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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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0.14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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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한국인 대다수가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감정노동은 말투나 표정, 몸짓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억누르고 직무의 한 부분으로 연기하기 위해 자신을 통제하는 일을 말한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서비스업 종사자가 늘어나면서 노동의 한 형태로 등장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감정노동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감정노동은 모든 업종에 퍼져 있는 일의 한 형태로 대부분의 직장인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 용어는 미국 버클리대 명예교수이자 여성 사회학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가 1983년에 펴낸 <통제된 마음(The Managed Heart)>에 처음 등장했으며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을 하는 사람들을 일러 감정노동자라 한다.


항공기 승무원, 음식서비스 관련직 감정노동 1위

지난해 4월 포스코 그룹의 한 임원이 여객기 안에서 서비스 제공에 불만을 표출하며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감정노동자의 현실이 큰 주목을 받았다.

2012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3개 직업, 노동자 5,6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항공기 승무원이 감정노동에 가장 많이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기 승무원은 심각도 5점 만점에 4.7점을 기록했으며, 홍보 도우미(4.6점), 휴대폰 판매원(4.5점), 장례지도사(4.49점), 아나운서, 식당 웨이터, 패스트푸드점 점원, 콜센터 상담원, 미용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직업군별로는 음식 서비스 관련직이 4.13점으로 감정노동이 가장 심했고 영업 및 판매 관련직(4.10점), 미용.숙박.여행.오락.스포츠 관련직(4.04점), 사회복지 및 종교 관련직(4.02점) 순이었다.

감정노동은 주로 여성, 30대 이하 연령에서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학력별로는 고졸자와 전문대졸자의 비중이 높았다. 또한 공공기관보다 민간기업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이 더 많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알코올 등 약물 의존 심해

지난해 4월 29일 한명숙 의원실이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 등과 공동으로 개최한 ‘감정노동의 실태와 개선 방향에 대한 긴급 토론회’ 실태 조사 자료에는 정신적 충격을 입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거나 알코올 등 약물에 대한 의존이 심해져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린 감정노동자들의 사례가 다수 소개됐다.

많은 감정노동자들은 손님의 항의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뒤 다시 관리 직원의 질책이 이어지거나 고객 만족도 점수를 낮게 받는 이중고를 겪었다. 또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족들에게 푸는 등 가정불화를 일으키는 사례도 있어 상처 입은 감정이 다른 영역으로 전파되는 양상도 나타났다.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인식에서 한국은 후진국이다. 유럽은 감정노동을 고령화나 고용 불안과 함께 미래 사회의 10대 심리적 위험 요인 중 하나로 보고, 산업재해 승인 범위를 ‘사고 중심’에서 ‘질병 중심’으로 완화하는 추세다. 유럽연합은 2000년부터 직장에서 받는 직무 스트레스를 차별 행위로 간주하고 법을 통해 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 직무 스트레스를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1년 감정노동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노동자와 사업주에게 배포했지만 정책 권고나 강제성 있는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서비스노조, 2014년 2월 '감정노동자 보호 법안' 통과 촉구

금융노조/우정노조 등 서비스 분야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감정노동자 보호입법 추진을 위한 전국네트워크'는 지난 2월 12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률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감정노동 네트워크는 "오랜 기간 감정노동을 하게 되면 화병이나 대인기피증,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갖게 되고 그 스트레스가 주변까지 영향을 미쳐서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며 "감정노동자의 건강권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을 적극 논의하고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개정안은 사업주에게 감정노동을 완화할 수 있는 업무지침을 작성하도록 하고 감정노동자에게 심리상담서비스를 제공하며 고객에 의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시행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한국인 대다수가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한국의 감정노동자는 약 60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지만 약 1100여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작동하고 있는 ‘갑을관계의 정치학’ 때문에 사실상 한국인 거의 대다수가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돈으로 타인의 인격까지 살 수 있다는 생각, 돈만 내면 다른 사람의 인격을 지배하고 무시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빗나간 ‘소비자 권리 의식’은 사라져야 한다. 승자독식주의가 활개를 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없이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감정노동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생존을 위해 많은 감정노동자가 인격적인 모욕을 참으며 웃음을 팔고 있다.

[인천in]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고자 현장에서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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