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의 시작은 ‘공동체’로부터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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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의 시작은 ‘공동체’로부터 나옵니다.”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7.12.29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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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마당극 놀래’ 이끌어온 주안미디어축제 류이 감독 인터뷰

인천 남구에 소재한 학산문화원은 인천 관내에서도 ‘시민참여형 문화 프로그램’들을 많이 가동하고 있는 기관으로 꼽힌다. 특히 전문예술인들의 활동보다 마을 단위의 공동체(학산문화원은 농경사회 당시 농사와 길쌈 등을 공유하던 옛날 공동체에 빗대어 ‘두레패’라고 표현)를 구성하고 이 공동체들의 활동을 통해 축제 등 문화활동을 장려하는 ‘학산마당극 놀래’ 등의 프로그램(혹은 시스템)이 장려돼 왔다.
 
과거 인천의 중심인 도호부청사를 관내에 두고 있는 남구의 모습답게,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문화 활동의 선봉에 서 있는 인물은 바로 주안미디어축제 예술감독으로 현재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i미디어시티 시민추진단 대표 등을 겸직하고 있는 류이 감독이다. 그런데, 마을공동체의 활동을 주도 및 장려하고 있는 그는 사실 인천 토박이가 아니다. 하긴, 3백만 국제도시가 된 마당에 지역에 대한 애정만 풍부하다면야, 토박이의 여부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류이 감독. ⓒ배영수

 

그는 인천에 오기 전 '시민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는 RTV(IPTV 등을 통해 볼 수 있는 채널)에서 활동했다. 프로그램 앵커도 하고, NGO단체들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뉴스 및 다큐 제작 교육 분야에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그러한 방향성을 지향하는 사업의 정부지원이 모조리 끊어지면서, 이후 인천 남구가 영상미디어센터 등의 사업을 시작하며 자연스레 인천으로 발을 붙이게 됐다.
 
“RTV 시절 ‘NGO가 간다’ 같은 프로그램 제작에 함께 하던 경험, 또 그 전에 젊었을 적 마당극 기획연출 등 문화활동가로 움직이던 경험을 통해 마을의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죠. 우리는 ‘공동체’라는 말 대신 ‘두레패’라는 표현으로 쓰는데, 옛날 조선시대는 물론 그리 멀지 않은 70년대까지 한국사회는 농촌사회, 즉 두레가 존재하고 있었고, 또 소리와 민요, 풍물 등을 하면서 농사짓고, 여흥을 즐기면서 잔치나 굿도 하고, 그런 ‘집단생활예술’이 있었던 거예요. 또 7080시절 민중문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같은 개념으로 ‘두레’ 혹은 ‘두레패’라는 개념이 있었고요. 비록 시대가 발전하면서 남구가 농촌마을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동체만큼은 복원해 보자 했고, 그러한 공동체, 즉 두레패보다 좋은 매개가 없다고 생각을 한 거죠.”
 
마침 남구에서 일을 시작하던 시기 즈음 류이 감독은 학산문화원의 미래를 위한 ‘환골탈태’ 전략의 연구용역 작업을 맡았다. 연구 끝에 그가 얻은 결론은 ‘선택과 집중’을 모토로 전통과 현대가 조화하는 마당예술을 특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마당예술 기획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타 예술영역 및 지역사회에서 반발도 상당했지만, “오랜 기간 역사에서 인천의 중심이었던 남구가 지역사회 공동체를 통해 전통적인 무언가를 지녀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에 대응해 갔다. 또 중구 등지에서 보존하고 있는 개항문화가 보존도 물론 필요하지만 식민지문화의 산물이기도 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전통문화의 복원 및 보존도 인천 관내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학산마당극 놀래’의 공연장면.

 
그래서 그의 진두지휘 하에 출발한 것이 ‘두레패’를 통한 ‘학산마당극 놀래’라는 프로그램이다. “여기 와서 놀래?”라는 의미도 있지만, ‘놀이’와 ‘노래’를 융합한 단어라는 뜻도 함께 부여하며 그야말로 공동체 축제라는 것을 부각하고자 했다. 2013년에는 ‘학산마당극제’라는 이름으로 출발했고, 지금의 이름은 2014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유럽도 그렇고, 전 세계가 지금 현 시점에서는 ‘커뮤니티 아트’가 대세예요. 우리는 지금도 그렇지만 서양 역시 근대 예술은 그렇지 못했고 현대에 와서 시민예술이 유입되는 것이 조류로 나타났죠. 실제 유럽 프랑스의 6.8혁명 이후에 커뮤니티 아트가 사회혁신 혹은 운동예술로 발전한 역사가 있고, 그게 ‘탈(脫) 근대’의 역사이기도 했죠.
 
그런데 그걸 바꿔보면 우리나라야 말로 사실 이런 커뮤니티 아트를 오래 전부터 했던 나라예요. 세계에서 가장 벼농사를 일찍 시작한 나라답게 농경사회 특유의 노동 및 예술의 ‘집단화’ 성향이 축적 및 발전돼 왔고 이를 통해 나온 사물, 판소리 등은 이미 세계 예술시장에서 인정을 받았어요. 7080시대에 민중예술의 전통을 복원하면서 적잖은 예술가들이 선조들이 일궈온 문화예술세계에 놀라고, 또 시대를 엄청 앞서갔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거죠. 여기서 추구하려 전통적 공동체예술도 바로 유럽에서 실체화되고 있는 커뮤니티 아트와 맥락이 일치하는 겁니다.”

 

‘학산마당극 놀래’는 주기적으로 축제의 의미와 비전, 장점 및 보완 등에 대해 백서 형식의 정리 작업을 빼놓지 않는다. ⓒ배영수

 
시대가, 혹은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이 있어서였을까. 2013년 출발한 ‘학산마당극 놀래’는 구 단위에서 기초단체의 작은 지원으로 이루어진 문화 프로그램 중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하나씩 이루어 냈다. 식민사관에 입각한 문화 혹은 ‘전문예술인들의 결’이 보다 우선시 되었던 남구 관내의 문화판을 ‘민초의 결’이 살아있는 문화판으로 바꾸는 데에 일정 부분 이상의 성과가 있었고, 전문가와는 또다른 시선과 성격의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창조적 즐거움이 융합되면서 마을 단위의 공동체 구현에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 냈다.
 
특히 지난 2014년의 경우 연세가 70~80세 이상 되신 할머니들이 무대에 올라 ‘10분 마당극’이라는 것을 하면서 “시집온 뒤고 이름이 불러지지 못했다”던 할머니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행복한 표정으로 즐거워하며 행복하게 무대에 오르는 것을 보고 다수의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을 연출했을 때를 류이 감독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기도 했다. 지금도 류이 감독은 “학산마당극 놀래가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시기가 바로 그 순간”이라며 회상했다.
 
물론 해마다 어려운 순간들이 없진 않았다고 한다. 그는 특히 일부 구의원 등이 지역사회 차원에서 생긴 주민자치위원회 등이 자신들의 영역과 영향력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을공동체 축제의 지원을 대놓고 거부하기도 했고 예산도 줄어드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3~4년 이상 된 지역의 공동체 기반 예술팀들이 있고, 그들을 주축으로 공동체예술이 성장해온 것은 자랑할 만한 성과”라며 앞으로도 이러한 시민공동체 예술이 전적으로 장려되어야 한다고 류이 감독은 강조한다.
 
“현재 인천문화재단 등에서 ‘생활예술문화’라고 장려하는 게 전문가들의 교육이 기반이 되는데, 사실 전문가들에 의해 다듬어진 것과 민초들 특유의 표현은 그 결 자체가 달라요. 물론 교육도 필요하지만 지역사회기관이 그 특징을 발견해 장려해 주는 게 우선순위가 돼야 해요. 특히 남구와 같은 오랜 역사를 통틀어 지역의 중심역할을 해 온 원도심은 주민 단위의 공동체가 주체인 사회 활동 및 예술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시작은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게 저는 또다른 시선에서의 도시재생, 원도심 활성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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