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닮은 영화, 나탈리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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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닮은 영화, 나탈리 힘내세요”
  • 한인경
  • 승인 2016.10.0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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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공간] (3) 다가오는 것들, Things To Come / 미아 한센-러브 각본·감독

<인천in>이 남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시인의 협약하에 개봉영화를 리뷰하는 기획을 연재합니다. 한달에 1~2회씩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예술적 가치 및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획입니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Things To Come』

개  봉 : 2016.09.29 개봉(102분/프랑스)
등  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각본/감독 : 미아 한센-러브
출  연 : 이자벨 위페르, 에디뜨 스꼽, 로만 코린카, 앙드레 마르콩
상영관 : 「영화공간주안」





가을 그리고 10월.
7, 8월 염천의 폭염을 버텨내고 맞이한 계절이다.
10월. 살짝 혼자서 때로는 삼삼오오, 제대로 사유할 수 있는 영화로 추천한다.

영화보다 앞서 감독과 주인공 이자벨 위페르를 말하고 싶다.
각본, 감독을 맡은 미아 한센-러브는 1981년생으로 현재 프랑스 영화계에서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이다. 철학 교사였던 본인 어머니의 이야기이자 모든 어머니들의 초상화와도 같은 영화라고 말한다. 30대의 여성 감독이 연출해낸 50대 여성의 심리 묘사가 놀랍도록 정교하다. 이 영화는 2016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며 미아 한센-러브의 5번째 감독 작품이기도 하다.
이자벨 위페르. 다수의 세계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배우이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라는 영화로 한국 팬들과도 인연이 깊다. 『다른 나라에서』영화는 3가지 타입의 옴니버스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주인공 ‘안나’역으로 이자벨 위페르가 윤여정, 문성근, 유준상 등 한국 대배우들과 연기를 펼쳤다. 배경이었던 전북 부안 모항의 담담한 해변 마을 풍광과도 외국인이었으나 대배우답게 잘 스며들었던 영화였다.

영화『다가오는 것들, Things To Come』에서는 방점을 찍어둬야 할 내용을 3가지로 모아 본다.
첫째, 이자벨 위페르의 절대 치우치지 않는 감정 연기를 꼽고 싶다. 평온한 일상에 예고 없이 던져진 돌에 맞서는 여성 심리를 균형과 절제로 극대화하여 연기하고 있다. 놓치지 말자.
둘째, 철학, 가을, 프랑스 시골, 우디 거스리와 슈베르트까지 관객들에게 충분한 감성을 자극  시킨다. 맘껏 누리고 영화관을 나오자.
셋째, 상실의 시대, 나에게 떠나가는 것들과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재인식이다.





영화는 주인공 나탈리(이자벨 위페르)를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주제에 대한 시험지를 채점하는 철학교사의 모습으로 등장시킨다. 1인多役을 해내는 기혼여성들의 모습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비슷했다. 아내, 두 아이의 엄마. 홀어머니의 딸, 철학교사, 책을 쓰는 작가로 나탈리는 분주하지만 안정된 생활을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보통 여인. 나탈리의 평온한 일상에 남편이 애인이 생겼다는 한마디는 파문의 시작이었고 영화의 대주제를 끌어가게 된다.

‘다른 사람이 생겼어.’ 25년을 함께 산 남편 하인츠(앙드레 마르콩)의 이 말은 일상의 질서를 일시에 무너뜨린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이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나름의 질서와 평화가 있었다. 好事多魔라고 나탈리에게 원치 않는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나탈리가 집필해왔던 철학 교재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며 인기 없는 책으로 전락하여 출판사에서 이른바 퇴출을 당하게 된다. 병상에서 치매 증상을 보이는 친정어머니(에디뜨 스콥)는 요양병원으로 모시지만 얼마 못 가 숨을 거두신다. 딸들은 출가하여 자녀를 낳으며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한다. 나탈리가 남편과의 결별로 일상을 벗어난 시간을 갖기 위해 제자 파비앵(로만 코란카)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산 속으로 찾아간다. 젊은 급진주의파 그룹에서 나탈리는 그들과는 결코 같은 길을 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파비앵은 학창 시절의 은사인 나탈리에게 지행합일이 아닌 삶을 산다고 반박을 당하는 상황까지 겪는다. 나탈리는 개혁성을 논하기엔 자신이 너무 늙었고 젊은 시절 다 해 본 거라며 파비앵의 사상에서 스스로 물러선다.





삶의 일부였던 것들의 상실, 이별이 진행 중이다. 나탈리는 최고의 지성인임을 자부하면서 하나둘 사라져 가는 주변의 소멸에 이제야 인생 최고의 온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키우시던 늙고 살찐 고양이 ‘판도라’를 껴안고 소리를 죽여가며 흐느끼는 나탈리. 미처 정리되지 못한 상황에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우리는 행복을 기대한다, 행복이 안 온다면 희망은 지속되며 이 상태는 자체로서 충족된다.’는 알랭의 행복론을 비롯한, 아도르노, 루소, 팡세, 호르크하이머, 레비나스 등 철학자들의 사상들이 책으로 글로 인용된다. 고인이 되신 어머니를 모시게 될 묘소에서 나탈리가 낭독하는 팡세의 글은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울림이었다.
한국 고교과정에 철학 과목은 없다. 프랑스의 철학 과목이 있는 교육과정이 새로웠고 부러웠다. 교사와 학생 간 철학적 사유가 오고 가는 교실. 잠시 국가 원동력이 어디서 기인할까 근원을 생각하게 했다.





 ‘판도라’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자주 등장한다. ‘판도라’는 휴대용 케이지에서 나탈리와 동선을 함께 한다. 판도라 상자가 닫히고 열리며 영화는 일종의 복선을 이뤄간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는 열림과 동시에 모든 불행이 세상에 쏟아져 나왔지만, 상자 맨 아래에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판도라’라는 이름이 그저 고양이 이름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감독의 메시지가 암묵적으로 읽혀진다.

『다가오는 것들』 후반부로 갈수록 존재하는 것과 공간에 대한 재인식의 조각가 자코메티가 오버랩되었다. 자코메티는 보이는 존재를 최대로 없앤다. 마치 뼈만 앙상한 듯하고 사람 보통 키를 훨씬 넘게 만든 조각상은 인간 내면의 절대 고독과 함께 그 조각상이 만들어 내는 숨죽일듯한 공간에 대한 인식을 촉구한다. 나탈리에게 사라져 가는 주변의 것들은 역설적으로 판도라 상자의 희망처럼, 자코메티의 공간 재인식처럼, 철학을 붙들고 싶어 하는 간절함처럼 이성을 다지게 하고 감성을 일깨우며 일상에 복귀하게 한다.

인생은 철학 말고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탈리는 손주를 돌보며 즐겨 읽는 책을 선물하기도 하면서 다짐과 관계를 일궈나간다. 사라져 간 것들로 여유를 갖게 된 침묵의 공간을 보자. 다른 색깔의 공간으로 재충전되어가는 나탈리의 인생 후반부가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비연속적인 공간에 대한 체험은 나탈리의 삶의 복원을 의미한다.

사라지면 다가오는 것들.
나탈리의 삶의 여정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한인경 / 시인·인천in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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