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인문학, 그리고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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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인문학, 그리고 기본소득
  • 이건우
  • 승인 2017.07.16 2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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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건우/서울시립대 1학년


“그러면 대학교 졸업해서 뭐 먹고 살려고?”

 

철학과에 가고 싶다고 말한 고등학생 때부터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나 역시도 항상 하는 고민이다. 왜냐하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는 것은 취직에 큰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인문학이 다시 뜨고 있다지만 대학에서 전공으로서의 인문학은 별로 인기가 없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렇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도 지망학과로 문학, 철학, 사학을 꼽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특히 철학과는 내신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쓰는 과로 인식이 잡혀있었다.

 

그래도 나는 생각하는 것이 좋았고 세계를 보는 다양한 시각과 명증한 방법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철학과에 지원하였고 감사하게도 철학과에 다니고 있다.

 

1학기 종강 시간, 전공 교수님이 '철학은 분명히 유용성의 학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철학을 하는 것이 재미는 있지만 재미에서만 끝나는 것이지 정말 쓸모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 동안 이 의문을 품고 만나는 동기들마다 철학이 정말 쓸모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동기들이 철학은 모든 사회과학의 기초이기 때문에 쓸모가 있지 않느냐고 대답하였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철학이 철학 자체만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였을 때는 나도 동기들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였다. 교수님께는 밥벌이가 되니까 유용성의 학문인 거지, 우리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농담도 나왔다. 농담이긴 했지만 이래서 많은 대학의 철학과가 폐과 위기이고 아닌 대학의 철학과 출신마저도 취업이 힘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친구와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던 날이었다. 이 날도 어김없이 친구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친구는 "학문이 굳이 쓸모가 있어야 하냐"고 되물으며 내 생각의 방향을 확 꺾었다.

 

어쩌면 '쓸모'라는 것이 부각되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도 효율을 추구해왔지만 효율이 항상 1순위는 아니었다. 따라서 인문학이 쓸모없었어도 가치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효율과 쓸모가 1순위가 되다보니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경시받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쓸모없는 것들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 삶이 경제적 쓸모가 있는 것들로만 채워진다면 역설적으로 우리 삶은 전혀 풍요롭지 않을 것이다. 빈곤할 것이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우리에게 물질적인 무언가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치를 전해준다. 가령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이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가?' 이 질문들이 사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이 질문들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지금 쓸모없지만 가치 있는 것에 소홀히 하고 있다. 본디 사회는 비록 경제적인 이윤은 내지 못 하더라도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들, 그것들을 만드는 사람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나는 기본소득 논의가 반갑다. 이번 대선에서 이슈가 된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매월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하자는 복지 형태이다. 이 기본소득의 주요 취지는 기존 시스템에서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 한 사람들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은 대학원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하루 한 끼만 먹는 인문학도, 작업실 월세 내느라 정작 작업은 못 하고 알바를 뛰는 예술가들이 창출하는 가치에 지불하는 대가일 수 있다. 이때 이들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더 좋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누군가는 재원 마련의 문제로 인해 당장 전면적인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것은 어렵다거나 선별복지를 확충하는 것으로도 위와 같은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충분한 공론화와 논의를 거친다면 기본소득이 아닌 방안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 도입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논의 과정 자체다.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 기본소득을 도입했을 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생각해 볼 것이다. 이때 자연스레 기존 시스템에서 소외된 다양한 사람과 가치를 어떻게 존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이야기도 나올 것이다. 이 논의를 거치다 보면 우리는 합의하여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사회의 모습을 만들고 평소 소홀히 했던 가치와 사람들에게 눈뜨게 될 것이다.

 

인천에서도 인천기본소득공동행동 등과 같이 기본소득 청년조례를 제정하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있다. 또한 기본소득 조례를 다음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걸려는 정당들도 보인다. 이 움직임이 인천에서의 기본소득 도입 논의의 물꼬를 트고 기본소득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인천에 대한 활발한 논의로 이어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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