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끄트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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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끄트머리에서...
  • 김청규
  • 승인 2015.12.1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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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김청규/전 인천부마초등학교장
 
올 한해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제야의 종이 울리던 을미년 첫날, 보신각 타종을 생중계하던 아나운서가 ‘2015년은 상서로운 청양(靑羊)의 해’라고 기쁨에 들떠 소개하던 목소리가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귀에 들리는듯합니다. 하지만 120년 전의 을미년은 우리 한민족 백성들에게는 정말로 수치스럽고도 슬픈 한(恨)이 맺힌 해였기에 필자에게는 2015 올 한해의 회한(悔恨)이 자못 크게 느꼈집니다. 
 
지난 11월 말 ‘금빛평생교육봉사단’의 후반기 연수회 겸 평가회가 있었습니다. 충남대 의과대 가정의학 교수님으로부터 특강을 듣게 되었고 고맙게도 ‘의사가 만난 퇴계’ 라는 책을 기증받았습니다.
‘인간(human)이라는 어원은 흙을 뜻하는 라틴어 휴므스(humus)에서 나왔고, 언젠가는 한줌의 흙과 무기질로 돌아갈 허무하기 짝이 없는 물질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왜 모든 인간은 많은 갈등을 느끼며, 아등바등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가?’ 라고 적힌 구절을 접하면서 많은 생각에 젖어들었습니다.
 
우리 한국은 짧은 기간에 세계 10위권이라는 경제 기적을 이뤘지만, 국민들을 정작 행복하게 해줘야 할 책무를 지닌 선량들은 국민의 안위는 관심조차 두지않고 이념과 표풀리즘에 얶매여 하루가 멀다하고 이전투구만을 벌이고 있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누구 말마따나 국회의원 숫자를 대폭 낮추던지 아니면 아예 문을 닫던지 양자택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지금까지 몸 담고 살아 온 조국 대한민국에 가끔은 솔직히 염증이 남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이런 생각을 불식시키는 하나의 사건이 부지불식에 생겼습니다.
 
‘나이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침 식사 수저 놓기가 무섭게 몸이 나른하고 눈이 감깁니다. 흡사 이른 봄에 찾아오는 춘곤증 비슷한 증세입니다. 하긴 나이 칠십이면 옛날에는 뒷방에 물러앉아 죽는 날만 기다리는 상늙으니 입니다. 하지만 근자에는 섭생도 좋고 의술도 발달되어 칠십은 중·장년 세대로 칩니다. 아무튼 실버들에게는 좋은 시절이 분명합니다. 식곤증 증세가 나타나면 일찍 감치 자전거를 끌고 서운동 텃밭으로 나갑니다. 텃밭에 도착해서 흙냄새를 맡으면 희안하게 식곤증 증세가 싹 가십니다. 그런데 동절기인 요즘은 밭에 나가도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전거 타고 부평의 아이콘인 굴포천 둘레나 부천 상동호수공원 때로는 경인아라 뱃길까지 다녀옵니다.
 
지난 12월 8일(화)에도 밥상 물리기가 무섭게 현직시절 한국교총으로부터 받은 어깨걸이 가방에 소지품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굴포천을 따라 삼산 유수지 체육공원을 거쳐 상동호수공원까지 갔습니다. 몸을 숙인 자세로 자전거를 타다 보니 어깨에 맨 가방이 자꾸 앞으로 흘러내립니다. 그래서 부천영상단지 아인스월드 근처에서 어깨에 걸쳤던 가방을 자전거 핸들에 붙잡아 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상동호수공원을 서너 바퀴 신나게 돌다가 한기(寒氣)를 느꼈습니다. 겨울철에 모자를 쓰면 내복을 입었을 때처럼 섭씨 2도 이상 보온된다는 글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실버들에게 어울리는 헌팅캡를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에 쇼핑몰이 몰려있는 상동 중심가로 달렸습니다. 수도권 지하철 7호선 상동역 앞 ‘세이븐 존’에 자전거를 파킹할 때까지 자전거 핸들에 묶어놓은 가방이 떨어진 줄을 몰랐습니다.
 
가방 속에는 신분증은 물론 신용카드, 친인척 및 지인 연락처와 정보가 들어있는 스마트 폰 등이 분실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의 힘이 쭉 풀렸습니다. 여기까지 달려 온 길을 되짚어 가면서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소중한 물건을 잃게 되면 별 별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습득자보다 분실자가 죄가 더 크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빨리 분실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페달을 밟아 귀가하여 신용카드 스마트 폰을 비롯하여 신분증 분실신고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속에서 염불이 나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누웠습니다. 
 서너시간 쯤 지났을까, 전화 벨소리에 눈을 뜨니 창밖은 어두워져 있습니다.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니 고교 동기 오 장군입니다.
“ 이봐 김선생, 가방은 어디다 떨구고 다니나!”
 첫소리에 귀가 번쩍 띄입니다.
“ 아니, 내가 가방을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알았어!”
“ 긴 말 말고 원미경찰서 야간 당직실에 빨리 가보게나, 당신 가방 누가 주워서 보관 중이래!”
“ 알았어, 고마워!”
 
 우리 주변에 선(善)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른 믿어지질 않습니다. 하루 동안에 지옥과 천당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그러면서 필자가 지금까지 염증을 내던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세태(世態)라는 사실이 너무나 고맙고 기쁩니다.
  이제 새 해부터는 나부터 모든 것 내려놓고 이웃에게 베풀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을미년 끄트머리에 지금껒 가슴에 담아두었던 편견을 지우고 새로운 안목으로 우리 사회를 직시하게끔 동기를 부여해 준 미담 주인공에게 다시 한 번 정녕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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