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플 때 못 보는게 이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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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플 때 못 보는게 이별입니다.
  • 장재영
  • 승인 2017.03.28 0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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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성인발달장애센터 청년회장의 죽음


그냥 어느 주말 오후였다.
평일의 분주함을 보상하려는 일념으로 낮잠도 푹 자고 밖으로 나왔다.
막 봄이 오려는 시점의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한가롭게 동네공원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띠리링’ 울리는 알림 소리에 핸드폰을 집어들던 나는 한참동안 발걸음을 멈춘 채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 오늘 A가 심장마비로 천국에 갔습니다... 위로바랍니다....”

A는 성인발달장애인센터에 다니는 20대의 청년으로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일반인들과 비슷할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었다.
A가 처음 집단수업(치료적인 목적이기 보다 교육적인 목적으로 진행하는 경우이기에 상담 대신 수업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에 참여하던 날, 입은 꾹 다물고 고개는 푹 숙여 땅을 응시한 채로 필요할 때만 살짝 들어 정면을 응시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땐 A가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데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새 친구들과의 대면에 자신을 드러내길 힘들어했었다. 아마도 센터에 오기 전 다른 곳에서 지적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회에 적응해가면서 받았던 상처와 아픔의 흔적들이 있어 쉽사리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던 그가 조금씩 센터 수업에 적응해가면서 땅만 바라볼 것 같던 고개는 점차 정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바짝 긴장한 채로 어색한 미소를 짓던 그는 사라지고 유쾌하게 활짝 웃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진행하는 수업은 20대 이상의 성인발달장애인들이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교육이 필요로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돕기 위한 성인발달장애기관에서 사회적 상호작용과 자기표현 향상을 목적으로 매주 진행하고 있는 집단수업이다.

그들과 수업을 할 때면 굉장히 자유로운 느낌을 받는데 그것은 아마도 서로 평가하고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마치 나부터 어린아이가 된 듯 몸 개그 시도부터 살짝 오버스러울 정도까지 어디서 감히 체면이 상할까 보여주지 못한 내 모습을 마음껏 개방할 수 있어 매우 즐거운 시간이다.

“선생님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근데 이따가 광화문 연가 노래 좀 틀어주시면 안돼요?” 다른 집단원들은 빠르고 흥겨운 노래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 A는 정말 발라드를 좋아하여 집단원들의 댄스본능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가끔은 트로트 음악도 굉장히 좋아하여 안 맞는 음정에도 신나게 흥얼대곤했다. 그러다가 신이 날 때는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하며 점프를 뛰는 춤을 추곤 했는데 점프력은 높지 않으나 다리가 교차되는 속도가 엄청 빨라서 따라하기 힘든 제법 난이도가 있는 춤이었다.
나는 그가 그 춤을 출 때면 옆에서 매번 흉내를 내며 따라 추었는데 따라하는 내 모습을 보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그와 집단원들은 온통 깔깔거리며 웃어대곤 했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동안 꾸준히 성장해오던 A는 센터의 실습생이 되었고 주말에는 센터에서 커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또한, 특유의 의젓하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당당히 청년회장에 당선되었다.
그날은 집단 수업을 15분 일찍 마치고 당선 축하 과자파티를 했다. 당선 소감을 한번 말해보라 하자 그는 덤덤하게 과자를 먹으며 “이제 친구들 많이 챙겨줘야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열심히 하려고요.” 라고 말했다. 학습의 결과물 같은 아주 정석적인 대답이었지만 진심어린 그의 모습이 참 든든하고 뿌듯했다.

“네... 그리로 곧 가겠습니다..”
갑자기 A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았을 때는 상실의 아픔도 있었지만 그동안 함께 지나온 시간의 흔적들이 떠오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잔뜩 긴장해있던 첫 만남부터 자신감 넘치고 든든한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의 모습들과 그가 해주었던 한마디 한마디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 친구들도 좋고 맨날 이 수업만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 증말?? 헤헤..”
그가 이렇게 말할 때면 너무 기분이 좋고 뿌듯해서
“그래.. 나도 A가 너무 좋아. 늘 열심히 참여하고 A랑 수업하면 너무 재미있어.”
라고 말해주곤 했었는데... 이렇게 준비없는 이별을 맞이할 줄 알았더라면 더 잘해줄 것을...

그는 장애인이기 이전에 한명의 인간으로 소중한 사람이었고
부모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 센터에서는 청년회장까지 맡은 든든한 학생이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어려움을 이겨내며 묵묵히 성장해나가는 그를 보면서 내가 도움을 주었다기보다
되려 그를 통해 내 삶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의미를 찾아왔었던 것 같다.
치료사라는 직업은 마치 누군가를 돕고 있는 듯하지만, 어쩌면 스스로를 돕고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변화를 주면서 나 스스로도 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좋은 추억과 삶의 가능성을 느끼게 해준 A야 정말 고맙다.
그리고 네가 참 그립다.


                       <출처 : http://cafe.naver.com/lovejungcy/47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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