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희 할머니를 추모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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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정희 할머니를 추모하면서
  • 이성진(인천근현대사 연구자, 영화여자관광경영고 교사)
  • 승인 2014.12.06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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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 얽힌 짧은 추억의 몇토막
2007년 배다리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던 고 박정희 할머니(왼쪽 두번째) 

‘천상 소녀’ 박정희 할머니께서 93세를 일기로 지난 12월 3일 돌아가셨습니다. 작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암이 발병한 것으로 나타나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화평동 냉면거리 안에 있는 ‘평안수채화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항상 웃는 모습으로 맞아 주시고 커피를 손수 한 잔 타다가 주셨는데 이제는 그런 정겨운 모습을 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박정희 할머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2년 전 배다리 아벨전시관에서 열린 ‘박정희 수채화 전시회’를 통해서입니다. 그 당시 다섯 자녀를 낳고 키우시면서 성장과정을 그림으로 일기를 쓰셨는데 그것을 모아 ‘육아일기’라는 책을 출판하고, 그림전시회를 열게 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박정희 할머니는 책읽기를 좋아하셔서 평소 배다리 헌책방 아벨서점을 자주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아벨서점 대표 곽현숙 선생님과 깊은 친분을 나누게 되었고 아벨전시관에서 박정희 할머니 그림전시회를 열게 된 것입니다.
 
제가 직접 뵌 것은 배다리 산업도로 저지운동을 하면서 ‘다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프로그램으로 동인천-배다리 일대를 답사하면서 ‘평안수채화의 집’을 방문하면서입니다. 그 자리에서 점자 훈맹정음을 창제한 송암 박두성 선생님의 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선친 박두성 선생님이 영화남자보통학교 교장을 지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영화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로서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찾아뵀을 때 할머니께서는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제자에게 수채화를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수채화를 가르치게 된 것은 평생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셨던 박정희 할머니의 그림을 이웃들이 보고 그림을 배우기를 원하면서 본격적으로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4,50대 제자부터 6세 어린이까지 다양한 세대들이 수채화를 배우는 특이한 미술교실이었습니다.

가르치시는 것이 특이한 것은 없었습니다. 다소 특이한 점은 제자도 그림을 그리고, 스승도 그 옆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뿐입니다. 스스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도록 한다는 점이 다른 미술학원과는 다른 점입니다. 단지 스스로 그리다가 해결하지 못하는 점이 있으면 그것만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박정희 할머니는 어머니 김경내 씨를 인생의 멘토로 삼고 그를 따라 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2008년 9월 고 박정희 할머니 댁을 방문해서 인천여성인물 사전에 수록될 어머니 김경내 씨에 관한 인터뷰를 할 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나는 우리 어머니 김경내 씨를 따라가려면 1/10도 못 따라가. 글쎄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율목동 골목이 나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 줄을 서있더라고. 하도 놀라서 물어봤더니 우리 어머니 김경내 씨한테 평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인 거야. 우리 식구들 중 누구도 몰랐어. 운구하는데도 그 사람들이 나서서, 마지막 가시는 길은 우리가 모셔야 한다고 난리들이었어. 결국 그 사람들이 모셨어요. 나는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어머니 김경내 씨가 어려운 가정살림 형편에도 더 어려운 사람들을 아무도 모르게 도와줬듯이 박정희 할머니도 자신이 가진 그림 재능을 화수동, 화평동 일대 어린이, 어른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일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하셨습니다. 또한 화도유치원 원장을 맡아 유아교육에도 헌신하셨습니다.
 
눈이 펑펑 내렸던 12월 3일 고 박정희 할머니는 오래 전 작고한 남편 고 유영호 원장 곁으로 가셨습니다. 93년이란 이승의 인연을 눈으로 다 덮어 놓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 떠났습니다.

작년 병원에서 암선고를 받았을 때 의사에게 이렇게 말하셨다고 합니다.
“참 감사합니다. 나는 더 이상의 어떤 치료도 필요 없고요. 오히려 참 행복합니다. 먼저가신 남편 만나러 갈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어요”
 
행복한 영원한 소녀, 박정희 할머니. 남편 유영호 원장님을 만나셔서 두 손 놓지 마시고 천국에서 더 행복하게 사세요. 
 

고 박정희 할머니가 내보인 어머니 김경내 여사의 젊은시절 사진 (사진제공=스페이스빔 민운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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