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관리사, ‘순간 해고’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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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관리사, ‘순간 해고’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5.13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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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 가정관리사 이금년, 김순덕 씨를 만나다


이금년 씨(63)는 4년째 가정관리사로 일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청라, 옥련, 부개, 송내, 구월, 학익, 주안 등으로 고객의 집을 방문해 오전/오후 4시간씩 하루 8시간 노동한다.


처음에는 아무리 집안일이라도 내 집이 아니라서 겁이 났다. 먼저 일을 시작한 선배를 따라 한두 번 해보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나올 때, ‘내 마음에 드니까 고객 마음에도 들겠지’ 할 때 보람을 느낀다. 몸이 아파 일을 못할 때는 사는 게 짜증날 때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안 그런다.


김순덕 씨(59)는 12년째 ‘도우미 아줌마’라는 얘기를 듣는다. 2년 전에 서울에서 인천으로 내려왔고, 서울에서도 10년쯤 이 일을 했다.


인천은 서울보다 ‘가사도우미’를 바라보는 인식이 낮다. 서울은 보수도 후하고 이 일을 무시하는 시선도 적다. 반면에 교통비를 얹어주기는커녕 정해진 요금을 깎으려는 (인천)고객을 만나면 이만저만 섭섭한 게 아니다.


이금년 씨와 김순덕 씨는 ‘가정관리사’라는 직업에 애정을 갖고 있고, 대체로 만족한다. 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고객의 집을 방문하는데, 당일 아침에 오지 말라는 문자를 받으면 허탈하다. 심지어는 문 앞에서 메시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순간 해고’, 그렇게 하루 일당의 반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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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금년, 김순덕씨. ⓒ 이재은


여성노동자회 부설 가정관리사협회 ‘해피타임’ 심옥섭 대표는 물건이 없어졌다고 고객이 의심할 때와 여행 간다고, 시어머니 온다고, 오늘은 혼자 있고 싶다고,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고, “오지 말라”며 ‘순간 해고’ 하는 것을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다.


“정해진 날짜에 그 집에 가지 않으면 우리는 놀아야 되거든요. 그러면 그날 임금은 없는 거예요. 계약서를 쓴 건 아니지만 약속을 한 건데, 미리 연락해주지도 않고 당일에 취소를 해버려요, 문자 한 통으로. 회원들은 친정아버지가 위독한 경우처럼 급한 상황이 아니고는 몸이 아파도 가려고 애쓰는데 고객들은 무책임한 경우가 있어요. 우습게 생각하는 거죠.”


“2주 만에 가면 일이 더 쌓여있어요. 빨래도 많고, 쓰레기도 잔뜩 있어서 시간 안에 전부 치우려면 만만치 않죠. 우리를 완전한 직업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일용직처럼 대하는 것이 제일 힘들어요. 우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가 그렇게 여기지 않으니 맥 빠지죠.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의 비애가 여기에도 있어요.”



“이제 아줌마한테 살림 다 맡길게.”


이금년 씨는 부개동에 사는 퇴직 교장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첫 출근 날, 전철이 아닌 버스를 타는 바람에 20분 정도 늦었고, 87세 어르신은 63세인 이금년 씨를 학교에 늦은 지각생 야단치듯 혼냈다. 이금년 씨가 소속돼있는 ‘해피타임’에 전화를 걸어 “지각하는 사람을 어떻게 믿느냐, 젊은 사람으로 바꿔달라”고 화를 냈다. 심 대표는 다시는 늦지 않도록 하겠다며 한번만 믿어달라고 부탁했다.


요즘에는 어르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얘기하고, “아줌마한테 살림을 다 맡길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정도가 됐다. 매일 오후 5시 30분에 저녁을 먹는데 “잘 먹었다”고 말해주면 이 씨는 그게 제일 기분 좋고, 고맙다. 어르신이 식사를 남기면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걱정된다.


이 씨는 감정적으로 힘든 점은 별로 없다고 한다. 바닥을 걸레질할 때 허리가 아프고, 손가락을 많이 써서 관절이 붓고 피가 날 때 괴롭기는 하다. 그래도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나이가 들어도 돈 쓸 일이 많아요. 손주한테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러려고 버는 거죠 뭐. 건강할 때까지 일할 거예요. ”



“의심해도 괜찮아요. 난 떳떳하니까요.”


내성적이고 느긋한 성격인 이 씨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김순덕 씨를 부러워했다. 김순덕 씨는 반지, 목걸이가 없어졌다며 의심하고 심지어 고객이 주머니를 손으로 더듬어도 (기분은 나쁘지만) ‘내가 떳떳하니 괜찮다’며 금방 털어버린다.


“얼마 후면 이민을 가는 집인데, 사장님이 반지가 없어졌대요. 뭐가 없어졌다고 하면 우리는 불안한 거예요. 내가, “반지가 없어졌다고요? 그러면 이사 못 가요. 반지 찾을 때까지 여기 계세요. 나도 오해받기 싫어요.” 그랬어요. 다음 날인가 찾았다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보따리가 크면 오해한다’는 말이 있다. 식당에서도 큰 가방을 들고 다니면 싫어한다. 하지만 작업복, 물통, 이동 중에 먹을 간식을 싸갖고 다녀야 하는 사정 때문에 작은 가방은 들 수가 없다. 서로 믿으면서 사람을 쓰고, 신뢰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어떤 사람은 자기네끼리만 음식 시켜먹고 마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기분 나쁘지. 아무리 청소하는 사람이라도, 세상에, 어떻게 자기네만 시켜 먹느냐고.”


김 씨는 30년 동안 혼자 사는 어르신의 집을 1년 반 넘게 꾸준히 가고 있다. 부인이 사고로 죽은 뒤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자식이 여덟인데 왜 혼자 사느냐고 물으니 “나하고 살자는 놈은 하나도 없어.” 했단다.


“노인네가 나를 엄청 기다려요. 일주일에 세 번 가는데 가면 경비 아저씨가 '내내 기다리다 방금 들어가셨어.' 그래요.” 김 씨는 어르신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집 안에서, 또 집밖에서 어르신과 운동 겸 산책을 한다.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음식을 해놓는 것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이나마 누군가의 대안 가족이 돼주는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핏줄’의 개념으로는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처럼’ 타인의 집을 가꾸고 보살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가정관리사다. 과거 '파출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고 지금은 '가사도우미' 혹은 '가정관리사'로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 처우는 낮은 편이다. 맞벌이 부부와 일인가구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가정관리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해피타임’ 심옥섭 대표는 가정관리사에게도 노동자성을 인정해서 산재와 고용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재랑 고용보험만 돼도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잖아요. 관리사가 좋은 직업이고, 괜찮은 직업인 걸 알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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