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땅의 축복'을 캐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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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땅의 축복'을 캐는 일
  • 박흥열
  • 승인 2010.01.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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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강화로 간 까닭은?] 박흥열③
 


 우리 동네 들어오는 길 초입에 방앗간이 있다. 동네 초입에 있는 이현방아간벽돌로 쌓은 이층 양옥의 아랫층을 둘로 나누어 방앗간과 건강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방앗간 형님 부부는 손이 크고, 인심이 후해서 동네사람들은 물론 다른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꽤 된다. 나도 방앗간의 후덕한 인심에 덕을 보는 경우가 많다. 인절미나 가래떡과 같은 떡종류와 건강원에서 내린 다양한 즙도 많이 얻어먹기도 한다. 기계를 빌리는 것에서 농사짓다 어려움에 처하면 먼저 방앗간 형님한테 알린다. 그러면 웬만한 일 쯤은 전부 해결된다. 낯선 곳에 와서 살면서 살갑게 보살펴 주는 이웃을 만났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또 방앗간 형님과 같은 종류 담배를 피우는 터라 마치 내 주머니 속 담배를 꺼내 피우는 것처럼 많이 얻어 피우기도 한다. 요즘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은 냄새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고 해서 타박받는 경우가 많은데 자주 만나는 이가 담배를 즐기고, 아무 곳에서나 함께 거리낌없이 피울 수 있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다.

 
 그래서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방앗간에선 오고갈 때마다 항상 들러 커피 얻어 먹고, 담배 나눠 피면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떨곤 한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방앗간 앞에 트럭이 보이지 않거나 사람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면,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한테 바람맞은 것처럼 허전한 기분이 살짝 들기도 한다.

 
 며칠 전 면사무소에 갔다가 이장님을 만났다.


 “유기질 퇴비 신청했시꺄?”

 “방송이 안 들려서 못했는데요.”

 
 닭똥을 발효시킨 유기질 퇴비를 농협의 지원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 작년에는 100포를 받아 썼는데, 다 못 써서 올해는 30포만 신청했다. 그 외 속노랑 고구마 5단, 씨감자 1박스를 함께 신청했다. 3월에 나오는 영농자금도 잊어버릴까봐 미리 부탁하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역시 방앗간에 들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면 안 되니까.

 
 방앗간 형님과 친구인 가스아저씨, 하점초등학교 옆 은행나무집 식당 아저씨와 가스 스토브 주위로 동그마니 모여 앉아 있었다.


 “어서 오시겨. 어디 갔다 오나?”

 “어.. 춥다. 이리 오시겨”


 습관처럼 커피 한 잔 뽑아들고, 스토브 옆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은행나무집 아저씨는 식당을 운영하는 외에도 감나무, 매실나무 등과 같은 나무 묘목을 길러 분양한다. 꼼꼼하고 소박한 성품에 나무를 심고 과수원을 조성하는 일에서부터 가지치고, 수형 잡고, 키우는 일 등 과수에 관한 한 전문가이다.

 
 이태 전에 그이에게 감나무와 매실 나무를 오십여 그루 사서 집 뒤 배 밭에 심었다.


 배 밭을 살 때 주위 사람들이 소일 삼아서 하기에 좋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왠걸 배나무를 관리하고 열매를 수확할 때까지 일이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나중에야 동네 어른들이 “과수 농사는 비가 오면 일을 하지 못해 우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할 만큼 부지런하고 일맵시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배농사는 2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위로 뻗어 올라간 도장지를 잘라주고, 한 뼘 간격으로 눈을 잘라주는 전지 작업, 그리고 수형을 잡아주기 위해 끈으로 묶어주는 유인작업, 기계유제와 유황합제를 뿌리고, 꽃솎기, 열매 솎기, 퇴비주기, 열매 봉지 싸기, 약치기, 풀깎기, 물주기, 그리고 수확하고 배즙을 내리기까지 그야말로 일천지이다.

 우리는  농약을 주지 않고, 풀도 잘 깎아주지 못해서 한때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는 배나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야생초를 키우는 집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그나마 배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때까지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풀이 자라기 시작하면, 예초기로 이쪽 고배꽃필 무렵랑 풀을 깎고, 돌아보면 저쪽 고랑 풀이 자라곤 해서 아예 포기해버리곤 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이나 집에 들르는 사람들이 농사를 왜 이렇게 짓느냐고 질책하면 나는 내가 발명한 새로운 농법을 시험중이라고 둘러대곤 한다. 일명  기도농법이라고 아침저녁으로 풀이 자란 배밭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만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풀 깎는 일이 징글맞은 것이다.

 강화의 환경농업을 이끌고 있는 김정택 목사님은 예전에 옥수수 심은 고랑에 하도 풀이 무성하여 발로 지근지근 밟고 다니면서 짓밟기 농법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배 밭을 사서 농사를 시작한지 7-8년이 지났는데, 원래 주인인 동네의 서씨 아저씨를 만나면 괜히 죄지은 것처럼 죄송해지는 것은 그이처럼 야무지게 농사를 짓지 못한 탓이 크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아내와 심각하게 상의한 끝에 배나무를 일부 베어내고 일손이 적게 든다는 감, 매실나무를 심기로 했다. 오가피나무를 심어놓은 곳 옆으로 두 고랑의 배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은행나무 집 아저씨에게서 산 감과 매실나무를 심었다. 훤하게 뚫린 배밭의 한쪽 귀퉁이를 보는 마음이 허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알아보니 다른 이들도 강화 감인 장준을 심느라 기존의 과수에서 수종 변경을 많이 시도한다고 한다. 그만큼 과수농사가 힘들고, 또 판매도 말처럼 쉽지 않아 여러 가지 품이 많이 드는 모양이다.


 은행나무집 아저씨가 물었다.


 “그 집 나무들은 동해 안 입었시꺄?”

 “괜찮은 것 같던데...”

 “날이 영하 십몇도로 떨어지면 나무들이 동해를 입거든. 특히 감이나 매실은 추위에 약해서 한번 동해 입으면 끝장이라니까...”

 
 이때까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내와 둘이서만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는 전문가의 도움을 좀 받기로 생각하고 있던 터라 은행나무집 아저씨 말에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말 나온 김에 아저씨에게 배나무 전지를 잘 하는 전문가들을 소개해달라고 청했다. 작년에는 전지를 하는 둥 마는 둥 해서 수확이 신통치 않았기에 올해는 아예 전문가의 도움으로 인건비가 들더라도 전지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또 기계유제와 유황합제도 한 번 정도 칠 생각이다. 둘 다 유독성 농약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찜찜해서 여태 한번도 안 쳤는데, 그러다 보니 병충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이다.

 
 1월도 반이 지나갔으니 한달 정도 지나면 배나무 전지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농사 일  뿐만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다른 일들도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괜히 부산스러워진다.

 
 다른 농사는 한 달 뒤쯤 시작하지만 배나무와 같은 과수는 나무에 물이 오르기 전에 전지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2월 중순 무렵부터 시작한다.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탓에 바람도 차고, 손도 시리다. 이뿐만 아니다. 일하는 내내 고개를 쳐들고 위를 바라보는 자세로 있어야 하기에 어깨와 목, 등허리가 온통 결린다. 힘들긴 해도 한참 일을 하다 보면 덮수룩한 머리를 산뜻하게 쳐놓은 것처럼 예쁘게 단장한 나무들을 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또 이 때쯤이면 아직 얼어 있는 땅인데도 조그만 냉이들이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밭에 나갔을 때 제일 먼저 반겨주는 냉이들이 참 이뻐 보인다. 이때부터 된장 풀고 냉이국을 끓이거나 살짝 데쳐서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한겨울을 지낸 달래도 캐먹고…. 비로소 봄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논농사를 짓지 않기에 볍씨를 내려 모판을 만들거나, 모내기를 하지 않지만 들판에 나와 일하는 사람을 보면 잠시 일손을 돕기도 한다. 주로 우리 집 앞의 논일을 돕는데, 올해는 논주인인 유씨 아저씨가 쓰러지는 바람에 올해 농사는 어떻게 할지 걱정이 앞선다.  

 
 4월로 접어들면서 경운기를 몰고 밭을 갈면 부실부실한 흙이 주는 감촉은 백만 불짜리 발맛사지를 받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황홀하다. 작은 뱀처럼 실한 지렁이를 봐도 그저 반갑고, 울타리에 노랗게 피어나는 개나리꽃들이 이쁘기 그지 없다. 바람에도 찬 기운보다 따뜻한 기운이 넘실거린다.

 
 곧 여러 가지 길러먹을 작물을 심을 무렵, 배꽃이 피기 시작하고, 배꽃아래 한 잔 술을 나누기 위해 여기저기 놀러오라고 전화를 넣는다. 전등불을 끌어다 밝히고 배꽃 아래 테이블을 차리고 손님을 맞는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운운하면서 마치 풍류를 즐기는 한량처럼 헛폼을 잡기도 한다.   

 
 배꽃이 지고 잎사귀가 무성해질 때, 심어놓은 작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갈 때, 풀도 함께 자란다. 6월이 지나고 비가 내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풀이 자란다. 예초기를 들고 풀과의 전쟁에 돌입하게 되는데, 매번 전쟁에서 패하고 두 손을 들고 만다.

 
 동네 사람들이 제초제를 뿌릴 때면 그 냄새와 독성 때문에 고개를 돌리곤 하지만 풀을 잡아야 하기에 김약을 뿌리는 그이들을 나무랄 형편이 아닌 것이 그만큼 풀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은 제초제나 농약의 독성에 대해 다들 알기에 농약을 적게 사용하는 편이다. 제초제가 들어온 것이 1950년대 후반 무렵이었는데, 독성이 무섭기도 하고, 또 비싸기도 해서 농촌지도소에서도 굳이 권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두해 지나자 제초제의 편리함 때문에 널리 사용된 것이다. 제초제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동네의 황씨 아저씨는 이런 말을 했다.

 
 그이가 젊었을 때 7월이 되면 김매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품앗이로 김을 매곤 했다. 살림이 괜찮은 집은 품앗이 온 장정들 밥해 먹이고, 일이 끝나면 막걸리도 돌리곤 했다. 그래서 그 집 논에서 김매기할 때는 마치 동네  잔치처럼 떠들썩했지만 여유가 없는 가난한 살림의 집에서는 사람들을 청할 수 없어 식구들끼리 김을 매고는 했다는 것이다.

 7월 땡볕의 무더위에 허리를 굽히고 김을 매는 일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힘든 일이다. 그러다가 제초제가 나오니 이젠 품앗이로 김매기를 할 필요가 없어지고 자연히 없는 집에서도 동네 눈치 안보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 하니 제초제가 동네의 빈부격차에 따른 소외감을 일정 정도 해소시켜 준 셈이다.


 세상 모든 게 다 좋은 면이 있으면 반대되는 면도 있는 것처럼 제초제의 독성은 부정적이지만 제초제가 사용됨으로써 농촌사회 내부의 빈부에 따른 소외감을 극복하게 하였으니, 그것을 사용했던 농민들을 무조건 탓하기도 어렵겠다. 다만 제초제를 비롯한 농약과 화학비료의 남용이 지금은 환경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또 농촌공동체 특유의 두레문화를 사라지게 한 원인으로 작용하니, 이제라도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여가는 지혜가 필요할 텐데 오랫동안의 관행으로 굳어진 농법을 바꾸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름이 되면 마트에 가서 반찬을 사지 않아도 될 만큼 지천에 먹을거리가 널려 있다. 밭에서 뜯은 민들레잎사귀, 상추, 질경이, 참나물, 취 등에 고추장을 넣고 비빈 밥과 풋고추와 된장 한 주먹이면 그대로 훌륭한 점심 식사가 된다. 토마토와 참외, 오이는 훌륭한 디저트가 된다.


 틈틈이 쑥을 베어다 말리는데, 이는 주로 모깃불로 쓴다. 즙을 내리거나 차로 사용할 쑥은 5월 단오 전후해서 베어다 말린다. 한 묶음씩 묶어 창고로 사용하는 비닐하우스 천장에 매달아놓는다. 바람이 잘 통하는 자리에 매단 쑥은 해가 묵을수록 약성이 뛰어나다.

 
 9월이 시작될 무렵 배추씨를 뿌린다. 김장거리용 배추인데, 골을 타고 작은 씨앗들을 줄줄이 뿌리고 흙을 살짝 덮어주면 배추싹이 돋는다. 그러면 키울 배추 모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솎아서 여린 잎들을 무쳐 먹는다. 배추씨를 뿌릴 시기를 놓치면 아예 농약상에 가서 배추모를 사서 심기도 한다. 배추가 자랄 때면 아침저녁으로 배추벌레를 잡아준다. 약을 치면 그만이지만 아내는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배추벌레의 저승사자라 자처하면서, 무와 순무씨도 뿌린다. 한 두어달 시간이 흐르고 찬바람이 불 때면 이 배추와 무, 순무로 김장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와중에 고구마도 캐고, 콩도 베어 말린다.


 추석 전후로 하여 배를 수확하기 시작한다. 배 종류 중에 병해에 강하고, 저장성이 뛰어난 신고 배는 추석 이후 늦게 수확하지만 다른 원앙, 추앙, 황금과 같은 배는 일찍 수확한다. 수확시기를 놓쳐버리면 까치들이 쪼아먹기도 하고, 물러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수확시기가 되면 일손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는 수확한 배들을 우리가 먹거나 선물할 정도만 남기고 대부분 배즙과 배식초를 담근다. 처음에는 농약을 안 친 배라 하여 사람들에게 팔기도 했지만 잘라보니 안에서 벌레들이 과육을 파먹고 있다거나 울퉁불퉁해서 모양이 안좋다고 뒷말이 들리기에 아예 지금은 배즙과 식초를 담근다. 양이 많지 않기에 수확하고 배즙을 내리면 대부분 하루 이틀 사이에 판매가 가능한데 가끔 이웃사람들이 자기네 농산물도 좀 팔아달라고 은근히 청을 넣기도 한다.

 
 강화농산물은 다른 지역에 비해 그래도 잘 팔리는 편이지만 그래도 노인네들이 지은 농산물은 판로를 확보하지 않아 제때 팔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걸 보면 마치 유기농 농산물만 도농직거래의 대상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고 유기농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다른 지방에서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수송해 와서 인천에서 사먹는 것이 좋을 지, 아니면 농약과 화학비료로 지었다 해도 강화에서 난 농산물을 인천시민들이 사먹는 것이 좋은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나는 후자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농산물은 제 땅에서 나는 것, 즉 자기 지역공동체 테두리 안에서 생산된 것을 나누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로칼푸드(Local Food)라고 하지 않는가. 지역과 상관없이 유기농산물만을 먹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생명농업, 지역농업, 환경농업을 지향하는 가치관과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건강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서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사실 불만이 있는데, 대규모 면적을 기계를 사용하여 투입되는 농약과 비료만 유기질로 바꿔넣는 것이 유기농으로 취급받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똑같은 생산과정을 거치면서 단지 사용한 농약과 비료의 차이일 뿐인데, 어떤 것은 쌀 한가마당 25만원을 받고, 어떤 것은 쌀 한가마에 15만원을 받는 것은 불합리해 보인다.


 유기농, 생명농업이라 한다면 먼저 땅에 대한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농업 아니겠는가. 생명농업은 결국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허용할 수 있는 기계 사용 정도와 경지 면적 등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한 사람, 한 가족이 노동할 수 있는 범위의 농사규모와 이에 상응하는 경제적 이윤의 보장을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적 시장 질서 속에서 유기농, 생명농법 역시 대규모 기계화의 수순을 밟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될 때 그 농산물 또한 단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 조화로운 농업적 세계관, 공동체적 노동의 참뜻을 왜곡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요즘 소농경제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는데, 나도 소농경제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또 가끔 동네 사람들이 고되게 지은 농산물을 두고 농약을 치니, 비료를 많이 사용했다는 등 마치 질낮은 상품을 대하는 것처럼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고개가 외로 꼬인다. 모두가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건강한 농산물을 먹는 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선적으로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먼저 소비하는 것이 진정으로 농촌을 살리는 도시 소비자의 올바른 자세 아닐까.      

 
 배즙을 배달하고, 고구마를 캐서 저장하고, 김장을 담그고 나면 한해 농사가 끝난다.   

    

 농사를 지어보니 농사가 쉬운 일이 아님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았다. 심고, 가꾸고, 풀매는 일 하나 하나가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그렇게 지은 농산물 하나하나가 다 귀해보인다. 마트에서 사먹으면 얼마 되지 않는데도 대여섯달을 고생하면서 농사를 짓는 것은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인 일이다. 하지만 내가 땅 갈고 심어서 거두는 일을 어찌 사서 먹는 것과 비교하겠는가?


 밭에서 난 농작물을 뒤란의 수도가에서 씻을 때는 내 마음도 씻기는 처럼 맑고 시원해진다. 그것을 먹을 때나 다른 이들에게 선물로 나눠줄 때는 마치 생명을 나누는 것 같은 기분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래서 밭일을 할 때는 의외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 노동하는 과정에서 마치 세상의 이치를  하나씩 더 알아가는 듯하고, 생각도 깊어지는 듯하다. 아내가 카페에 쓴 농사 일기나 소소한 생활 관련 글들을 읽을 때면, 밭일을 하며 얼마나 깊고 다양한 성찰이 이루어지는 지 엿볼 수 있다. 가끔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감탄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기도는 하늘의 축복을 바라는 행위라면 노동(밭일)은 땅을 축복을 캐는 행위라고 믿고 싶다. 기도만큼 노동(밭일)도 거룩한 행위이다. 내게 힘든 농사일을 통해 농사의 기쁨과 즐거움, 그 거룩함을 알게 해준 것을 고맙게 여긴다. 땅을 밟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그런 느낌들을 농사일을 통해 겪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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