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간호사라고 만만하게 보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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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간호사라고 만만하게 보지 않았으면...”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1.27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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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⑥-응급실 간호사

민은영(가명. 38)씨는 인천의 모 병원에서 16년째 일하고 있다. 응급실에서 일한 지는 6개월쯤 됐다. 직전에는 중환자실에서 5년 동안 근무했다.

"인턴에 뽑혀 여기 왔는데 병원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재미있었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의사 선생님과의 관계도 친밀했고요. 분위기가 맞지 않으면 그만뒀겠죠. 저는 이 병원에서 일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감정노동자에 관한 인터뷰를 요청 받고, 민 팀장은 수락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망설였다고 했다. “저는 환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편이거든요. 많은 환자를 봐왔으니까요. 그래서 저보다 훨씬 힘들어하는 어린 간호사들이 인터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어요.”


민은영 팀장은 응급실 간호사들한테 어떤 점이 가장 힘든지 물어봤다며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술 취한 사람이 욕하고 때리는 게 힘들어요.”

응급실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많이 와요. 길에 쓰러져있는 사람을 경찰이 발견하고,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면 119를 부르죠. 단순히 술에 취한 건지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건지 확인이 안 되니까요. 요즘에는 휴대전화 잠금 기능 때문에 보호자 연락처 찾기도 쉽지 않고요. 술이 깨면 욕하는 건 기본이고요, 구급대원이나 병원 보안기사를 때리는 사람도 많아요. 간호사들한테 성희롱 발언도 많이 하고, 술집으로 착각을 하는 건지 물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요.

구급대원이 주취자를 눕히고 가면 나머지는 저희들 담당이죠. 수액을 놔주고, 깰 수 있게 도와주고요. 병원에서는 모든 주취환자를 데리고 있어야 하고, 증상이 의심되면 무조건 진료해야 해요. 욕설과 폭언을 감수하는 건 물론이고 달래면서 일할 때도 많아요.

“생명의 위협을 느낍니다.”

치료 중에 가위나 칼을 들고 위협하는 사람이 있어요. 폴대를 들고 간호사를 위협하기도 하고 물품을 깨부수기도 하고요. 남자간호사가 있으면 조금 얌전하지만 여자들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술 취하면 안하무인이 되는 거죠.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면 너가 뭔데 보여달라고 하느냐 따지고... 어떤 분은 여러 차례 너무 심하게 행동해서 행정처분을 신청했는데 술 깨고 찾아온 거예요. 술 깨면 너무 친절해요. 노모랑 찾아와서 사과하면서 일해야 하니 한번만 봐달라고 하죠. 그럼 어떡해요. 불쌍해서 봐줄 수밖에. 근데 술 취해서 또 병원에 오고... 4, 50대 알코올중독자가 많아요. 결혼을 안 했거나 했더라도 아내와 자식 없이 노모와 둘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왜 그런지 거의 비슷해요. 노모가 알코올중독자인 아들하고 같이 와서 사과하고...

“먼저 온 사람보다 위급한 사람이 우선이라는 걸 알아주세요.”

손가락을 베었거나, 배가 아픈 것도 본인의 상황에서는 고통스럽겠지만 생명이 위독한 사람을 먼저 봐주는 게 우선이 돼야 해요. 그런데 나보다 저 사람을 먼저 치료하느냐고 따지는 분이 계세요. 간질을 앓던 사람이 심장마비로 실려 와서 1시간 반 정도 의사, 간호사가 매달렸던 적이 있거든요. 결국 돌아가셨는데... 그럴 때 옆에서 나를 먼저 봐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환자를 보면 엄청난 패배감을 경험해요. 자기 부모, 자기 아들이라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간호사는 병원 내에서 환자와 가장 밀접한 사람이다. 환자의 상태, 가족관계, 성격, 버릇, 또 주차장은 어디에 있는지, 주차료는 얼마인지, CT와 MRI 가격, 흡연구역, 점심 메뉴 등등까지. 헌신과 희생에 비해 우리나라의 간호사 처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지만 저는 간호사가 훌륭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감정노동을 견디는 일이 많지만 그러면서 지식까지 전달할 수 있는 직업은 없거든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환자들과 대화하는 거 좋아하고, 환자가 감사하다고 말해주면 희열을 느낄 정도거든요. 심지어 전 3교대를 좋아하기도 했어요. 나이트 근무가 별로 힘들지 않더라고요. 낮에 자는 것도 괜찮았고. 체력도 되고, 환자 보는 것도 좋아하고, 간호 공부도 재미있었어요. 하나하나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고요. 간호사는 나만 알면 안 되거든요. 새로 들어오는 간호사들을 가르쳐야 하니까요. 몹쓸 지식으로 알려주면 안되잖아요.(웃음)”

요즘 ‘어린 간호사들’은 나이트근무가 있는 3교대를 기피한다. 요양병원, 헌혈의집처럼 나이트 근무가 없는 곳을 선호하고, 양호교사를 준비하거나 제약회사, 의료기 상사에 취직하는 사람도 많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임상’(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채 50%도 되지 않는다.

“간호부는 이직률이 높아요. 한해 입사자 중 30%가 그만두죠. 조금만 상처 받아도 못 견디는 거예요. 선배나 의사들이 심하게 혼내는 이유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에요. 3,40대인 중간 관리자의 고민이 많아요. 저는 특별한 의식없이 했는데 상처받은 티를 내면 그걸 다시 내가 되돌려 받고...”

중환자실과 응급실은 현재 2교대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3교대는 8시간씩, 2교대는 12시간씩 근무하는 건데, 앞뒤로 1시간에서 1시간 반, 업무인계를 위한 오버타임이 소요돼 3교대도 8시간이 아닌 9시간을 넘길 때가 대부분이다. 그럴 바에는 12시간씩 15일 일하고 15일은 쉬는 게 효율적이라는 거다.

“미국은 2교대가 많아요. 이틀 일하고, 3일 쉬는 거죠. off가 많으니 여유 시간을 갖기도 편하고요. 물론 인력이 많아서 가능할 거예요. 병동에서 3교대를 유지하는 이유는 노동 강도 때문이에요. 응급실은 응급환자가 없으면, 중환자실은 환자 상태가 크게 요동치지 않으면 쉴 수 있거든요. 그래서 12시간 근무도 괜찮죠. 하지만 병동은 매 시간 무수한 환자가 오니 확실히 힘들죠. 2교대 만족도가 높은 편이에요. 인력이 충분하면 병동도 2교대가 좋죠.”

민 팀장에게 ‘감정노동자의 고충을 나누다’ 첫 회에 인터뷰 했던 간병인 이야기를 꺼냈다. 30분마다 한 번씩 환자에게 석션을 해주느라 며칠 밤을 새운데다 간호사들이 도와주기는커녕 인격모독까지 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사연이었다.

“혼자서 며칠 동안 석션을 했다고요? 그런 건 개인 간병인 혼자 하기 힘들어요. 공동 간병으로 가야죠. 그 병원의 간호사들이 왜 안 도와줬는지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는 간병인에게 환자를 맡기는 경우가 많은 편이에요. 중증환자가 아니라면요. 간호사도 더 친절하고 덜 친절한 간호사가 있듯, 간병인 여사님들도 다 다르잖아요. 잘하는 분이 계신가하면 환자는 돌보지 않고 밤새 주무시는 분도 있고... 그럴 때는 저희가 뭐라고 하기도 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다.

“후배 교육을 계속 하고 싶어요. 가르치는 걸 좋아하거든요. 저희 병원은 보수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몇 안 되는 병원 중 하나예요. 간호사는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1년에 8시간씩 필수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거든요. 팀장인 저도 간호사 보수교육을 하고 있죠. 강의가 만족스럽다는 칭찬을 들으면 정말 기분 좋고 더 잘하고 싶고 그래요.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많은가 봐요.”

“간호사가 이직률이 많다고 했잖아요. 예전에는 왜 이직할까를 연구했다면 요즘에는 역으로 왜 남아 있을까를 연구해요. 조사 결과, 간호사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어요. 그런 걸 고취시킬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어요.”

민 팀장은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자녀가 있다. 3개월 육아휴직을 제외하고 휴직 한 번 없이 일해 왔다. 아이는 친정엄마가 돌봐주셨다. “일이 좋아서 병원에 올인 했어요.”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여자 간호사라고 만만하게 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의사한테 불만이 있어도 간호사한테 화풀이하고, 의사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 숙이는 분이 있어요. 환자의 병을 의사처럼 깊이 아는 건 아니지만 저희도 치료를 위해 많이 노력하거든요. 인격적으로 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안 그런 분이 더 많지만요.”

 

다음 기사 예고
[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① 한국인 대다수가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② 간병인 조모씨, “딸 같은 간호사가 무서워서 벌벌 길 때도 있어요.”
③ 대형마트 캐셔, “고객이 늘 왕이나 공주일 수는 없어요.”
④ 미추홀콜센터 상담원, “‘블랙 시민’ 케어도 우리 몫이죠.”
⑤ 헤어디자이너, “기술과 감정을 같이 팔아요.”
⑥ 응급실 간호사, “여자 간호사라고 만만하게 보지 않았으면...”
⑦ 통신 설치, A/S 기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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