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언제나 수단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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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언제나 수단으로만
  • 정영기
  • 승인 2017.07.10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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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정영기 / 인천대 윤리교육 전공


 공자님의 말씀 중에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라는 말이 있다. 배우고 계속해서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라는 말이다. 몰랐던 것을 배운다는 것, 무언가를 새롭게 안다는 것에 대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배움을 평가하고 정리하는 시험에 대해 현실에서 과연 우리는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유치원 때는 받아쓰기 시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까지는 매 학기별 시험을 치루고 있다. 중학교에 자유학기제가 정착됨으로써 한 숨 돌릴 수 있는걸 제외하면 시험은 우리에게 필연적인 것이며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게 수능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르면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대학에 들어가면 학점과 함께 시험과의 만남은 계속된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을 마치게 되면 취업이 걸린 시험에 맞서 우리들은 도서관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청춘을 보내곤 한다.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시험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시험에 대한 의미에 대해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시험이란, ‘재능이나 실력 따위를 일정한 절차에 따라 검사하고 평가하는 일’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시험은 우리가 공부한 것에 대해 검사하고 평가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세우는 삶의 목적에 대해 수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지 결코 시험 자체가 우리 삶의 목적에 우선될 수 없다.

 시험은 수단화 할 대상일 뿐이다. 우리가 조금 더 나아가기 위해, 질 높은 삶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시험으로 우리들을 한계상황에, 극단에 몰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다. 서양의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했다. 궁극적 목적인 행복에 기여하기 위해 시험이 존재하는 것이지 시험이 그 자체의 목적일 수 없다. 따라서 시험이라는 것에 잠시 속상할 순 있어도 깊은 슬픔에 빠질 이유가 없다. 그것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었고, 앞으로도 수단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을 잘 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성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시험은 지적능력을 평가하는 잣대일 뿐이기 때문이다. 1점 차이로 임용고시에 낙방한 사람이 합격한 사람보다 교사로서의 자격이 떨어진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험이라는 것은 그 때의 컨디션, 상황, 경쟁자들의 점수, 운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것 하나로 한 사람을 감히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시험 없는 세상에 살 순 없을까라는 환상적인 유토피아를 가끔 꿈꿔보다가 이내 그 세상은 혼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만약 시험이 없다면 이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어떤 기준으로도 재화를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 재화는 한정적이기에 그 재화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시험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객관적인 지표로써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것이 시험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고, 사회를 위해 필요한 이 시험에 대해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미국의 로버트 엘리엇 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시험을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시험이 재화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면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시험이 나를 옥죄인다는 생각이 아닌, 시험으로 내가 어느 정도인지 평가해보며 어떤 부분을 다듬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는 태도를 가져보는 것이다.

 2017년 3월 24일 청주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20대 남성이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4년 째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에 낙방한 뒤 어머니와 함께 고향에 내려가던 길이었기에 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20대 꿈 많고 혈기왕성한 청춘을 공무원 시험에 쏟았는데 낙방하면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안타까운 소식이다. 시험은 지적능력에 대한 단편적인 평가만을 할 수 있을 뿐 그 사람에 대해 결코 감히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하나의 수단이고 계속해서 수단으로 우리가 활용해야 할 대상이다. 그 청춘은 시험 아닌 곳에서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다른 분야에서 재능을 꽃 피웠을지도 모른다. 결코 시험은 우리에게 목적이 되어선 안 되며, 한낱 수단으로 남아야 한다.

서양의 근대 철학자 칸트의 인간성의 정식을 빌려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너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인격에 대해 단순히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만 대하되,시험은 언제나 수단으로만 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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