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성에 대한 담론- 사월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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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성에 대한 담론- 사월의 기도
  • 최일화
  • 승인 2016.09.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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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사월의 기도/노혜경


사월의 기도

                                                     노혜경


반지하 주차장 차가 빠져나간 구석에 어미고양이가 앉았다. 뒷범퍼엔 새끼고양이의 두개골을 살짝 묻힌 채로 무심히 돌아다닐 에쿠스가 있던 자리, 손바닥만 한 새끼고양이의 사체 옆에, 오래 앉았던 기색이 역력한 초라한 몰골로, 어미고양이가 갑자기 켜진 전등 아래 운다. 늑대처럼 운다. 사료를 먹고 물을 마시고 돌아와 기운내서 운다. 이 어미고양이는 지난 겨울에 뒷마당에 놓아둔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얼어 죽은 새끼 곁에 오래 머물렀던 그 고양이다. 눈가 얼룩무늬 위 누가 만들어주었는지 찢어진 흉터를 나는 알아본다.

그는 한 계절 사이 다섯 마리 새끼를 모두 잃었다. 남은 수명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새끼를 잃을지 모른다. 종량제 봉투를 가지고 와서 마른 걸레로 싸서 새끼를 담는다. 유한락스로 핏자국을 지운다. 이 더러움 타는 일을 서슴치 않는 까닭은, 어미고양이의 마음이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막아내고자 하기 힘든 일을 하는 거라고.

사월에 내가 하는 기도는 모두 그런 거라고.

《황해문화》2016 여름호


노혜경(盧蕙京): 시인. 1957년 생. 1991년『현대시사상』으로 등단.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 전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시집『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뜯어먹기 좋은 빵』,『캣츠아이』,『말하라, 어두어지기 전에』등. happyishome@gmail.com

|감상 노트|한 편의 시에 표현된 폭력성에 대한 담론

이 시 속의 고양이는 폭력에 피해를 입은 고양이이며 우리 시대 약자들의 울분을 대변하는 고양이이다. 피멍든 가슴을 안고 막다른 처지에 몰려 있는 통한을 삼키는 고양이다. 세월호에 대한 언급은 한 구절도 없지만 ‘사월’이 들어간 제목만으로 우리는 금세 세월호를 감지해낸다. 내 어린 시절 사월은 초등학교 입학식과 함께 찾아왔었다. 사월은 만물이 소생하는 입학의 달이었다.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사월은 4.19혁명의 달이 되었다.

이제 사월은 세월호의 참극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달로 다가오고 있다. 일 년쯤 전이었든가 인천문화재단에서 세월호 사건과 예술 창작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다. 발제자들은 한결같이 세월호 사건이 어떤 양상으로 예술작품에 구현될 것인지를 예측하고 있었다. 6.25이후 최대의 참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기도 했다. 이 사건에 예술가들이 침묵한다면 예술가들이 임무를 저버리는 일이라며 예술 속에 당위로써 구현되어야 한다는 논지가 주를 이루었다.

세월호 사건의 담론 확산으로 우리 사회를 개혁하고 일신하는 일대 전환기가 되어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예술이 관심을 갖고 다루어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이었다. 노혜경의 시를 읽으며 나는 그때 그 세미나에서 제시된 방향성이 옳았다는 생각을 한다. 세월호라는 단어 한 마디 없지만 이 시는 그 사건을 우리 관심의 복판으로 끌고 와 폭력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끝난 사건이 아니라 끝없이 제기되어야 할 담론이고 국가체제의 총체적 부실을 고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 속에 등장하는 새끼 잃은 고양이와, 죽은 새끼 고양이의 두개골을 묻힌 채 무심히 돌아다니는 에쿠스, 그 차량의 차고지에 웅크리고 있는 어미 고양이의 초상은 바로 세월호 희생자 부모의 모습이며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든 이의 모습이다. 이 시엔 우리 사회에 도사린 폭력성과 무책임을 환기시킴으로써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시인의 염원이 담겨 있다.

상존하는 폭력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화자는 새끼 고양이의 사체를 치우고 있다. 그 행위는 간절한 기도 행위이다. 사월에 하는 화자의 모든 기도엔 그런 비극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하고도 절박한 염원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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