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돌이의 돌 모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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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이의 돌 모으기
  • 은옥주
  • 승인 2016.08.09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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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은옥주 / 공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돌돌이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30분째 엎드려 돌을 줍고 있다. 놀이터의 푹신한 우레탄 바닥에 깊숙하게 박힌 아주 작은 돌 쪼가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조그만 손가락으로 파헤쳐 모은 뒤 왼손에 옮겨 담아 움켜쥐고 놀이터 바닥을 헤집고 있다.
쨍쨍 내리쪼이는 햇살도 따갑고 엎드려 쪼그리고 앉은 것도 안쓰러워 몇 번이나 “이제 그만 줍고 미끄럼틀 타러 가자. 그네 타자.” 사정을 해도 아이는 “돌 주을 거야.” 하면서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열심이었다.

한참 만에 이젠 더 이상 주울 돌이 없어지자 아이가 두 손 모아 양손에 가득 모은 돌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돌 많이 모았어요.” 하고 보여준다.
아이는 두 손을 꼭 쥐고는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돌 가지고 올라가면 위험하니까 밑에다 놓고 타고 오자.” 고 타일러도 “아니 아니.” 도리질을 하며 그렇게 좋아하는 미끄럼틀 타기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다시 그네를 타려고 해서 또 돌을 놓고 가라고 하니 다시 시소로 간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못타고 우두커니 양 손에 든 돌을 꼭 움켜쥐고 서 있었다.

눈을 깜빡이며 작은 머리로 무엇을 생각하는 듯 서 있던 돌돌이가 갑자기 손을 짝 펴고 쥐고 있던 돌을 전부 확 쏟아버렸다.
그리곤 냅다 달려가더니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그네도 탔다. 그렇게 피땀 흘려 모았던 돌들은 다 잊어버리고.


                                          


나는 28개월짜리 조그맣고 앙증맞은 돌돌이의 행동을 보면서 나도 무언가를 꼭 쥐고 그것을 쥐고 있느라고 그것 때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마음껏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멈칫거리거나 놓치고 있는 집착된 행동은 없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집착’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에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무엇에다 마음을 두고’, ‘무엇을 움켜잡는’, ‘사로잡힘, 꽉 쥠, 달라 붙음, 허망한 생각을 고집하는 것’ 등의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심리학적으로는 여러 가지 다양한 개념들이 있으나 현재성 결여, 유연성 결여, 초연성 결여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 현재성 결여는 과거의 기억이나 신념, 감정 때문에 자신이 현재 해야 할 일이나 상황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 유연성 결여는 특정한 감정, 생각, 지각에 대해 의식이 계속 붙들려 있어서 현재 경험하는 현상에 대해 고정된 지각이나 태도를 고집하는 것이다.
▶ 초연성 결여는 자신이 싫은 것과 좋은 것을 구별하여 싫은 것은 애써 회피하려고 하고 반대로 좋은 것은 애써 붙잡아 직면한 상황에 담담하고 초연하게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집착’이란 과거의 경험이나 기존의 관념, 기억 때문에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자동적으로 특정한 방향으로 지각하거나 생각하고 느끼는 조건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돌돌이는 태어난 지 2년 조금 넘은 시간에 돌에 대한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돌에 집착하게 된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태어나서 계속 아파트에서 자란 돌돌이는 돌이 별로 없는 깔끔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나(외할머니)를 만나는 시간에는 항상 함께 아파트 옆 강가의 흙길로 같이 놀러갔다. 나뭇가지를 주워서 땅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돌을 주워서 쌓아 올리기도 하고 그렇게 놀았는데 유난히 그 놀이를 즐거워 했다. 지금도 나를 만나면 “할머니 강가 산책가요”하며 손을 잡아 끌곤 한다. “가서 뭐 하고 싶어?” 하고 물으면 “수박도 그리고 돌돌이도 그리고 동그라미도 그리고 기차도 그리고..”하며 좋아한다.

그곳에서는 돌이 많이 있어서 처음에는 돌을 줍기 시작하다가 이내 돌 모으기를 중단하고 나뭇가지를 주워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돌돌이는 아파트의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에서만 있다가 울퉁불퉁한 흙길에 틈틈이 박혀 있는 돌들을 보며 그것이 무척 신기하고 귀하게 보였던 것일까. 그래서 초연히 자나가지 못하고 돌들을 볼 때마다 모으고 찾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돌이 처럼 꽉 움켜쥐고 놓지 않는 것이 내게는 무엇이었을까 하며 집안을 둘러보니 곳곳에 집착의 흔적이 있다. 20대 인도네시아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손 염색한 원피스는 이제 입으면 단추가 채워지지 않아서 입을 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버리기 너무 아까워 장롱 속에 넣고 오랜 세월 그냥 가지고 다닌다. 그렇게 이것저것 구석구석 있는 것들을 모아보다가 문득 가장 많이 집착하고 있는 것에 마음이 갔다. 20대에 일본에서 사가지고 들어온 수직기이다. 그것은 학교 식당에서 매일 저녁, 접시 닦기 알바를 하며 1년간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사서 현해탄을 거쳐 뱃길로 2달을 소요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늘 작업실에서 내 20~30대를 함께 했던 기계이다.

그 기계로 내 이상과 꿈을 키웠고 그 기계에 앉아서 “뚝딱뚝딱 철썩.” 베를 짤 때면 나는 직녀가 되었고 예쁜 실로 짠 머플러나 판초는 여러 사람에게 기쁨을 선사했으며 내 미래를 영원히 같이 할거라고 믿으며 닦고 또 닦아서 반들반들 윤이 나는 아름다운 직기였다.

결혼을 하고 첫아이가 태어나고 또 둘째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아이 양육과 자아실현 사이에서 몇 번이나 직기를 폈다 접었다 했다. 또 다른 공부를 시작하고 또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고 그리고는 세월이 휘익 지나가는 동안 그 직기는 해체되어 신문지에 둘둘 묶인 채 긴 시간동안 뒷베란다 구석에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 쓴 채 외롭게 서있다.

‘아, 나에게 그 직기는 이제 다시 돌아갈 수조차 없는 과거인데 언젠가는 다시 하리라 마음 먹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집착이구나!’
필요한 누군가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광고했더니 금방 “저요.” 하고 손드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주겠다고 약속해 버리고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내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을 없애버리는 듯한 느낌. 하지만, 이제 과거를 떠나보내고 현재와 미래를 향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시원함도 있었다.

돌돌이는 나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그 조그만 머리와 몸에서 나오는 생각과 행동들이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고 비춰준다. 아주 조그맣고 앙증맞은 귀여운 작은 거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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