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을 열면 뭐 합니까?"
상태바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을 열면 뭐 합니까?"
  • 이병기
  • 승인 2010.09.16 20:2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군폭격 월미도 민간인 희생자 위령제…'원주민들의 분노'


인사말 중 한 맺힌 울음이 터진 한인덕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장.

취재: 이병기 기자

"너무 힘들고 어려워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6.25전쟁 당시 다른 지역은 피난 중에 폭격을 당했지만, 월미도는 미군이 상륙을 위해 주민들을 죽이거나 내쫓았습니다. 국가가 불법을 자행해 국민을 고통 속으로 내몰았습니다. 아직도 정부와 인천시는 아무런 해결책이 없습니다. 부디 자리에 모인 많은 분들이 마음을 합쳐 월미도 원주민들의 한을 풀어주시길 간절히 부탁합니다." - 한인덕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 위원장

9월 15일은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한 지 60주년 되는 날이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의 시발점이었던 인천 월미도에서는 불과 5분 거리를 두고 '박수'와 '울음'이 제각기 울려퍼졌다.

김금화 만신과 서해안풍어제보존회의 추모진혼굿국방장관과 인천시장 등 1천명이 넘는 시민이 모인 월미도 친수공간에서는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군함이 포탄을 발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50여명의 시민들이 그 포탄에 희생을 당한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월미도 친수공간에서 포탄소리가 멎은 지 약 2시간이 지났다. 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월미공원 전통정원 지구에서는 미군 폭탄에 생명을 빼앗긴 월미도 원주민들의 위령제가 열렸다.

한편 같은 시각 인천종합버스터미널에서는 전차와 장갑차, 한-미 해군과 해병대 등이 참여하는 시가행진이 인천시청까지 이어졌다.

60년 전, 미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기 위해 현 월미공원이 위치한 민간인 거주촌에 폭탄을 퍼부었다. 아무런 사전 대책이나 경고도 받지 못했던 주민들은 날아오는 포탄에 속수무책이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가족의 죽음도 가슴에 묻어둔 채 강제로 고향을 등져야만 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 '거지 신세'가 됐다.

수십 년 동안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영령들의 한을 풀고 고향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주민들은 지난 2004년부터 자신들의 고향이었던 월미공원 정문에서 현재까지 2천일이 넘는 농성을 진행한다. 국방부를 찾아가고, 인천시에 따져도 봤지만 돌아온 건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말뿐이었다.


올해로 위령제를 거행한 지 4년째가 된다. 지난 2007년 '월미산 원주민 특별법'이 발의되고 2008년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월미도 미군폭격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 금방이라도 모든 게 해결될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들은 죽은 가족의 한을 풀어달라며, 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한인덕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인사말 중 끝내 울음을 보였다. 그는 "속상하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국방부와 인천시는 서로 책임을 미루지 말고 우리 한을 빨리 풀어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내년 61주기 위령제에서는 한 켠에 작은 위령석이라도 세워야 한다"라고 한 주민은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구암학인 2010-09-16 10:51:40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한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은 하루속히 진실규명이 되어야 한다. 분명 전쟁으로 인한 억울한 죽음을 국가는 62년을 나몰라 했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안위를 방기하는 꼴이다. 이래가지고 무슨 나라의 정체성이 서겠는가? 늦었지만 앞으로 인천시민 모두가 나서 상육작전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달래야 한다. 그길이 나라가 할일이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