은 먹지도 않았어요. 맛있는 게 많잖아요.” 그의 고향 이야기에는 바다내음이 짙게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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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혼자 문방구를 하다 보니 늘 잠이 부족하다. 아침 8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까지 열네 시간 정도 일하는 까닭이다. 집에 가서도 식구들 식사준비하면 잠 잘 시간은 더 줄어든다. “신학기 때가 더 바쁘죠. 좀 여유 있을 때는 게임도 많이 했는데, 요새는 하지도 못해요.” 어쩐지 그는 게임도 잘 할 것 같다. 손이 원체 빠르기 때문이다. 그는 “손이 빠르다, 달인 같다고 하는 손님들이 많아요. 혼자 하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죠”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는 혼자 문방구를 하다 보니 늘 잠이 부족하다. 아침 8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까지 열네 시간 정도 일하는 까닭이다. 집에 가서도 식구들 식사준비하면 잠 잘 시간은 더 줄어든다. “신학기 때가 더 바쁘죠. 좀 여유 있을 때는 게임도 많이 했는데, 요새는 하지도 못해요.” 어쩐지 그는 게임도 잘 할 것 같다. 손이 원체 빠르기 때문이다. 그는 “손이 빠르다, 달인 같다고 하는 손님들이 많아요. 혼자 하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죠”라며 환하게 웃는다.

직업 종류도 많은데 문방구 아줌마를 선택한 데 대한 생각을 물었다. “잘했어요. 아이들이 부끄러워하는 직업도 아니고 괜찮아요. 애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순박한 직업’이잖아요. 결혼하면서 남편 월급이 적어 맞벌이로 시작했지만 잘한 거죠. 그때는 문방구가 잘 돼서 결혼 전 받던 월급보다 배나 됐거든요. 월급도 꽤 많았는데 그보다 훨씬 많았으니 재미가 쏠쏠했죠. 지금에야 돈 가치가 많이 떨어졌지만요.”

“손님이 몰릴 때 누군가한테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될 때는 힘들죠. 짧은 시간에 제본을 많이 해달라고 하면 벅차구요. 문구점에서 제본을 하지 않고서는 장사가 되지 않잖아요.” 조씨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찾아오는 학생 손님들을 친절하게 상대한다. 1백원짜리 청포도사탕 다섯 개 사가는 학생한테 돈을 거슬러주며 종 쳤으니 빨리 들어가라고 한다. “우리 애들은 여기서 좋은 볼펜 갖다 잘 썼을 거예요.” 대학을 졸업한 딸은 대학 다닐 때는 힘들다고 하더니만, 직장을 잡고 돈을 버니까 성실하다. 아들도 대학생활을 잘 하는 게 기특하다. 조씨가 문구점을 하는 동안 아이들도 무럭무럭 잘 자랐다.

이번에는 맡겨놓은 제본을 찾아가는 손님이 왔다갔다. 제본할 때 본드냄새가 나지 않는가 물었다. “요즘엔 글로건 비슷한 아크릴 본드 쓰니까 예전처럼 힘들진 않아요. 연기 나면서 고무 냄새가 나긴 하지만요.” 말을 끝내기 전에 중학생 세 명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그는 학생들이 순식간에 골라 내놓은 물건을 아주 재빨리 동시에 계산한다. 정말 빠르다고 감탄하자, 그는 “나한테는 빨리 스캔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는 거죠. 이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저절로 생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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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를 하면서 중요한 게 무엇일까. “정이 있어야 해요. 너무 계산적이어도 애들이 안 오거든요. 요즘은 이기적인 애들이 많아 친구가 돈이 없어 외톨이가 돼도 거들떠보지 않아요. 그럴 때는 마음이 안 좋아 주게 되죠. 덤이 있어야 해요. 눈앞에 보이는 이익보다는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장사할 수 있더라구요.” 문방구 아줌마를 계속 할 거냐는 물음에 그가 씩씩하게 대답한다. “앞일을 장담할 순 없지만, 할머니 되면 몸도 힘드니까 55세까지만 하려구요. 더 늙어서 하면 애들한테 우습게 보일지 모르잖아요. 손님을 압도해야 하는데, 늙어서 힘없으면 손님들이 깔보고 헛손질도 생기잖아요.”

초등학교 다닐 때 문구점은 늘 만물상이었다. 없는 것만 빼고 있을 건 다 있는. “여긴 필요한 것만 있어요. 다 갖춰놓고 팔면 앞으로는 남고 뒤로는 밑지죠. 준비물만 챙겨야지, 이것저것 갖다 놓으면 재고만 쌓이고 장사가 힘들어요. 다 갖춰놓겠다는 욕심은 애저녁에 다 버렸어요. 학생들이 필요한 것만 갖다놓죠.”

그래도 문방구 안에는 갖가지 물건이 다 갖춰져 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한 학생이 다급하게 들어오며 외쳤다. “아줌마, 저기저기…, 제가 항상 사는 거요!” “에이그, 옷핀! 너는 어째 ‘옷핀’ 생각이 안 나냐?” 학생은 바지가 터져서 옷핀을 잘 사간다고 한다. “수선집에서 고치지, 벌써 네 번째야.” 아줌마 말에 학생은 그럴 시간이 없다며 학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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