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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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대한 단상
  • 은옥주
  • 승인 2016.12.0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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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은옥주 / 공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알록달록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바람이 불면 우수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손자와 나는 나뭇잎 을 날리기도 하고 낙엽위로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들으며 걷기도 뛰기도 했다.
아이가 폴짝 뛰어오다 갑자기 콩닥 넘어졌다. 잠깐 후 아이는 손을 치켜들며 “와~~앙.” 하고 자지러지듯 울음을 터뜨렸다.

황급히 뛰어가 아이의 손을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가 넘어진 곳에는 삐쭉삐쭉한 밤송이가 여러개 떨어져 있었다. 아이는 안겨서 온몸을 떨며 내 몸에 찰싹 붙어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더니 “뭐가이쩌?.” 하고 눈물 가득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응. 밤송이가 있었어. 아야 했지?” “그게.. 저번에 너 맛있는 밤 먹었지? 그 밤이 속에 들어있고 겉에는 가시가 있어. 거기 찔린거야.”
아이는 설명을 듣는 듯 울음을 그쳤다가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울더니 다시 “뭐가 이쩌?” 하고 또 물었다.


          
                            <출처 : http://photo.naver.com/view/2003101819450018561>


아마도 뭐가 나를 아프게 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응 밤송이야.” 나는 아이의 궁금증을 풀어주어야할 것 같아서 밤송이를 손끝으로 간신히 집어들어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아이는 알아듣는 듯 하더니 또 “우~~앙.” 하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가 다시 그치고 “뭐가 이쩌?” 하고 되묻기를 6번이나 했다. 나뭇잎 속에서 무엇이 그렇게 아프게 찔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계속 밤송이를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했더니 울음을 그치긴 했으나 이제는 낙엽만 보아도 울면서 찰거머리처럼 내 팔에 붙어서 땅에 발을 딛지 않으려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아이는 낙엽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몹시 불안해하기에 낙엽을 주워다 손으로 문지르면서 한참을 안심시켰더니 겨우 자기도 다시 만져보더니 조심조심 걷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요즈음 두려움 이라는 감정을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같이 산책을 할 때 무심코 자기가 좋아하는 길로 마구 달려가다가 갑자기 내가 보이지 않으면 깜짝 놀라 “한머니 한머니.” 하고 다급하게 소리치며 사방을 둘러보며 울음을 터뜨린다든가 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재미있게 혼자 놀다가도 내가 안보이면 놀라서 허겁지겁 찾아나서고 밤이면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여 내 목을 꼭 끌어안고 떨어지지 않는다든가, 그래서 손전등을 하나 사서 손에 쥐어주고 밤 나들이를 나섰다. 동그란 불빛이 손이 흔들리는대로 움직이며 이것저것 비춰지는게 신기한지 아이의 캄캄함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줄어들었다. 또, 가로등 불빛을 중심으로 그림자놀이를 하면 키가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때로는 할머니 그림자와 합체하는 동작을 할 때는 아이는 무척 즐거워하며 ‘까르르까르르.’ 숨이 넘어간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는 밤나들이에 재미를 붙여 저녁이면 “한머니 전등 산책가요.” 하고 내손을 끌며 밤의 캄캄함이 무섭지 않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았다.
시골은 유난히 밤이 깜깜하고 어두웠지만 어느 집 평상이나 멍석에 아이들이 다 모이면 입심 좋은 아저씨들이 이바구를 한자락씩 해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죄다 참 무서운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다.
뒷간에서 털이 북술북술한 손이 쑤욱 올라와 “빨간 것 줄까 파란 것 줄까.” 해서 나는 그날부터 뒷간만 보면 손이 금방이라도 올라오는 것 같아 그때부터 뒷간은 무서워 갈수가 없었다. 또 몽당 빗자루에 피가 묻어있어서 그게 몽당귀신으로 바뀌어 머리풀고 따라오는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집 옆 방앗간을 밤중에 지날 때는 흰 소복 입은 귀신이 나타난 듯해서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올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고양이가 굴뚝으로 들어가니 관에 들어있던 시체가 거꾸로 벌떡 일어선 이야기를 듣고는 그때부터 고양이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고양이가 지나가기만 해도 자지러지듯 놀라곤 했다. 듣다가 너무 무서워서 오금이 저리고 머리끝이 쭈뼛쭈뼛해져서 눈앞이 다 아득했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들은 중독성이 강해서 저녁이면 아이들은 모두 모여 까만 눈망울을 굴리며 그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러다가 아저씨가 “왁!” 하고 갑자기 소리를 치면 아이들은 모두 까무라쳤다.
그리고, 깜깜한 골목길을 걸어 집에 올 때는 골목에서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눈을 무릅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돌맹이에 걸리면 파다다닥 넘어져 무릎이 다 깨져도 아픈 줄도 모르고 벌떡 일어나 냅다 뛰다 걷다 했다. 왜 그렇게 무서운데도 그렇게나 재미있었는지!

그런데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면서도 나는 자주 악몽을 꾸고 꽤 오래 그놈의 귀신이 나타나서 사춘기 시절 내내 내방에서 혼자 잠자기가 무서워서 배게를 들고 사촌언니 방으로 기어들어 가곤 했다. 그 이후로도 한참이나 내가 제일 무서운 것은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고 다리가 없는 한국형 귀신이었다. 오히려 서양 귀신 드라큐라는 순간적으로 놀랐지만 오래오래 상상력을 자극하며 무섭지는 않았는데 내 꿈에 나오는 것은 어린 시절 이야기 들었던 혹은 영화에서 보았던 귀신 때문에 늘 가위에 눌렸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발도 없고 실체를 알 수가 없으면서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하여 새로운 두려움을 재생산 하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아직도 고양이를 조금 무서워한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웬지 마음이 긴장되고 날카로운 눈빛과 딱 마주치면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며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경험들은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일생을 통하여 지대한 영향력을 가져온다고 정신분석은 주장한다. 두려움이 상상력과 더불어 확대되고 계속되면 공포로 바뀌기도 하고 그것이 결국에는 성인이 된 후에도 여러 가지 증상을 나타내기도 하니 어린 시절에 두려움이나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은 참 좋지 않은 일인 듯 하다.

돌돌이는 “뭐가 이쩌?” 하면서 자기를 아프게 한 그 실체를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6번이나 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체를 정확히 알고난 후에는 두려움이 없어지고 공포감도 사라진 상태로 편안해졌던 것이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기의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애썼고 그것이 오랫동안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묻고, 또 물어서 마음에 공포감을 극복해내었던 것 같다. 두려움이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감춰져 있으면 공포감으로 발전하고 그것은 정신건강에 꽤 나쁜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이제 나는 어린시절 느꼈던 그 공포감은 극복 되었지만 가끔은 불안이 엄습하거나 두려움이 내 마음을 압도할 때 내 마음에게 속삭여준다.

“왜 그러는데? 뭐가 그리 무서운데?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우리 돌돌이와 똑같은 과정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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