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보고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
상태바
지금은 보고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
  • 심형진
  • 승인 2018.04.30 0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수학여행의 추억을 따라서 - 경주

 


<인천in>이 이달부터 심형진 인천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이 연재하는 ‘심형진의 자유여행’을 시작합니다. 심 이사장은 지난 2005년부터 자신의 다음 카페 ‘소금창고가는길’을 통해 ‘여행스케치’를 써오고 있습니다. 이제 <인천in>을 통해 그와 함께 국내외 트레킹 코스, 유적지, 휴양림이나 농원, 축제 현장, 도시의 광장 등 국내 및 세계의 다양한 여행지를 자유롭게 섭렵합니다. 역사와 문화, 삶의 현장, 사람과 도시, 자연의 생생한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나누며 여행의 묘미, 그 지평을 넓혀갑니다.




 
장월중선추모 국악경연대회가 열리는 경주, 그곳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받은 김경아 명창과 인천판소리보존회 회원 몇이 함께 경주에 갔다. 일행 중 하나가 50년 만의 경주라며 가는 내내 들뜬다. 경주 체류 중 대회 관람 시간이라는 제한 속에 50년 만의 추억에 동참하였다.
 
경주는 어디를 가나 신라천년의 유적이 뿜어내는 향기가 사람을 취하게 한다. 어디를 가든 더하고 덜한 곳은 없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에 경주를 느끼려면 교과서에 나온 유적을 보아야만 한다. 그 첫 번째 유적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당대의 모든 문화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건축한 불국사. 부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불경 교리를 그대로 구현한 전체적인 가람 배치의 의미를 쫒아가는 재미도 재미지만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국보 6점과 보물 5점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물 하나하나가 당대 예술혼이 집대성되어있어 어느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최고의 유적지다.
 
불국사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겹벚꽃이 반긴다. 불국사 경내를 진입하기 전 조성한 공원에 심어진 겹벚꽃, 벚꽃이 다 진 후 피는 꽃인데 분홍빛이 더 짙고 꽃송이도 더 커서, 이파리가 함께 나와도 꽃이 도드라져 보인다. 삼삼오오 꽃그늘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살포시 미소 짓게 한다.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 자하문과 안양문, 범영루와 좌경루가 꾸미고 있는 파사드의 조화로움과 섬세함을 바라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는 옛 시조가 생각난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풍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추억을 되새기게 하고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옛 시절과 달리 통행이 금지된 다리는 이제 세월의 무게만을 견디고 서 있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말해 무엇 하랴. 불국사에서 가장 높은 관음전에서 내려다보는 전각의 지붕이 만드는 풍경에 눈이 번쩍 뜨인다. 황룡사탑에서 내려다본 왕경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워낙 유명한 보물들이 많아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이 비로전 옆 작은 비각 안에 들어선 사리탑이다. 고승을 화장하였을 때 나온 사리를 모셨기에 승탑이라고도 하는 이 사리탑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돌아온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만큼 섬세하고 힘 있는 조각과 비례가 잘 잡힌 단아한 모습이 아름답다.



<다보탑>

<석가탑>

다음으로 간 곳은 석굴암이다. 석굴암 올라가는 길은 구불구불하고 숲은 봄의 끝자락을 잡고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다. 길 가 숲에는 벚꽃이 진 봄을 겹벚꽃 분홍이 메우고 있다. 인위적인 불국사 겹벚꽃과 다리 숲에 녹아들어 더욱 도드라진 겹벚꽃나무. 꽃이 진 자리에 다시 꽃이 피며 숲에는 계절이 흐르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서도 숲길을 10여분 걸어야 석굴암이 나타난다. 초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색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려면 이파리 새로 달리는 봄 신록의 숲을 가봐야 한다. 각각 다 다른 색이 어우러져 하나의 숲을 이루는 조화, 우리는 그 조화의 그늘에 들어 그저 또 하나의 풍경을 이룰 뿐이다. 석굴암이 바라보이는 광장에 이르니 일단의 중년 남녀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는 ‘추억의 수학여행-경주를 찾아서 000’이라고 쓰여 있다. 아마도 고등학교나 중학교 동창생 모임에서 주최한 행사 같다. 그들을 뒤로하고 석굴암을 향해 오르는데 한편에 석굴암을 개보수하면서 들어낸 옛 부재들이 쌓여있다. 석굴암을 안에까지 들어가 둘러봤던 옛 시절과 달리 부처님의 세계는 유리로 가로막혀 있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그 세계는 적멸의 세계요 고요의 세계다. 청정무구한 적요함이 유리를 뚫고 전해진다. 들어가지 못하니 느껴지는 고요함이다. 1년에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에 개방이 된다는데 조각을 볼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이 분위기는 못 느낄 것이다. 관람객들도 모두 이러한 분위기를 즐기는지 조용하다. 이런 자세가 문화시민의 품위를 말해주니 곁에서 함께 한 모든 분들이 감사하다.



<첨성대>
 
선덕여왕이 환생했나? 일행은 계속 첨성대를 외친다. 경주하면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지 하는 그 말을 따라 첨성대를 향했는데 인파가 너무 많다. 갈 곳이 지천인 경주인지라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 장군묘를 둘러보고 다시 온다. 지난 지진에도 조금 흔들렸을 뿐 끄떡없었던 첨성대. 황성 옛터 왕경지구의 꽃처럼 우뚝하다. 왕성인 반월성과 계림, 오릉과 대릉원, 동궁인 안압지 그 뒤로 이어진 황룡사지와 분황사, 신라 천년의 영화가 오직 돌로만 남아 존재를 뽐낼 때 늘 그 앞자리를 차지한 첨성대. 볼 때 마다 새롭다. 계림을 지나 반월성에 오르니 발굴조사가 한창이다. 성의 남쪽을 따라 흐르는 남천에는 월정교 복원공사가 마무리 중이라 그 위를 걷지 못해 아쉽다. 다음에 경주에 올 이유가 또 생겼다.



 <월정교>


황룡사 터에는 황룡사 유물 전시관이 새로 들어섰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축소 복원해 놓은 모습이 멀리서도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들르지 못하고 금당 터와 목탑 터만 둘러본다. 황룡사 9층 목탑의 심초석에 서면 경주 남산과 동으로 명활산과 토함산 북으로 소금강산 서쪽으로 선도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비가 올 듯 낮게 깔린 구름에도 시야가 맑아 산의 능선이 첩첩이 쌓여 파도치듯 달려오는 모습은 왜 이곳에 목탑을 세웠는지 그 이유를 말해준다. 경주의 경계를 이룬 산 하나하나가 꽃잎이라면 황룡사 목탑은 꽃술이다. 산을 넘어오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보았을 9층 목탑의 위용은 이곳이 경주다, 이제 경주에 다 왔음을 알리는 표지 같았을 것이다. 황룡사 터 9층 목탑 심초석에 서보지 않고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음이다.


 

<황룡사지(위)와 분황사>


황룡사 옆에는 분황사가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분황사 모전석탑이 있다. 천년을 변치않고 고이는 우물이 있고 금석학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가 원효대사의 비임을 추인하고 남긴 글씨가 있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분황사 앞 황룡사 쪽에 당간지주가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화쟁국사 원효가 주석함을 알리는 깃발(당)을 내건 깃대(간)를 받치고 있는 거북(비희)의 왼쪽 어깨 한쪽이 깨져 있음을, 그 거북 역시 천년 영화를 뒤로 하고도 천 년 이상을 그곳에 버티고 있음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이번 경주 여행의 마지막은 분황사 당간지주의 거북받침에서 끝이다. 깨져도 잊혀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있음에 역사도 우리의 삶도 계속됨을 그래서 누군가가 다시 그들이 섰던 자리를 돌아보게 됨을 아는 여행의 끝으로는 안성맞춤의 자리다.


<당간지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