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기술과 감정을 같이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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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기술과 감정을 같이 팔아요.”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1.13 0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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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⑤-헤어디자이너

상품(商品)은 ‘장사로 파는 물건 또는 매매를 목적으로 한 재화’를 뜻한다. 

인간의 감정도 상품이 될 수 있을까? 앨리 러셀 혹실드는 그의 책 ‘감정노동-노동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상품으로 만드는가’에서 자본주의가 감정관리 능력을 ‘도구’로 바꾸지는 않았지만 경쟁과 연결 짓고, 미소를 광고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감정을 상품으로 바꾸거나, 감정을 관리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도구로 바꾸는 데 자본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는 감정 관리를 사용할 방법을 찾았고, 그렇게 감정 관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조직하면서 더욱 박차를 가해왔다. 또한 감정노동을 경쟁과 연결 짓고, 실제적으로 ‘진심 어린’ 미소를 광고하고, 그런 미소를 만들도록 노동자를 훈련시키고, 노동자들이 미소를 만드는지 감독하고...(이하 생략)”

스물두 살에 미용을 시작해 아이 낳고 잠깐 쉬다가 일 년 전부터 다시 헤어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강진이(가명. 37) 씨를 만났다.

강 씨는 연수구 옥련동 모 아파트 단지 내 미용실에서 일한다. 이전에는 규모가 제법 큰 숍에서 근무한 적도 있지만 결혼 후에는 원장과 강 씨 둘만 있을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을 찾았다.



"미용은 22살 때부터 했어요. 친구 엄마가 미용실을 하고 있어서 친구가 먼저 시작했고 저는 나중에 따로 배웠어요. 꾸준히 일하다가 서른 즈음에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6, 7년 쉬었어요. 둘째가 세 살이 된 뒤에 다시 일하기 시작했죠.”

강 씨는 ‘미용사’보다 ‘헤어디자이너’라는 말이 더 좋다고 했다. ‘OO미용실’, ‘OO머리방’보다는 ‘헤어아트’, ‘헤어살롱’, ‘美&HAIR' 등의 간판이 주류를 이루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

10년 전과 비교해 요즘 손님들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더 까칠해졌을까? 더 친절할까?

“한 마디로 똑똑해졌어요. 예전에는 손님들이 우리가 권해주는 걸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었어요. 요즘은 달라요. 옷도 브랜드 따라 다르듯 헤어제품도 브랜드가 있는데 손님들이 더 잘 알아요. 종류도 많고 특징도 천차만별이죠. 고객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우리도 뭔가를 아는 고객에게는 설명하기 쉬워서 편한 점이 있어요.”

이전에는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말’로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요즘 손님들은 드라마 속 탤런트의 헤어스타일, 특정 가수의 헤어컬러 등을 ‘콕 집어서’ 사진으로 보여준다. 의사전달과 수용이 빨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는 고객이 있죠. 충분히 상담을 한 뒤에 머리를 했는데 하고나서 딴소리 하는 거예요. 본인이 생각했던 이미지랑 현실에 차이가 있었던 거죠. 그 머리를 하면 이렇게 되겠다고(예쁘겠다고) 기대에 부풀었다가 상상했던 대로 나오지 않자 실망한 거예요. 해달라는 대로 해줬는데 자기랑 안 어울린다면서 짜증을 내는 거죠. 그럴 때는 정말 난감해요.”

“미용사가 ‘머리만’ 할 것 같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건 ‘상담’이에요. 손님의 개인사나 고민을 상담하는 게 아니고, 원하는 머리 스타일에 관한 거죠. 어떤 분하고는 30분 넘게 얘기하기도 해요. 자기스타일을 정하지 못하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미용실에 와서 한참을 고민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물건 두 개 놓고 이거 살까, 저거 살까 결정하지 못하는. 그런 손님은 받아주면 한도 끝도 없어요. 진짜 진 빠지죠. 미용사에게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끈기도 필요해요. 화도 잘 참아야 하고요. 기술도 중요하지만 상담도 중요하죠. 반대로 고객과 소통이 잘 되면 설사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도 단골이 돼요.”

너무 많이 알거나 앞서서 얘기하는 손님도 힘들다. “여길 이렇게 자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윗부분을 더 세워주세요.” 강조한다. 하지만 머리 모양, 머릿결, 얼굴형 등등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많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처럼 말하면서 ‘전문가’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 고객도 골치 아프다.

강 씨가 일하는 미용실은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손님이 없으면 오후 6시에 닫는다. 대부분의 미용실은 9시부터 9시까지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강제성이 없으니 오너 맘대로다. 휴일도 알아서 정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념일이나 행사가 있으면 미용실에 와서 머리 하는 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성능 좋은 기구나 약품으로 염색, 드라이를 셀프로 하는 사람이 많다. 미용실 점포 과다, 기계사용의 편리성 등으로 헤어디자이너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드라이’는 한 번 하는 데 만원이거든요. 어떤 분이 5만원을 내면서 자주 올 테니까 한 번에 5천원만 받아라, 그래요. ‘자주’가 어느 정도인지 합의된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 하루 이틀에 한 번은 와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올까말까 하면서 5천원에 해달라고 하니 참... 결국 남은 금액을 채우지도 못하고 대신 제품으로 달라고 요구하신 분도 있었어요.(하하)”

“이 일을 오래 하면서 ‘사람 보는 눈’이 생겼어요. 점쟁이가 아니니 다른 건 모르겠고, 미안한 말이지만, ‘진상일 것 같다, 아니다’는 대충 알아요. 까칠하겠다 싶으면 예쁘다는 칭찬도 한 번 할 거 두 번 하고, 더 많이 물어봐 주면서 관심을 갖죠. 돌아가서 다시는 안 올망정 숍에 있을 때는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노력해요. 비위를 맞춘다고 할까요. 안 그러면 감정이 나빠지고, 제가 힘들어지니까 미리 예방(?)하는 거죠.”

올 가을, 겨울에는 어떤 스타일과 컬러가 유행할까.

“열펌, 발롬펌(세팅. 뒤집는 머리)은 꾸준히 인기가 있고, 컬러는 다크브라운 계열이 계절과 잘 어울려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은 비슷비슷해요.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 평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중고등학생들은 전부 앞머리를 눈썹 아래까지 일자로 자르고 다니잖아요. 다양함이 줄었어요.”

가만 살펴보면 우후죽순 생기는 카페만큼이나 많은 게 미용실이다. 강진이 씨도 “집 근처에 놀랄 정도로 미용실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

“남 밑에서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기보다 자그맣게 내 가게 차려서 생활비 정도만 벌자는 마음인 것 같아요. 새로 오픈하는 숍을 보면 작은 평수에 혼자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자기소유의 가게를 갖고 있으면 걱정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매달 세금과 월세를 부담해야 할 텐데 요즘처럼 미용실이 많아서는 경쟁이 심해 월세 내기도 힘들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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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① 한국인 대다수가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② 간병인 조모씨, “딸 같은 간호사가 무서워서 벌벌 길 때도 있어요.”
③ 대형마트 캐셔, “고객이 늘 왕이나 공주일 수는 없어요.”
④ 미추홀콜센터 상담원, “‘블랙 시민’ 케어도 우리 몫이죠.”
⑤ 헤어디자이너, “기술과 감정을 같이 팔아요.”
⑥ 영화 ‘카트’ 속 비정규직 노동자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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