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퍼런 반북과 유신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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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퍼런 반북과 유신의 부활
  • 박인규
  • 승인 2013.10.14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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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박인규 / 시민과 대안연구소 소장
세상 돌아가는 양상이 참으로 묘하다. 죄지은 놈은 당당하게 큰 소리치고 추궁하는 자는 점점 움츠려든다. 시작과 끝이 모호하고 본말이 전도되었다. 마치 진흙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같다. 온갖 문제는 난무하여 뭐하나 힘주어 풀어보려고 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와 앞 문제를 덮어버리거나 물타기가 된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터져 나오는 중대 문제에 어리둥절하여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국이 그렇다.
 
이성적이고 상식적으로 판단해보면 그 의도가 뻔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국민들의 인식은 얼핏 상식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국정원 불법선거개입 사건, 언론까지 동원한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보수우익의 관점과 입장을 대변하면서 역사적인 사실마저도 왜곡한 역사교과서에 대한 검정 통과, 그리고 대선공약마저 뒤엎은 복지공약 축소 등 정부의 정책과 행보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우세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정 지지율이 60%에 좀 못 미치지만 여전히 높은 것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참으로 신기하기까지 하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정국이 꼬인 것은 애초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으로 발생한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엄정한 처리와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통한 정권의 시녀역할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법제도개혁으로 풀어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권력기반의 약화나 권력의 정통성의 문제로까지 확대해석하여 밀리면 죽는다는 식의 군사문화적 대결의식 속에서 사건의 본질을 축소왜곡은폐하려다 보니 온갖 편법과 물타기가 동원된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의 눈높이에서 털 것은 털고 가면 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편법은 또 다른 편법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편법과 물타기가 빚바랜 사진처럼 뻔한 과거의 재탕이다. 다름 아닌 남북관계의 활용과 종북논란(좌경의 21세기 버전), 그리고 군사문화적 대결의식과 정책이다.
 
국정원 문제로 인해 궁지에 몰린 보수세력과 국정원은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남북정상의 회의록 공개로 물타기를 시도하였고, 개성공단 가동중단의 책임을 일관되게 북한의 책임으로 몰아가면서 결국 재가동을 이끌어낸 것을 대북정책에 대한 원칙의 승리라면서 한껏 고무되었고 이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높아지자 이제는 통합진보당의 종북문제에 대해 야당의 동의마저 끌어내면서 현역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까지 가결시켰고 결국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형성된 자신감이 급기야는 여야대표를 포함한 3자회담을 정권의 일방적 홍보수단으로 활용하고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민주당을 민생정치의 회복이라는 구실로 초라하게 국회로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역사에 묻힐 것 같았던 냉전의식이 오히려 더 위세를 떨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국정원 수사에 대한 보복을 위해 조선일보를 동원하여 검찰총장을 사생활문제로 도덕성에 흠집을 내어 찍어내는 세련된 잔혹함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자신에 협조하지 않거나 불복하면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공포감에 기초한 맹목적 충성심을 부하들로부터 끌어내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정판이 10.30보궐선거에 친박세력이자 비리전력이 화려한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공천한 것이다.
 
넘치는 자신감이 이제는 자신의 공약마저 파기하는 오만함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대선의 주요 지지기반이었던 노년층의 비판과 이반은 안중에도 없는 듯 65세 이상 기초연금 20만원 지급을 폐기하고 하위 30%에 대한 차등지급과 실질적인 무상보육 폐지를 들고 나왔다. 복지에는 현실성있는 재원의 확보가 필수적인데 복지의 축소로 인한 국민적 반감보다는 증세로 인한 기업의 반발이 더 무서운가 보다.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다. 이산가복상봉 문제도 원칙있는 대북관계를 명분으로 안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어디를 봐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내 생각대로 돌격 앞으로만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러니 가히 ‘유신의 망령이 부활하고 있다’는 세간의 우려가 전혀 근거없는 것도 아니다. 친일과 쿠데타의 오명을 반공과 반북대결로 덮어버리고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경제발전의 논리로 묵살하고 반대하는 자는 곧 적이라는 군사의식으로 권력을 유지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정치지도자의 표상인 아버지 박정희의 모습이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칼럼_국정원선거개입.jpg
 
그런데 이러한 안하무인, 일방통행식의 행보가 추구하는 종착점은 과연 어디일까 생각해보면 참으로 등골이 오싹해 진다. 최근 불거진 교과서 논란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일제의 식민사관과 한 뿌리인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중심으로 한 뉴라이트 세력의 관점과 입장을 담은 역사교과서 검정 통과가 그것이다. 그 논리를 따르다보면 결국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하게 되고 일제에 협조한 친일파들의 죄악은 사라지거나 희석되고 해방 후 그들이 건국과 국가발전에 공헌한 애국자로 둔갑하는 해괴한 논리로 전개될 수 있다. 그러니 결국 친일파이자 독재자인 박정희가 역사 속에서 완벽한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유신의 부활을 넘어 참으로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드는 진정한 국기문란이 아닌가? 상황은 이처럼 복잡하고 엄중한 길로 가고 있는데 지지율이 여당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제1야당은 무기력하기만 하고 진보정당은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시민사회의 촛불은 아직 들불이 되어 타오르지 못하고 있다. 더 분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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