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
상태바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
  • 이수석
  • 승인 2014.01.13 2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동기획-인천교육미래찾기(37)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


1343090916-25.jpg

이수석(석남중학교, 인천교육연구소)

아버지의 일 때문에 자주 전학을 다녔던 나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구구단을 못 외웠고 한글을 읽고 쓸 줄도 몰랐다. 그랬던 내가 4학년(1974년)때 전학간 곳이 천호국민학교-천호초등학교였다. 4학년 8반 학생들은 70~80여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 친구들에게 인사소개를 한 다음, 담임선생님은 비어있는 자리에 나를 앉도록 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아버님의 영향으로 나는 여학생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다 구구단 외우기 게임을 하였다. 나는 불러주는 구구단 문제에 대한 대답을 몇 번 못했다. 국어 교과서를 읽으라고 해도 나는 띄엄띄엄 글을 읽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나자, 내 옆의 짝꿍인 조혜경이가 나를 타박했다.


“무슨 남자애가 한글도 읽을 줄 모르고, 구구단도 못 외우냐?”

혜경이는 그냥 하는 소리였지만, 나는 그 때 자존심이 상했다.

혜경이와 같이 쓰는 책상을 금을 그어 반으로 나누었다. 나는 내 영역을, 짝꿍은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면 안되었다. 만약 그 선을 침범한 책이나 공책, 지우개와 연필은 넘어온 부분만큼 내 것이 되거나 짝꿍 것이 되었다. 우리 때는 그랬다. 특별히 놀 것이 없던 초등학교 다닐 때의 우리들 놀이였다.

그러다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리고 나와 혜경이는 싸웠다. 혜경이와 나는 서로 보기를 싫어했다. 말과 말 사이에는 화살이 있었고, 그 화살은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내었다. 우리 둘은 한 동안 말도 하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 나와 혜경이를 담임인 김재근선생님이 불렀다.


“너희들 왜 싸운 거니?”

“수석이가 제 지우개를 잘랐어요.”

“혜경이는 제 연필을 잘랐어요.”

“수석이가 혜경이의 지우개를 잘랐고, 혜경이는 수석이의 연필을 잘랐다고 하는 구나. ……지금 너희들 마음은 어떠니?”

“……”

“……”

“…… 너희들이 장난치다가 화가 나서 저지른 일이고, 이제는 서로 간에 미안하기도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서로 말을 안 하는 거 같구나. ……선생님이 혜경이의 지우개와 수석이의 연필을 새로 사줄게. ……너희 둘은 짝꿍이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거니? 너희들 때문에 친구들이 서먹서먹해지고 반 분위기도 안 좋잖아. ……화해하렴. 자 여기 연필과 지우개 있다.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화해해야지.”


그렇게 나와 혜경이는 화해했다. 그리고 나는 혜경이의 성화로 구구단을 외웠고 혜경이의 도움으로 한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근 40년 만에 김재근 선생님과 조혜경, 이수석, 손정우, 차주일, 유숙자, 설미숙의 동기동창들이 만났다. 선생님은 정년퇴직을 하셨고, 지금은 인천에서 전원생활을 하시며 농사도 짓고 계신다고 하셨다. 어릴 적 70~80여명의 꼬재재한 학생들을 사랑으로 길러 주신 것처럼, 생물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며 당신의 교직생활을 돌아보신다고 하셨다. 장난기 많고 커서 뭐가 될지 걱정이 된다고 했던 우리는, 그 시절을 보내고, 각자의 가정을 이루며 오늘도 힘차게 살고 있다. 그리고 또 잊고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시 살펴본 SNS 소식 방에는 김재근선생님의 글이 올라왔다.


‘올해는 그대들과의 만남으로 참으로 행복했다네. 반가운 얼굴들을 봤을 땐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를 수가 없었다네. 그대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손목사님, 차상무님, 이선생님, 유사장님, 설사모님, 조서예가님! 갑오년 새해! 건강하고 집안의 화목과 복 많이 받길 기원하네.^^ Happy New Year!’


사랑은 내리 사랑이 맞는 가보다. 선생님과의 만남 뒤, 우리 각자는 바쁘다는 이유로 다시 문안인사도 못 드렸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우리들에게 새해 인사를 올렸다.


우리는 지금도 SNS 소통 망을 통해 만나고 있다. 서로 간에 살아온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야기 등을 나누고 있다. 아무런 이해타산도 갖지 않고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해주며 좋은 글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살려줄 덕담을 나눈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온 50대의 우리들의 생각은 같았다. 비록 우리의 초등학생 시절이 힘들고 배고팠지만 그 때가 좋았다고. 하지만 그 때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어쩌면 삶은 모순 덩어리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지금 현재가 과거 초등학교 때보다는 더 행복하다. 우리의 그 때가 좋았지만, 그 때로 다시 돌라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그랬다. 아니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둘이 싸우면 그걸 중재해 주는 친구가 있었고, 그것이 어려우면 선생님이나 윗사람이 중재해주었다. 나름의 불평불만은 갖고 있었지만 도시락을 같이 먹으면서 행복해 했고, 웃고 화해했다. 켁켁거리며 교실 난로에 장작불과 석탄을 때면서 코와 볼에 묻은 검정을 보면서 킥킥거리고 호호거리며 웃으며 우린 자랐고 배웠다. 서로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우린 성장했다.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정말 행복한 학교생활이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처럼 우린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고 화해하면서 성장했다.


학교가 죽어가고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문제라고 한다. 지금 아이들은 아는 게 없고 개념 없이 생활한다고 한다. 아니 대한민국의 장래가 걱정된다고들 말한다. 학교에서는 상급기관과 학교, 관리자와 교사,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 간의 끊임없는 갈등이 발생하고, 그 갈등은 언어적 폭력과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학교가 죽어가고, 교사와 학생은 학교 가기가 두려워지고 싫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제는 인류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늘 진행되어 왔던 문제였다. 인류의 역사는 개인의 삶처럼 투쟁과 갈등, 그리고 평화와 화해의 역사이기도 하다. 칭찬과 처벌을 통해 인간 개개인이 변하고 성장하듯이, 인류의 역사도 갈등과 그 갈등을 해결하는 화해를 통해 배우고 익히며 성장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공동체가 있었다. 상호 이해와 존중의 풍토가 있었다. 누가 나쁜 짓을 하면, 누구 집 자식이 어찌했더라는 소문이 동네에 쫙 퍼졌었다. 개인은 개인이면서도 개인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의 가족과 친구, 선후배가 항상 함께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였다. 이건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니었다. 그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있었다.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들은 배우고 성장하며 깨우치고 잘못을 교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무너졌다. 학교라는 배움의 공동체도 흔들거리고 있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할 수 있었던 마을이라는 공동체도 사라졌다. 어른과 아이라는 삶의 지혜를 나누고 배울 수 있는 서열도 사라졌다. 이제 이 사회는 그 모든 것들의 줄기가 사라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 인간(人間)이라는 표의문자인 한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 글자이다. 네가 있기에 내가 의미 있고 내가 있기에 너의 가치가 빛난다. 가고 싶은 학교, 아이들을 만나는 게 행복한 출근길, 배움이 일어나는 학교는 다시 어떻게 만들 것인가?


나는 그런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교와 사회를 공동체의 가치가 묻어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와 같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폭력적 대화를 통한 회복적 생활지도, 나아가 회복적 정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짝꿍과 나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학교 끝나고 남으라고 했다. 남은 우리를 데리고 선생님은 자장면 집으로 갔다. 입언저리에 묻은 자장면 먹은 흔적을 보며 짝꿍과 나는 웃으며 화해했다. 선생님의 이 교육이, 지금 생각하니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 가는 모습이었던 거 같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힐링할 수 있는 회복적 정의를 어릴 적 내 은사와 선배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어릴적 추억은 춥고 배고팠지만, 그래도 행복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