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나는 1972년 유신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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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나는 1972년 유신의 망령
  • 이혜정
  • 승인 2015.10.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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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이혜정 / 청소년창의문화공동체 '미루' 대표

- 10월의 멋진 날! 다시 살아나는 1972년 유신의 망령 -
 
오랜만에 원고를 일찍 끝내고 홀가분했었다. 지난 월요일까지. 마감 일주일 전의 마감. 그런데 지난 월요일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를 보며 글을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다. 물론 ‘그냥 넘기지,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 주제를 다룰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쓰기로 맘을 먹었다. 그것은 한 사진 때문이었다. 한 고등학생의 사진, 그 고등학생은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 역사교과서 이름인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비판하는 손팻말 ‘대통령님 우리는 ‘올바른 역사’를 배우고 싶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국민 한 명 한 명이 자기 자리에서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던져야 할 때.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은 과거 유신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전 박정희대통령은 1972년 유신헌법을 통해 영구집권과 독재의 길을 마련하고 입법, 사법, 행정의 권한이 대통령 1인에게 모두 집중되는 일인 독재의 시대를 열게 된다. 그리고 1973년 6월 정부는 초중고 국사교과서를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바꾼다고 발표하고 불과 1년도 안 된 1974부터 새 국정교과서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민주화의 열망은 막걸리 잔에 차고 넘쳤고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민주의 새시대를 맞이한 후 교과서 검인정제가 다시 도입된다.  1997년 고시된 제7차 교육과정에 맞춰 2002년 검정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제작되었고 2011년부터 전면적으로 검인정 교과서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배권력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던 국정 교과서가 다양한 관점과 입장을 수용하는 민주화의 요구로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께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다시 결정하셨다.
 
교과서를 검정 여부로 분류할 때 국정교과서, 검ㆍ인정 교과서, 자유발행 교과서 등 세 종류로 나눈다.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검정제를 넘어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대만, 싱가포르 등은 국정교과서와 검ㆍ인정교과서를 혼용하고 있는 반면 호주,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등 유럽 국가는 대개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역사 교과서는 검인정제를 넘어 자유발행제를 가고 있는 추세이며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북한과 몽골 이슬람 국가 등에 불과하다. 국정화를 바탕으로 역사에 대한 표준적인 해석을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은 사실상 정권이 공인하는 하나의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19일자 사설에서 ‘한국의 교과서-시대를 되돌릴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민주화 이후 30년 정도가 지난 한국은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는 선진국이다. 이런 때에 왜 역사 교과서만을 국정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는 현수막을 거리 도처에 내걸면서 진영논리와 좌우 이념 갈등으로 국면을 몰아가고 있다. 이는 국민과의 소통과 합의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상식적인 기본 원리를 심각하게 부정하는 행태이다. 또한 역사에 대한 하나의 해석만을 강요하고 다양한 해석과 입장을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교육은 정권의 이해에 따라 널뛰어서는 안 된다. 핀란드의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1963년 ‘종합학교개혁’이 시작된 이래로 30-40년 동안 흔들림없이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될 수 있었다. 교육과 관련한 정책이 정권의 이해관계를 따라 손바닥 뒤집듯 변화하는 것은 학생들을 정권의 도구로 만드는 것이다. 현 정부는 2017년 3월 학교 현장에 새 교과서를 공급하겠다고 한다.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갖춘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여 개발하겠다고 한다. 불과 1년 4개월만에. 정권은 바뀌어도 교육은 지속된다. 교육을 정권의 도구로 삼는 행태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중학생들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토론을 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어이없음’. 그리고 일갈했다. ‘일본 아베가 웃겠네요’, ‘북한과 똑 같네요.’
 
10월이다. 이렇게 눈부신 10월의 멋진 날, 1972년 유신의 환영과 겹쳐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극민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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