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아름다움을 찾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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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름다움을 찾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6.17 0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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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헌책방을 꾸려온 '아벨서점' 곽현숙 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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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반나절을 한가하게 보내고 싶다면 어딜 가야 할까.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면, 배다리에 가자. 스마트폰 종료 버튼을 누르고 어슬렁어슬렁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헌책방엘 들어가보자.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쌓인 책장 골목을 '느긋하게' 누벼보고, 사진전시관이나 시다락방에 들러 오래된 사진과 잡지로 보면서 '오래된 냄새'를 맡아보면 어떨까. 동구 금곡동 '아벨 헌책방'에서 주인장 곽현숙씨(64)를 만나 책방 이야기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책에는 당시 정신과 상황이 담겨 있어
나라 없는 설움에 에너지가 강하게 분출

"오래된 책을 정리하다 보면 의외로 종교잡지가 많이 나옵니다. 왜정 때는 종교인들이 그만큼 애썼다는 얘기입니다. 1930년대에 <진생>이라는 불교잡지가 있는데 그때 당시 100회 출간했어요. 우리가 못 보는 게 많습니다. <신앙생활>이라는 잡지도 매달 나왔습니다. 당시에 글로 뭘 전달해야겠다고 한 일이겠죠. 그런 마음이 담긴 잡지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다들 애써서 나라가 돋궈져 나아가는 거구나, 나라 없는 설움에 에너지가 강하게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오래된 책을 보면 그때 나온 책은 그때 정신과 상황을 단어 하나에 다 담고 있습니다. 책 표정에도 다 나오죠. 오래된 책을 보존해야 할 가치입니다. 그런 발돋음 속에서 국민이 내팽겨쳐진 상황에서 국민들이 버덕거리고, 종교 단체든 아니든 다 써서 알리고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잡지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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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더듬거려도 어눌해도 기다려준다

"시낭송회에 오시면 뭔가 기운에 젖어 가니까 좋습니다. 몇 년, 몇 회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는 사람들이 자신을 다 드러내놓고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글의 문화'가 소통을 자유롭게 합니다. 감정노선과 이성노선이 함께 흐르고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습니다. 내성에 있는 감성을 끌어올리고, 비판정신도 끌어내게 됩니다. 초등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누군가 말을 더듬거려도, 어눌하게 말을 해도 기다려줍니다. 좀 막힌 것을 각자 풀어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낭송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처음엔 책과 사람이 만나는 걸 의도했지만, 이제는 모임 자체가 중요합니다. '오병이어'. 우리 안에 있는 떡과 고기를 하나하나 저절로 내놓게 하는 자리라 풍성해집니다. '시인을 모시는 날'도 중요하고, '시인이 되는 날'도 무척 중요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가져와 읽거나, 자기가 쓴 시를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때가 되든 안 되든 다달이 풍성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의 그릇, 시가 곧 삶
언어로써 표출하는 세상은 대단하다

"시인은 시의 그릇입니다. 그래서 그 모체를 모시고 풍성하고 원활하게 모시자는 것입니다. 지난번 강은교 시인을 모셨을 때는 그 깊이를 다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강은교 시인은 배다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인이었습니다. '바닥에 있는 재' 이야기를 하셨는데, 들으면서 내내 대가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죠. 리듬으로 느끼는 건대, 시낭송회는 참 중요한 일이구나 했습니다. 시가 주가 되는 삶, 그게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손택수 시인 때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천상 시인이시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안에 잠겨있는 눌림이 숙성되고 발표된 과정을 담담히 말하더군요."

"어려서부터 향해 가는 것, 씨알이 인도하는 길로 가는 게 시였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는 '발효액'을 뿌려줄 수밖에 없어요. 언어로써 표출하는 세상은 참 대단합니다. 시인의 삶 속에 시가 살고 있습니다. 듣다 보면 '내 안에 나를 두드리는 게' 있더군요. 책 장사도 바로 그겁니다. 사람들이 책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을 만듭니다. 책장사를 물러서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죠."


책을 사서 보는 일은 대단하다
힘 써서 보는 돈이 아니면 힘이 없다

"배다리 쪽 움직임을 책방 쪽에 두고 여러 사람이 이런저런 일을 꾸몄습니다. 청산에서도 일을 많이 하고, 사진 갤러리도 있고… 그러다 보니 배다리에서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서 지원 받으면 껄끄럽고 좋지 않았는데, 이 또한 알리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면 괜찮습니다. 도서 출판업계가 돌아가는 걸 지켜볼 수도 있었고요. 얼마 전에 책방 하는 분이 찾아왔는데, 그 분은 행사를 통해 책방을 활성화하고 싶어하더군요. 혹시 행사에 너무 집착하는가 싶어서, '책방에는 책이 있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책 없이는 책방이 필요 없으니까요. 또 '책 보는 사람은 책에서 재미를 느낍니다.' 지난해에 스마트폰의 위력을 느꼈습니다. 아, 이렇게 가는구나, 책을 좋아하던 사람들도 줄어드는구나, 스마트폰에서 모든 게 해결되는구나 싶더군요. 사실, 책방은 끊임없이 충격을 많이 받습니다. 대여점이 생겨났을 때, 도서관이 많이 생겨날 때… 계속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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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서 보는 일은 대단한 일입니다. 귀한 노동의 가치, 소유의 가치를 주고 좀 더 나은 자기 인격의 가치를 바꿔보는 엄청난 작업입니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내고 자기가 원하는 양식을 취해가는 건 대단합니다. 동네 어른이 말씀하시더군요. "힘써서 번 돈이 아니면 힘이 없더라." 맞는 말씀입니다. 쉽게 얻는 건 정보를 얻게 되지만, 행동으로 가는 덴 힘듭니다. 아는 게 행동으로 가는 데 시간과 힘이 많이 듭니다. 노동을 해서 책을 한 아름 사가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젊어서 책방을 잠깐 쉬었을 때 느꼈습니다. 그래서 책을 사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슴에 안고 삽니다."

"책을 '무료 제공' 하는 데가 많습니다. 실제로 내 돈으로 책을 사는 건 귀한 일입니다. '열린책방'의 '말없는 세상을 향한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방 주인은 사회에 봉사하고 있는 겁니다. 주인이 각각 자기 평생에서 그런 가치를 끌어내면 좋겠지만, 좀 멀리 간 느낌도 있지만 실망하지 않습니다. 배다리골목에는 80, 90이 넘은 분들이 책을 파는데 다 대단하십니다. 철학, 문학이 구체적으로 뭔지 모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책을 만날 때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감정을 공감합니다."


마을에 담긴 역사, 문화를 생각하면 좋을 듯
배다리는 박경리 선생님이 '문학적 토양'을 이룬 곳

"지난번 인천시장과 만난 간담회는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장이 알아야 하거든요. 마을만들기를 전체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죠. 이 동네에 함께 머물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무조건 우기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나라도 생각하고, 역사도 생각하고, 사람들이 품고 있는 추억과 문화도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적어도 우리 동네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시장을 비롯해 시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주민의 실태가 어떤지 알아야 제대로 된 살림을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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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에서 박경리 북카페를 만들겠다고 시도했을 때, 저는 제보를 했습니다. 여기에 단아한 ㅁ자 한옥이 있습니다. 동구에만 있는 것일 수도 있구요. 자신을 여미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의 집을 보완해서 남겨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박경리 선생도 ㅁ자 한옥에 살았다고 합니다. 박경리 북카페를 세우는 일에 대해, 인천 문학인들은 어쩌고 박경리를 세우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헌책방을 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상행위' 자체가 작가한테는 대단하거든요. '조계지'에는 일본 책들이 많았을 겁니다. 고물상에서 보고 반하지 않았겠어요. 더욱이 책이 적은 시기였고, 책이 귀한 때라 일본에서 교육 받은 박경리 선생님한테는요. 선생님은 책이 쌓이니까 '돌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방'을 열지 않았을까요. 20대 초반 아낙인 데다, 타지방에서 왔고, 어머니가 아이들을 봐줄 수 있다는 점도 책방을 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당시 박경리 선생님이 하는 책방에는 지식인들이 많이 드나들었을 것 같아요. 당시 서울에는 헌책방이 40군데, 새 책방이 3~5군데 있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책방 역사는 헌책방 역사에서 비롯된 겁니다. 박경리 선생님도 헌책방을 하면서 책만 만난 게 아니라 여러 사람도 만났을 겁니다."

"인천은 개항하면서부터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조계지 쪽에는 젠틀하게 외세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살고, 여기는 우리 사람이 살던 곳입니다. 옷 한 가지를 입어도 고물상에서 사 입었습니다. 박경리 선생님 소설에도 나오더군요. 소설은 실제(스킨십)에서 온 사실을 실감나게 쓴다고 봅니다. 인천에서 조명해야 할 것은 20대 초반의 아낙입니다. 그가 책방을 내게 할 만큼 출렁거리는 뭐가 있었을 겁니다. 박경리 선생님이 일상에서 여기 살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 분이 갖고 있는 기질, 토양을 맘껏 움직여볼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문학의 획을 긋는 시기가 아니었을까요. 장사를 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건 중요합니다. 언어의 톤에서 사람을 보고, 그 시대에 책을 보는 사람을 만났다는 얘기니까요. 그분의 문학적 토양이 됐을 거라고 봅니다."


책방을 하는 한 사람들 흐름에 흘러들어야
책이 갖고 있는 힘은 대단하다

"헌책방은 머리로 생각하면 힘들어서 하지 못합니다. 손으로 만지는 것이 중요하고, 손님들이 어떻게 더 마음 편하게 책을 볼까, 어떻게 대면할까 여러 가지 생각합니다. '오늘 내가 책방을 하는 한 끊임없이 사람들 흐름에 흘러야 한다'고 봅니다. 책이 갖고 있는 힘을 알린다고 알려지는 것도 아닙니다. 책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 다르더군요. 이 즈음에 책에 대해 말하면서, 책은 자기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결국 찾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봅니다. 열 사람이 보면 열 사람이 다 다르잖아요. 자기 개성에 접목될 것만 접목됩니다. 그래서 멋있습니다. 한 가지 말을 하는데 열 가지 이상이 나오잖아요. 책에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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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분이 시다락방에서 30분 이상 홀로 머문 적이 있습니다. '내 평생에 이렇게 마음을 시원하게 내려놓은 적은 없다.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하시더군요. 아마 그 분이 느낀 건 '고요'였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어른들이 자기를 다 이야기하거나 그럴 수 있는 새를 가질 틈 없이 치달아 왔으니까요. 어른들은 잠시 쉴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시다락방에서 어떤 행사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든 사람에 대한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이 송글송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책방을 하는 보람이기도 합니다. "

"시다락방 전시관 한쪽에는 죽산 조봉암 선생과 박경리 선생님 코너가 마련돼 있습니다. 그 분들이 유명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얼'을 담을 수밖에 없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은 '생명의 자유'를 말씀하시곤 했는데, 내가 책방을 하는 이유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책이 있는 이유', '책방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연에의 생명'에 이른 두 분은 '나라 환경' 때문에 나온 분입니다. 이십대 초반 행복이 무너졌지만 암초 같은 힘으로 <토지>가 나왔을 겁니다. '얼'로 자신을 도래시킨 것이고, 그혼을 빼놓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분들이죠. 같은 맥락에서 시인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연극, 영화, 무용 분야 책도 시다락방으로 옮겼습니다."


헌책방 손님은 대개 겸손하고 조용해
배다리는 가치를 드러내고 인정하면서 가야해

"헌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개 겸손하고 조용한 분들입니다. 간혹 그렇지 않은 분들이 오기도 합니다. 책방은 책을 '헤집어 놓으면서' '맘대로' 보는 곳이 아닙니다. '공손한 마음으로 몇 쪽을 보고 가는 공간'입니다. 그걸 잊고 책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책방이 두 군데로 나뉘어 있어 불편합니다. 몇 년 안에 하나로 몰아놓을 생각입니다."

"이 골목은 배다리 역사의 정서가 함께 느껴져야 합니다. 가치를 드러내고 인정하면서 함께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문화'라는 거창한 말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동구 전체가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을 집집이 다 대단합니다. 똑같지 않아요.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책의 '역사전시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어른들한테 도움을 받고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울려 카페식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적어도 2,3년 걸리겠죠. 장소성의 소리를 느끼면서 끝까지 해나가면서 메시지가 들립니다. 그림으로 그렸던 공간의 목표가 생각대로 가면 되는 거더군요. 남의 것을 흉내내지 않아도 되구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꾸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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