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다방'에 가면 진한 추억과 쌍화차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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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다방'에 가면 진한 추억과 쌍화차를 만날 수 있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4.01.13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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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명동'이라 불리던 산곡시장에서 40년째 '봉다방'을 운영하는 최정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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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잘 되는 직업이 뭘까. 그 가운데 하나가 간판업이라고 한다. 야심차게 가게를 열었다 금세 닫고, 또 여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40년 동안 간판을 내리지 않은 곳이 있다. 같은 자리에서 가게를 하고, 게다가 주인도 바뀌지 않았다. 산곡동 봉(逢)다방. 백마장이라고도 많이 알고 있는 산곡동. 봉다방에는 수많은 사람의 추억과 한숨과 이야기가 배어 있고, 여전히 다방 안은 손님을 기다리는 쌍화차와 커피 향이 가득하다. 산곡초등학교 정문을 등지고 바로 앞 골목길로 몇십미터 걸어 들어가면 다다르는 곳, 그곳에서 40년 동안 봉다방과 세월을 지키고 있는 최정숙씨(79)를 만나봤다.
 


-연세에 비해 훨씬 젊어보이세요. 이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으실 텐데, 힘들진 않으세요.
나는 일하는 게 생활화가 돼서 하나도 힘들지 않아. 집에서 노는 사람보다 대여섯 살 젊어 보인다고들 해. 그래도 여기가 실내라서 젊어보이지, 나가서 보면 나이를 못 속여. 어디를 나가면 주름을 빼고는 젊다고 해. 근데 누구나 마음은 안 늙잖아. 자신만큼은 젊게 사는 것 같잖아. 나는 젊은 사람이 좋은데, 내 또래들도 그렇다고 하더라구.(웃음) 40년 동안 일하다보니 그렇게 힘든 줄 모르겠어. 젊어서는 애들 학비라도 벌어야지, 먹고 살아야지, 살아야 하니 일을 안 할 수가 있나. 지금도 안과 가는 일 아니면 여기를 비우질 못해. 어딜 가서도 바닥에 앉으면 힘들어도 의자에 앉으면 별로 안 힘들어. 무릎관절이 괜찮은 건 감사할 일이지.

-쌍화차가 향도 진하고 맛있게 보여요. 재료는 일일이 다 만들어서 준비하시나요.
뜨거울 때 마셔. 계란 노른자는 숟가락으로 떠서 후루룩 마셔. 동동 뜬 거 떠트리지 말고 입에 대고 그냥 넘겨. 차는 차대로 상큼하고 맛있어. 쌍화차를 못 먹는 젊은이들이 많더라구. 쌍화차는 말 그대로 영양덩어리, 보약이니까 남기지 말고 마셔. 계란도 비싸고 좋은 걸로 써야 돼. 달걀 큰 건 물만 많고 터져서 못써. 계란 흰자는 모아서 반찬해먹지. 쌍화차는 아낌없이 진하게 해. 손님이 봉다방 쌍화차 맛있다고 하면 그게 참 듣기 좋아. 계피, 생강, 호두, 땅콩… 좋다는 건 다 넣어. 재료는 떨어지기 전에 한가할 때 만들어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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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이 손수 다듬은 재료와 계란노른자를 넣고, 계핏가루로 마무리한 쌍화차.
 

-산곡시장 안에는 문 닫은 가게가 많네요. 일부러 아니면 찾아오기도 힘들 것 같은데, 어떤가요.
시장은 롯데마트가 생기면서 장사가 거의 안 돼. 다방이 사양길로 접어든 지 오래 됐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할 거야. 공과금만 되면 하는 거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지. 여기 산곡시장이 참 컸어. 산곡동이라고도 하고, 백마장이라고도 했어. 제2의 명동이라고 할 만큼 유행이 아주 빠른 곳이었지. 롯데마트 건너편에 지금은 한양아파트가 고층으로 있지만 예전에는 비행기장 부대, 헬기장 부대가 그 자리에 있었거든. 양색시들이 유행을 아주 민감하게 받아줬거든. 여기가 아주 번화가였어. 미군부대가 있었고, 그 다음에 공수부대가 한참 있었고, 그 다음에 한양아파트가 선 거야. 그러고보니, 내가 여기서 내가 50년 넘게 살았네.

-산곡시장 안에 극장도 있었고, 시장이 참 컸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셔터 내린 가게만 많고, 활발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백마장이라는 말이 참 정겹잖아. 지금은 백마장이라는 말도 모르는 사람도 많아. 여기가 산곡2동이었는데 편입해서 현재는 산곡1동으로 돼있지. 여기 산곡시장이 꽤 컸고, 극장에도 사람이 많이 왔어. 안 되니까 문을 닫았지. 극장이 슈퍼로 바뀌고, 주인도 몇 번 바뀌다가 이제는 완전히 문을 닫았어. 왕대박 마트가 그 자리야. 지금은 보잘것없는 뒷골목이 됐지. 저녁이면 일찌감치 캄캄해져. 50년 동안 변화가 많아. 예전에는 골목마다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너무 한가해. 고양이 새끼만 많구.(웃음)

-다방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예전에는 종업원 두고 세탁소를 했어. 그러다가 내가 직접 종업원 없이 15년을 하게 됐어. 그런데 손목이 시큰거려서 할 수 없더라구. 서울서 왔으니까 서울로 가야지 했는데, 애들이 다 소학교 다니고 있으니까, 동료 문제도 있고 딴데로 가면 외로우니까 여기서 살자고 그러면서 눌러앉은 거지. 세탁소는 부대 앞에 있었어.

-‘봉다방’이라는 이름이 부르기 편하고 알아듣기 쉬워요.
봉, 만날 봉(逢)이야. 어떤 사람은 무슨 봉이냐고 해. 날아다니는 봉이냐, 씌우는 봉이냐, 성이 봉씨냐 하지. 그러면 성냥을 만들어서 한쪽은 한글로, 한쪽은 한문으로 해서 설명했어. 봉다방이라는 이름은 40년 동안 똑같아. 똑같은 이름으로 한 군데서 하는 데는 드물다면서 박물관에서도 방송국에서도 찾아왔어. 나도 봉다방이라는 말이 정겨워. 이걸로 반평생을 생활해서 만족해. 건강이 되면 계속 할 생각이고, 지금도 내 안방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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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다방 실내 모습.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가요. 셔터문 내려진 골목길에 다방이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네요. 막상 들어와보면 아늑하고 편한 데말입니다. 
지금 돼서 있는 게 아니야. 공과금만 겨우 내는데, 청소하고 있을 데가 있으니까 좋지. 어떤 사람은 봉다방 간판을 내리지 않아서 고맙다고들 해. 나로서는 그런 말만 들어도 고맙더라구. 여기가 학굣길이잖아. 어린 친구들이 우리가 언제 봉다방을 들어가느냐면서, 우리가 언제 크냐고 했었지. 그런데 글쎄, 크더니 선도 여기 와서 보고, 여기서 선을 보면 성사가 일어난다고 좋아했거든. 그렇게 결혼하고서도 애들하고 와서 차 한 잔 먹고 가더라구. 예전에는 선 보는 사람이 참 많았어. 이제는 더 좋은 데로 가잖아.

휴대폰 없을 때 사람이 많았지. 요새 대형커피점은 사람이 정말 많아야 유지될 거야. 커피만 팔아서는 안 돼. 그러니까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는 데도 있지. 인건비, 임대료가 비싸니까, 감당이 안 되니까 할 수가 없어. 다방 한다고 하면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어. 옛날에는 다방 오는 이유들이 사람마다 제각각이었어. 다방에서 전화를 받으려고 오기도 하고, 건전하게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오기도 하고, 또 사업하면서 사람도 만나러 오기도 했어.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잖아. 휴대폰도 다 가지고 다니고, 사람을 만나려면 대형 커피점에서 사람들이 만나지. 사람들이 안 오니까 힘들지. 하던 거니까, 애착도 많이 가니까 그냥 하는 거야. 어떻게 좋게 생각하면, 이걸 하면서 건강을 유지한 건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해.

-(다방 한쪽 벽에는 3년 전에 시립박물관에서 전시한 ‘양탕국에서 커피믹스까지’ 포스터가 붙어 있다.) 박물관 전시회 때는 기분이 어떠셨어요.
오늘도 기자가 온다고 해서 좀 의아했어. 지금 사라져가는 건데, 뭘 알려고 하나, 날도 가장 춥다는데, 추운데도 오는구나 했지. 3년 전에 박물관에서 온 초청장을 갖고 갔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 가보니까 행사도 좋고, 기분에 무척 좋더라구. 학예사들이 다들 반가워하고. 오늘 같으면 밥 안 먹고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기분이 참 오래 가서 기분이 좋았어.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기분이 참 좋아. 박물관 식구들도 여기를 와보고는 다들 좋아했어. 나는 그 사람들이 자식 같고 좋았어. 전시회 하고나서 며칠 있다가 상패라고 갖다 주니까 고맙더라구. 나는 기증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청소한 것밖에 안 된 건데, 참. 전시회 때 그 사람들이 반가워하니까 기분이 그렇게 좋더라구. 우리 친목계원 3,40년 된 사람들과도 전시회 갔는데, 학예사들이 사진도 찍어주더라구. 사진은 아직 못 받았어.(웃음) 그때는 박물관 전시회 다녀온 사람은 문화인이야 그랬지.(웃음)

-건강하셔도, 날이 추울 때는 출퇴근하기가 힘드실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바로 2층에서 애들하고 살아. 교통비 안 들고, 춥거나 덥거나 아래위 왔다갔다 하면서 하는 거야. 여기가 교통이 참 편해. 인천 가기도 편하고, 전철 타기도 편하고, 부평 가기도 편하구. 사방으로 가기가 참 좋아. 그러고 보면, 직장이 가까운 거지.(웃음) 지금은 돈 버는 건 없어도 괜찮아. 애들 결혼했고, 내 나이에 건강한 거면 됐지, 다 감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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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차를 준비하는 주인장 최정숙씨.
 
 
 
-좁은 골목길에 문 닫힌 가게들이 아주 빼곡하게 많네요. 예전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4,50년 전에는 여기에 양키시장하는 사람도 많고, 노름쟁이들도 많고, 다 많았는데 지금은 다 없어. 다들 어딜 갔을까. 시장 안에서 양키 물건 파는 사람 많았지. 그리고, 물건을 옷에다 차구 서울에 가서 파는 사람도 많았어. 아줌마들이 많이 그렇게들 하더라구. 특히 공수부대 있을 때는 사람이 참 많았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다방에 직원도 많이 뒀지. 마담, 카운터, 아가씨 등 대여섯 명을 두고 했어. 그렇게 사람이 많아 북적대고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지고, 지금은 내가 식순이도 하면서 겨우 하는 거지.(웃음)

-지금도 기억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나요. 분위기가 편해서, 전에 한 번 와봤다면 꼭 한 번 다시 들르고 싶을 것 같아요.
단골손님들은 다 돌아가셨어. 남자들이 여자보다 빨리 죽더라구. 나보다 두세살씩 더 먹은 사람들도, 그때 유지라고 분위기좋게 단합하던 사람들도 다 죽었어. 그 밑창에 나이를 보면 단합은 없어, 다 개인주의야. 지금은 다방 같은 데가 필요가 없어. 핸드폰이 다 있잖아. 연락하고 즉시즉시 만나잖아. 예전에는 다방이 없으면 연락이 안 되는 거지. 연락 때문에 다방에 와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어. 수두룩했지. 전화를 목빠지게 기다리는데, 누가 수화기를 오래 잡으면 막 야단했어. 김 사장, 이 사장 해서 다 기다리고 있거나, 들어와서 휙 돌아보며 사람을 찾았거든.

늦으면 늦는다고, 못 오면 못 온다고 메모지에 써놓기도 했어. 그때 내 머리가 조금 빨리 돌아갔는지, 특별히 전화국에 가서 착신전화를 하나 더 설치했어. 하나는 받기만 하고, 하나는 걸고 받는 걸로 했어. 공중전화도 놨구. 그때 착신전화 하나 해놓으니까 사람들이 편리했지. 나중에 착신전화가 필요없을 때 전화국에 말했더니 그냥 흐지부지 없어지더라구. 아무것도 아닌 게 됐다고 하더라구. 돈을 받지도 못했어. 5국에 4432로 착신전화를 했었지. 예전에는 마담이 없으면 장사가 안 됐어. 소개소에 가서 마담을 데려왔어. 나는 관리만 하고 자료만 대주다 보니, 손님이 누가 왔다갔는지도 몰라. 장사가 좀 안 될 때는 카운터를 내가 보기도 했지. 손님들이 주인에게 차도 갖다주라고 했지. 참 대우도 받았어.

그러다 고마워서, 시장에서 메이커 세일할 때 점퍼를 많이 사다줬어. 명절 때는 양말을 두 켤레씩, 연말에는 라이터를 선물했어. 손님이 많으니까 다 줄 수가 없어서 골랐지. 그때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이 가다가다 와. 정말 반갑지. 마담들이 주로 와. 내 역할을 해주니까 주로 정이 많이 들었지. 아가씨들은 쌀쌀해. 예전에 여기서 일한 사람들은 더러더러 와. 이곳에 볼 일이 있으면 꼭 들르지. 잘 사는 사람도 있고, 못 사는 사람도 있고. 사람 사는 게 그렇지 뭐.

-손님들을 보면 세월이 변한 걸 느낄 수 있나요. 사람도 그렇고 세상도 많이 달라졌죠.
사람이 참 많이 바뀌었지. 예전에는 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샌 나부터 생각하잖아. 우리 세대는 나라는 존재는 없었어. 그냥 먹고 사는 데 바빴으니까. 나는 젊었을 때 난 훤하다는 소리는 들었지. 화장도 안 하고 살았어. 젊어서는 구리무 정도 발랐지. 늙으니까 색깔이 변하니까 이것저것 바르지. 환하다는 소리는 늘 들었어. 젊어서는 몸 관리를 할 수가 없지. 먹고 사는 것만 바빴지. 공부 가르쳐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지. 지금처럼 시댁 가면 친정도 가야 하구, 시부모 돈 얼마 주면 친정도 줘야 한다고 하잖아. 그게 좋은 것도 같지만 정이 너무 없지. 사람이 계산대로 살 수는 없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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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제2의 명동'이라 불리웠던 산곡시장 골목, 그 골목길에 봉다방이 있다.

이 동네는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지만 가망성은 없어. 다들 어렵잖아.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은 확정된 거니까 해야지. 인천에 빚은 많아도 하기로 한 거니까 해야지. 국비를 끌어다가라두.(웃음) 인천에 재개발 아닌 데가 있나?

오랫동안 다방을 하면 시사에 밝을 것같지만, 난 시사에 안 밝아. 그냥 흐름대로 살아. 손님들이 하는 말은 참 많지.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지역이 있으면 아주 직선적으로 말해. 자기감정이지. 장사를 하려면 사회 흐름을 대강은 알아야 돼.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돼. 벽을 없애고 이쪽도 저쪽도 받아들여야 해. 어떤 사람은 자기 부인하고 싸우면 여기 와서 말해. 들어주니까. 그러면 무조건 참으라고, 생각대로 하면 안 된다고 져주라고 말해주지. 그러다가 나중에 와서 괜찮아졌다고 하지. 나는 남자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남자들 편이 되더라구. 생각이 그리로 쏠리는 것 같아. 손님이 오면 자기가 잘못하고도, 부인 욕도 하면, 그 말도 맞지만 져주라고 그러지. 그런 일이 없으면 오지도 않아. 하소연하고 싶을 데가 필요하면 오지. 술 먹고 와서 한 소리를 계속 하면 참 듣기 싫어. 그래도 들어줬어. 가능한 한 손님이 편하게 해주려고 했어.

-골목길에 들어오면서 봉다방을 찾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오래됐다'면서 자세히 알려주더군요. 
나는 장사하면서 인복이 많은 것 같아. 사람들한테 말하면 다 알아듣고 편해지니까. 그러니까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할 수 있었지. 얄팍하게 살면 인심을 잃고 이렇게 할 수가 없지. 여기를 찾아오면 동네 사람들이 자세히 가르쳐주더라구. 요새 잘 보면 좋은 사람들 많아. 귀찮아도 차근차근 알려주는 사람 많아. 오래된 사람들은 다 잘 알려주지. 그래도 착실하게 알려주고, 좋게 대해주니까 좋지. 하도 오래돼서 그래. 오래된 사람들은 봉다방을 다 알고, 할머니다방이라고 다 알아. 하지만 나는 할머니란 소리가 싫어.(웃음) 더 늙은 것 같잖아.(웃음)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참 북적댔을 것 같아요. 예전 다방 안 풍경은 어땠나요.
담배연기 참 많았어. 환풍기를 틀면 담배연기가 그리고 굴뚝처럼 나갔어. 예전에 마담들은 눈알이 빨겠어. 지금은 담배 피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 가끔 손님이 담배를 피우면 연기가 눈으로 들어가는 것 같고, 머리가 띵해. 젊은 사람은 피우는 사람도 있지만, 간 다음에 문 다 열어놔야 해. 특별히 피워야 하면 한두 개비만 피우라고 하지. 그러면 정월 초하루부터 끊을 거예요, 하더라구. 여기는 안방마냥 편하지. 편하게 해줄 의무가 있어야지. 그리고 동네에서 장사를 잘 하려면 누가 와서 하는 얘기가 나가면 안 돼. 그게 첫째로 중요해. 그거 안 지키면 안 돼. 종업원들한테 그걸 교육했어. 차 장사한다고 해도 업주들이 지켜야 할 일이 있는 거거든.

건강 유지하면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하는 거지. 물세 전기세만 나오면 되는 거지. 재개발은 언제 될지 모르니까, 그건 상관없이 지내야지. 오랫동안 장사하면서 고마운 사람이 참 많아. 예전에는 결혼식을 가면 피로연 하고, 어딜 가서 차를 마셔. 그때는 내가 꼭 냈어. 그건 꼭 내려고 했어. 차를 먹으면 담배까지 피우니까, 합쳐서 찻값을 냈어. 늘 우리 집에 와서 다들 드셨으니까 그때는 내가 사야지.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기억하고 나중에 좋게 말해주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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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써줬다는 '다향정담(茶香情談)' 글자가 벽에 걸려 있다.
 

-벽에 걸린 ‘다향정담’이라고 쓴 글씨가 정겹네요.
예전에 한양아파트 사는 노인이 써줬어. 늙으면 손에 힘이 없으니까 미리 써주겠다면서, 힘 있을 때 써줘야 한다면서 써줬어. 참 고마운 양반이지. 그후로, 그 양반 몇 번 안 오고 돌아가신 것 같아. 저게 기억에 남아. 다향정담, '향 나는 차를 마시면서 봉다실에서 만난다'는 뜻이지. 저건 유행도 없고, 있을수록 운치가 있어.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손님이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찾아간 사람이 슬몃 조바심이 나려는데, 정작 주인장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오전 10시에 열어서 저녁 7시에 닫아. 이렇게 손님이 없어도 초조하거나 조바심 나지 않아. 손님이 있을 때는 있는 거구, 없을 때는 없는 거거든. 이러다가도 손님이 들어올 수도 있거든.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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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길에 언제든 들르라면서 환한 미소로 배웅하는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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