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게 많아도 여전히 떡을 찾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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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게 많아도 여전히 떡을 찾죠!"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11.1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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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에서 57년 '성광떡집' 이종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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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냄새를 맡고 태어났다.” 중구 신포동에서 ‘성광떡집’을 꾸리고 있는 이종복씨(51). ‘성광떡집’은 1956년부터 신포동에서 57년째 ‘떡을 만들고 파는 떡집’이다. 이종복씨는 1988년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부터 지금까지 25년째 떡방앗간을 맡아 떡을 ‘찧고, 만들고, 팔고’ 있다. 그는 요즘처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여전히 떡을 많이 찾는다고 전한다. ‘성광떡집’ 떡을 먹어본 사람들은 어김없이 또 이 집 떡을 찾는다. 이렇게 인기있는 비결이 뭘까? 시인이면서 지역문화를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그에게 다른 이야기는 접어두고 ‘떡’에 관한 이야기만 들어봤다.
 
 
-떡집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아버지가 떡방앗간을 1956년부터 시작하셨어요. 1988년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곧바로 형이랑 함께 떡방앗간을 하게 됐죠. 그러다가 형이 성당 사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혼자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형이랑 10년가량 같이 하다가, 1988년부터 혼자 본격적으로 하게 됐어요. 올해로 25년 꽉 채웠네요.”
 
 
-젊었을 때는 하고 싶었던 일도 있으셨을 텐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 고민은 없었나요.
 
“전공이 법학이어서 되든 안 되든 사법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시기적으로 그때가 86항쟁 87항쟁이 일어나던 때였죠. 사회가 아주 격렬하고 어수선했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이 정국에 이 정치판에서 어떤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할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갈등하고 있던 차에 나름대로 시 공부도 계속 하고 있었구요. 그때 아버지가 느닷없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1년만 도와드리겠다고 생각하고 떡방앗간 일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1년이 25년이 된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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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떡을 아주 좋아해요. 사실 ‘떡냄새를 맡고’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떡방앗간을 하셨으니까요. 예전에는 떡이 최고의 간식이었어요. 1970~80년대에는 결혼식에 가면 ‘모찌떡’이라고 해서, 찹쌀떡을 포장해서 줬어요. 그만큼 귀하게 생각했죠.”
 
 
-요즘 사람들은 떡을 좋아하나요.
 
“큰 변동이 없어요. 하기야 저도 한때는 아이들이 빵을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학교에서나 학부모들이 우리 전통음식에 대해 소중하다는 걸 강조하고 있어요. 전통음식에 대한 어떤 위기감을 느꼈는지 계속 권장하더라구요. 예나 지금이나 소비량은 줄어들었어도 떡은 여전히 많이 먹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먹을거리들이 극히 제한됐지만, 지금은 먹을거리가 참 많잖아요. 그렇게 기호품이 많은데도 떡이 이 정도로 나간다는 건 고무적이죠.”
 
 
-떡 종류가 대략 얼마쯤 될까요.
 
“지역에서 만드는 떡 종류도 있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해서 만드는 떡이 있어요. 인천권, 각 도시마다 도시의 특색있는 재료를 넣은 떡이 있죠. 만드는 과정에 따라 붙여지는 떡이 참 많아요. 인천에는 ‘인천떡’이 없어요. 왜냐하면 부산 같은 경우에는 경단이나 단자가 있고, 공주에는 공주떡이 있고, 경주에는 황남빵, 경주빵이 있는 것처럼 지역이름을 붙이는 떡이 있어요. 제주도에 가면 밀전병, 밀떡, 메밀가루에 무 소를 넣은 떡이 있죠. 전라도 지역에는 인절미가 있는데, 그냥 인절미가 아니라 모시잎이나 칡잎을 써서 만들어요. 이렇게 지역마다 붙여지는 이름이 다릅니다. 경상도지역에는 망개떡이 있어요. 망개나무 이파리에다 떡을 밀대로 밀어서 바람떡처럼 소를 넣고 이파리로 싸서 다시 제쳐서 만들죠. 망개이파리를 붙여서 만든 떡을 망개떡이라고 해요. 너무 달지 않아 맛이 담백하죠. 쉬이 상할까봐 설탕을 넣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아니에요. 오로지 팥과 동부만 넣어야 합니다.”
 
 
-인천을 대표할 만한 떡이 인천에 왜 없을까요.
 
“인천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이 많은 곳이잖아요. 인천 출신이 13%밖에 안 되니까요. 외지 사람들에 의해 정착된 떡이라 딱히 인천떡이라 부를 수 없죠. 인천이 일본에 의해 개항된 도시다 보니까 일본의 영향도 받았어요. 일본의 화과자나 모찌 영향을 다른 지역보다 많이 받아 특히 발달돼 있어요. 저는 ‘모찌’를 특색으로 보고 싶어요. 모찌를 일본떡이라 주장하면 할 수 없는 거구요. 팥시루떡을 뒤집어 놓으면 모찌떡이 돼요. 팥 안치고 찹쌀 놓고, 팥 안치면 이걸 다시 쌀 부위를 절반을 잘라서 모으면 찹쌀떡하고 똑같은 모양새가 돼요. 시루떡은 켜켜로 찌는 거구요. 어차피 일본 떡도 한국에서 전파됐기 때문에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성광방앗간’이란 가게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또 성광에서 가장 맛있는 떡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성스러운 성, 빛 광이에요. 聖光. 우리가 천주교 집안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렇게 지으셨어요. 사실 우리 떡이 다 맛있어요. 사람들이 떡을 고를 때는 각자 고유의 기호, 체질, 성향에 따라, 건강에 따라 선택하게 되죠. 우리는 사람들이 주문하는 걸 다 만듭니다. 아마 떡 종류는 50~60가지 정도 될 걸요. 재료가 똑같아도 만드는 과정이 다르니까, 종류로 따지면 50~60가지 됩니다. 떡케이크도 찾는 사람들이 있고요. 사람들 입맛이나 취향에 따라 주문하는 대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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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남녀노소 떡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대별로 좋아하는 떡이 따로 있나요.
 
“아무래도 30대는 떡을 안 먹어요. 40대부터 선호하기 시작하고, 50대는 떡 맛을 찾아서 먹고, 어린 친구들은 꿀떡, 바람떡 같은 달달한 맛이 나는 떡을 좋아합니다. 절편은 대체로 다 좋아하죠. 노인들은 주로 팥시루떡하고 인절미를 좋아해요. 찰떡이야말로 소화가 아주 잘 됩니다. 떡이라는 것 자체가 쪄서 스팀으로 만들어서 소화력이 상당히 빠르죠. 떡에 들어있는 영양이 균형을 잃게 되면, 살찌는 데 지름길이에요. 고명도 중요하고, 속에 넣는 쑥도 중요하죠. 절묘하게 조화를 잘 이뤄야 맛있고 영양가 있는 떡이 됩니다. 흰가래떡, 흰인절미는 살찐 사람은 피해야 하죠. 탄수화물 자체가 위산에 의해 녹여지지만, 과했을 때는 단당류에서 다당류로 만들거든. 당이 늘어나게 되죠. 탄수화물을 조절해야죠. 가장 바람직한 떡은 현미로 만든 떡이죠. 현미찹쌀, 현미멥쌀로 만든 떡은 균형이 아주 잘 잡혀 있습니다.”
 
 
-계절별로 잘 팔리는 떡이 있나요.
 
“봄에는 쑥을 넣은 떡이 많이 팔리죠. 겨울에는 얼어서 먹을 수 없던 바람떡을 많이 찾습니다. 여름에는 찰떡, 인절미나 영양떡, 편 종류가 많아요. 석이편은 귀한 떡입니다. 석이버섯을 구하기 힘들기도 하고, 잣을 고물로 하는 전통떡이 있어요. 석이편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비싸서 못 먹습니다. 가을에는 송편, 겨울에는 가래떡, 팥시루떡을 많이 먹어요. 겨울에 팥시루떡을 먹는 건 아주 과학적입니다. 팥 자체가 인체에 필요한 영양성분이 많아요. 겨울에 먹는 팥이 아주 중요하죠. 호박을 썰어서 말려요. 무슨 떡이든 이렇다 저렇다 말로 하기에는 쉽지만 사실 공정이 다 있어서 간단하지 않습니다. 호박은 썰어 말려서, 충분히 말린 다음 접어서 절단시켜요. 그 다음에 적당히 말려서 흑설탕에 절인 다음, 단맛 물기를 쪽 빼고…. 여러 공정이 있는데 일일이 말하기가 힘들죠.”
 
 
-특히 좋아하시는 떡이 있나요.
 
“현미인절미를 좋아합니다. 구수하고 소화도 잘 되고, 든든하고. 어디 잔칫집에 가면 떡부터 먹어봅니다. 남의 것부터 먹어보죠. 이건 설탕이 너무 많다, 이건 설탕 대신 신화당을 넣었다, 이건 순전히 색소투성이다 하면서 자세히 봅니다. 먼저 진짜 떡이냐 아니냐부터 구분하죠. 색소 넣은 떡들은 떡으로 보지 않고, 달면 떡으로 보지 않습니다.”
 
 
-인천에 ‘성광떡집’ 말고 오래된 떡집이 또 있나요.
 
“50년 넘은 집들이 있습니다. 전에 있던 떡집이 다 없어져서 연속성이 떨어지죠. 연속적으로 세대를 이어가는 떡집이 '창영'하고, 우리밖에 없죠. 거긴 팥이 달지 않아 맛있어요. 그래도 우리 떡이 더 맛있습니다.(웃음)”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다니기 힘들지 않나요. 어디까지 배달을 하나요.
 
“인천 지역이면 다 갑니다. 가끔 영등포나 부천에서 주문이 오면 퀵서비스로 보냅니다. 양이 많으면 집사람 차로 배달하구요. 오토바이를 열다섯살부터 탔는데, 그때는 고춧가루 배달도 했죠. 오토바이는 집안일을 도우면서 타기 시작했어요. 그때 타던 오토바이는 작고, 발로 시동을 걸고오토바이가 작았어요. 발로 시동 걸고 자전거 속도로 달렸죠. 지금은 오로지 떡만 만들고 떡만 배달해요.”
 
 
-1년 중 언제가 바쁜가요?
 
“‘떡방앗간’을 하다보면 설이나 추석에는 온몸이 부서지죠. 설 때가 가장 피곤하죠. 추석 때 는 집사람, 형수님, 딸을 비롯해 알바로 일을 도와주시는 분들 대여섯 분까지 여러 사람이 일을 하니까 그렇게 힘든 줄 모르겠어요. 그런데 설에 가래떡을 만들 때는 정말 힘듭니다. 가래떡 만드는 모든 공정을 혼자 다 해야 하니까 힘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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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가게가 바쁘게 돌아가서 놀러갈 수 없을 것 같네요.
 
“‘틈’을 봐서 놀러갑니다. 설 지나서, 추석 지나서, 1월 1일, 비수기인 여름에 가요. 일년에 서너 차례 틈이 있어요. 그때는 주로 해외로 갑니다. 그동안 자료 조사하러 일본, 중국, 미국, 동남아시아를 다녀왔습니다. 외국에 가서도 떡집을 돌아보면 동질감을 많이 느낍니다. 한, 중, 일 동남아시아 지역에 가면 쌀농사지역이라 우리만큼 떡을 즐겨 먹더군요. 대체로 찰떡을 많이 먹습니다. 중국은 우리와 비슷한 멥쌀을 많이 먹더군요. 중국 여러 도시에서 떡을 사오면 우리 애들은 입맛이 안 맞아 먹지 않아요. 일본에도 설에 먹는 ‘오쪼니’ 같은 떡이 있습니다. 설에 우리는 떡을 썰어 먹는데, 일본 사람들은 경단처럼 만들어서 뜨겁게 해서 먹더군요. ‘오쪼니’ 먹고 소식으로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해요.”
 
“또 종교적인 영향도 많아요. 동양3국은 ‘붉은 팥’을 많이 씁니다. 중국 사람들은 월병에도 빨간 팥을 쓰고, 일본 사람들은 모찌 만들 때 많이 씁니다. 우리는 시루떡에 빨간 팥을 쓰죠. 빨간 팥은 복을 불러들이고 악귀를 물리친다는 오랜 샤머니즘의 전형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붉은 색의 대표적인 팥을 한 중 일 3국이 참 많이 먹어요. 그래도 우리처럼 팥 하나만으로 다양하게 먹는 민족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빨간 팥을 통째로 쓰면 고명으로 쓸 수도 있지만, ‘거피’라고 해서 껍질을 제거해서 만들기도 합니다. 거피팥을 만들어서 하얀 편을 만들어요. 우리나라는 재료를 참 다양하게 써서 떡을 만듭니다.”
 
 
-57년 동안 맥을 이어온 ‘성광떡방앗간’을 꾸려오면서 부담감도 있었을 텐데, ‘아, 이 일을 참 잘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특히 좋아해서,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다 좋았습니다. 제가 여섯 형제 중 막냅니다. 아버지한테는 늦둥이자식인데, 아버지께서 손자처럼 예뻐해 주셨죠. 아버지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일하는 게 힘들고 바쁘지만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집사람은 손 발 허리 다 아프다고 합니다. 둘이서 하니까 힘들죠. 사람들이 우리 떡을 좋아해주고 맛있다고 해주니까 참 고맙죠. 좋은 재료 써서 맛있는 떡을 많이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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