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 이름의 뜻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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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 이름의 뜻을 새기다
  • 심형진
  • 승인 2018.09.21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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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작도

이작도 부아산에서 바라본 소이작도와 대이작도로 둘러싸인 내해. 두 개의 섬의 해안선이 하트를 형성하고 있다.



이작도

이작도는 두 개의 섬이 마주하고 있어 섬으로 둘러싸인 내해가 있다. 크기에 따라 소이작도와 대이작도로 불리는 이작도, 두 섬이 서로에게 파도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여 내해는 언제나 잔잔하다. 이런 조건에서 이작도란 이름이 유래했는데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그 하나는 두 섬이 바다를 가리니 그 안에 배를 숨겨두기가 좋다. 해적들이 배를 숨겨두었다가 이를 모르고 지나가는 조운선이나 배를 습격하여 공물을 탈취하고 다시 이 곳에 숨었다 하여 도둑에게 이로운 섬이라는 뜻의 이적(利賊)도라 불렀는데, 이 음이 변하여 이작도가 되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두 섬이 있는데 이짝 섬에서 저짝 섬으로 폴짝 뛰면 넘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서 ‘폴짝섬’이라 불렀다가 이짝 저짝의 음을 빌려 이작도가 되었다는 설이다.
당연히 섬 주민들은 이짝을 좋아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도둑놈 후손이라는 말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옹진군지에도 그렇다고는 하나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한 발 빼었다.

하나를 놓고 부르는 이름이 갈리는 것을 보면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가가 중요하다. 설사 이작도가 도적의 소굴이었다 하더라도 그 도적을 어떻게 보는가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작도에 발을 디디면서 이름에 내포된 뜻과 중요함을 새겨본다.

 
 오형제 바위



이작도 오형제 바위
 
이작도 선착장에 내려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부아산 아래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에 오형제 바위가 있다. 삐죽 솟아 있는 기둥 다섯 개가 커다란 바위를 형성하고 있는 씨스택의 모습에서 유래한 듯하다. 이 바위에는 이름에 걸 맞는(?) 전설이 있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 다섯이 바다에 일을 하러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데 아버지는 풍랑에 휩쓸려 이승을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형제들은 기다리다 결국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바닷가에 우뚝 솟은 기암에 얽힌 수많은 전설과 대동소이하다. 대부분은 지아비를 기다리는 지어미의 망부석이 많은 데 아들 다섯이 동시에 죽었다는 내용은 아마도 유일하지 아닐까 싶다.

여러 번 이곳을 방문했지만 ‘아버지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왜 돌이 되었을까?’ 의문이 들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같은 곳을 방문해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매번 감흥이 다른데, 이번엔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해서인지, 전설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가부장제에 대한 생각이 하나이다. 효성이 강한 아들들은 아버지가 죽으니 더 이상 살 희망이 없어 그 자리에 굳어 돌이 될 수도 있었을 수도 있다. 그만큼 효성이 강해 울다 기절하고 깨서 다시 울다 기절하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죽음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다섯이 모두 그렇게 되었으니 효성으로 치면 이들을 대적할 자 그 어디에도 없으리라. 이러한 효성을 기려 마을에서 이 바위에 매년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

또 한편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죽었으면 아비가 없지 어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없으니 이 또한 가부장제의 산물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효성이 지극한 아들들이 아버지가 없다고 돌이 되어야만 했는가? 돌이 되기까지 맵고 쓴 삶의 연속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아버지 없는 삶이 결국 살아 있는 생명을 돌로 만드는 섬 생활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자기 가족 목숨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섬 생활에서 남의 자식 생활까지 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오형제 바위를 보며 사회가, 마을이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보는 복지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풀등 뒤로 멀리 선갑도가 보이고 있다.
풀등 뒤로 멀리 선갑도가 보이고 있다.


풀등

이작도를 가는 이유는 여럿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풀등이다. 함께 간 사람들은 풀등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다. 모래섬이 바다 밑에 잠겨 있다 썰물 때가 되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를 풀등이라 한다. 이작도 자연생태관에 근무하는 해설사는 “풀은 모래의 사투리이며, 풀등 보다는 풀치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다.”고 한다. ‘풀’이 모래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점이 신기하다. 바람에 모래가 풀풀 날려서 생긴 말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치’는 꽁치와 갈치처럼 가늘고 긴 형상을 이르는 우리말이기에 모래톱이 가늘고 길게 뻗어 있는 형상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란다. 설명을 들으니 그럴 듯하다. 풀등의 면적이 한 때 70만평-여의도가 대략 80만평이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이었는데 현재는 1/3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몇 십 년 동안 이 인근에서 바다모래를 채취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계속 바다모래를 채취하면 20년 이내에 없어질 수도 있단다. 풀등은 갯벌만큼 해양생태계의 보고이고 수많은 생물들의 서식처인데 이렇게 조금씩 사라지면서 풀등에 사는 생물도 함께 사라졌다는 말을 들으니 풀등이 신기하게 여겨지면서도 사막처럼 고요할 뿐 그 안에 깃든 생물들을 거의 보지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선생의 해설을 들으면서 이 모래섬을 완전한 풀등으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등’은 우리 신체의 등처럼 넓고 평평한 형태를 이르는 말이다. 과거의 풀등은 사람들에게 정말 넓게 다가왔을 것이다. 인간이 자연 변화에 나쁜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이 풀치다. 지금이라도 ‘풀치’가 ‘풀등’이 되도록 바다모래 채취를 중지해야 한다. 풀치가 풀등이 되는 날 인천 앞바다는 조기파시의 영광과 민어파시의 영화를 조금이라도 회복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018년 9월16일 이작도를 다녀와서
 

풀등 뒤로 이작도와 소이작도 소야도 덕적도가 첩첩이 서 있다.풀등에서 바라 본 이작도 소이작도 소야도 덕적도

풀등선착장에서 본 풀등의 모습이작도 풀등선착장 전망대에서 본 풀등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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