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편 위정(爲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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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편 위정(爲政)
  • 이우재
  • 승인 2010.01.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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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편 위정(爲政)

  이 편에는 특이하게도 인(仁)이라는 글자가 한 번도 쓰이지 않고 있다.

1,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컨대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니 모든 별들이 그를 향해 인사하는 것과 같다”

  <해설> 북신(北辰)은 보통 북극성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지구의 세차운동(歲差運動) 때문에 당시의 북극성은 오늘날처럼 천구(天球) 상의 북극점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청의 유보남은 북신이 북극성이 아니라 천구 상의 북극점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唐)의 육덕명(陸德明)이 쓴 『경전석문(經典釋文)』에 인용된 한(漢)의 정현(鄭玄)의 주(注)에 의하면 공(共)은 공(拱)으로 두 손을 맞잡고 가볍게 인사하는 것(拱手)이다.
  북극성이 밤하늘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뭇 별들이 그 주위를 도는 것을 보고, 덕에 의한 정치를 그것에 비유한 글이다. 주지하다시피 공자는 덕에 의한 정치를 주장하였으며 법제나 형벌에 의한 정치를 비판하였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위정 3).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 북극성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순히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는 뜻은 아니다. 고주(古注)에서 후한(後漢)의 포함(包咸)은 이것을 제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한 것으로 해석하여 덕에 의한 정치를 아무런 인위적 행위가 없는 정치(無爲之治)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노자(老子)를 위시한 도가(道家)의 입장이며 공자의 정치 철학은 아니다. 오히려 이 구절은 북극성이 밤하늘의 중심으로 자기 위치를 고수하고 있듯이, 임금이 임금으로서 자기 본분을 다하면 모든 백성이 자연 그에게로 기울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君君臣臣父父子子―안연 11)

2,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시 삼백 편을 한마디 말로 나타낸다면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는 것이다.”

  <해설> 시(詩)는 『시경』이고, 폐(蔽)는 개(蓋)로, 총괄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시경』의 시는 305편으로 제목만 전하고 본문이 없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311편이다. 대략하여 시 300편이라고 한다. 『시경』은 공자가 편찬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논어에 『시경』이 자주 언급되고, 또 이 장에서 시 300편이라고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공자 당대에 이미 현존하는 『시경』의 원형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思無邪」라는 표현은 『시경』 노송(魯頌) 경지십(駉之什)의 경(駉)에 보인다. 보통은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청(淸)의 유월(兪樾)은 『곡원잡찬(曲園雜纂)』이란 책에서 사(思)가 단순한 어조사(語助辭)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공자가 시 300편을 총괄하여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고 말한 것은 시가 꾸밈이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쓰여졌다는 뜻이리라.

3,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법제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형벌만 면하면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그러나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될 것이다.”

  <해설> 도(道)는 이끄는 것이며 제(齊)는 하나로 정돈하는 것이다. 정(政)은 법제와 금령(禁令)이고 형(刑)은 형벌이다. 民免而無恥는 잘못을 저질러도 법에 저촉되지 않아 형벌만 면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다행이라 생각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격(格)은 정(正)이다.
  덕으로써 이끈다는 것은 군주가 먼저 덕으로써 솔선수범한다는 뜻이요, 예로써 다스린다는 것은 서로가 자기의 직분을 충실히 하면서도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예로서 교화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백성의 도덕심이 고양되니 저절로 착하게 될 것이다.
  정치는 법제와 형벌로 강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요, 덕과 예로써 솔선수범하고 백성을 교화할 때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이 말이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법과 형벌이 나날이 발전하고 거대해진 오늘날에도 범죄가 줄어들기는 커녕 날로 늘어남에 비추어 볼 때 다시금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말이다.

4,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섰으며, 마흔에 의혹이 없어지고, 쉰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에 남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고, 일흔이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노라”

  <해설> 유(踰)는 벗어나는 것이요, 구(矩)는 법도(法度)이다.
  공자가 자신의 일생을 간략히 정리한 말이다.
  섰다(立)고 하는 것은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 사회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의혹이 없어졌다는 것은(不惑) 학문이 깊어져 세상 사물에 대해 미혹됨이 없다는 것이다. 천명을 알았다함은(知天命) 학문을 갈고 닦아 후세에 전하는 것이 자신이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임을 깨달았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아니면 학문이 깊어져 세상 이치의 오묘함을 깨달아 인간사의 이루어짐과 이루어지지 못함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불가지(不可知)한 세계에 대한 언급을 삼가한 공자의 평소 언행으로 미루어 볼 때 전자가 더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귀에 거슬림이 없다는 것은(耳順), 다산(茶山)에 의하면, 남의 말이 이치에 어긋나더라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不逆耳)는 뜻이다. 그러나 고주의 정현(鄭玄)은 그 말만 듣고도 그 은미(隱微)한 뜻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從心所欲不踰矩는 마음내키는 대로 행동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말로, 진리(眞理)와 자신이 하나가 된 성인(聖人)의 경지다.
  크릴(H. G. Creel)은 이 장(章)이 너무 자화자찬(自畵自讚)이 심하다고 생각하여, 과연 공자 자신의 말인가 의심하고 있다.

5, 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 樊遲曰 何謂也. 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맹의자가 공자에게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어김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번지가 돌아오는 길에 수레를 몰았다. 공자가 그에게 말씀하시길 “맹손이 나에게 효에 관해 묻길래 내가 ‘어김이 없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번지가 묻기를 “무슨 뜻이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예로써 섬기며,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례를 치르고, 예로써 제사를 모시는 것이다.”

  <해설> 맹의자(孟懿子)는 노나라의 대부이며 이름은 하기(何忌)다. 당시 노나라의 국정은 삼환(三桓)이라 불리우는 계손(季孫), 숙손(叔孫), 맹손(孟孫)씨 이 세 가문이 전횡하고 있었는데, 그 중 맹손씨의 후계자이다. 번지(樊遲)는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수(須)다. 『사기』 「중니제자열전」에 의하면 공자보다 36살 아래라고 한다. 어(御)는 수레를 모는 것이다.
  맹의자가 어김이 없어야 한다는 말(無違)을 부모의 뜻을 어기지 말라는 것으로 잘못 이해할까봐, 공자가 번지에게 밝혀 주어 그로 하여금 맹의자에게 전달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시 맹손씨를 비롯한 삼환이 분수를 모르고 예를 참람(僭濫)하고 있는 것을 비판한 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6,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이 효에 관해 물었다. 공자가 말씀하시길 “부모는 오직 자식의 병만을 근심하십니다.”

  <해설> 맹무백(孟武伯)은 앞에 나온 맹의자의 자식으로 이름은 체(彘)이다.
  父母唯其疾之憂에 대해 후한(後漢)의 마융(馬融)은 “효자는 망령되이 그릇된 일을 하지 않고, 오직 병이 생긴 연후에 부모를 근심케 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병 이외의 것으로 부모에게 근심을 끼쳐 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고주(古注)에 인용되어 있다.
  후한(後漢)의 왕충(王充)은 『논형(論衡)』 「문공(問孔)」편에서 맹무백이 부모에 대한 근심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오직 부모의 병만을 근심하라고 가르친 것이라고 풀이한다. 일본의 이또 진사이(伊藤仁齋)의 『논어고의(論語古義)』도 같은 입장이다.
  여기서는 주자(朱子)의 해설을 따랐다. 즉 부모가 오직 자식의 건강만을 근심하는 그 마음을 깊이 새겨 부모에 대한 효도에 정성을 다하라는 뜻이다.

7,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자유가 효에 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지금의 효라는 것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말하고 있으나, 개나 말조차도 모두 능히 사람을 봉양하는데,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는가?”

  <해설> 자유(子游)는 공자의 제자로 성은 언(言)이요, 이름은 언(偃)이다. 『사기』 「중니제자열전」에 공자보다 45살 아래라고 전해진다.
  至於犬馬 皆能有養은 개는 집을 지킴으로써 말은 힘든 일을 대신함으로써 인간을 봉양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부모를 봉양한다고 하여도,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개나 말과 구별될 수 없다는 뜻이다. 고주에 인용된 포함(包咸)의 설(說)이다.
  주자는 至於犬馬 皆能有養을 개나 말조차도 봉양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인간이 개나 말조차도 먹여 기르는데, 제 부모를 봉양한다고 하여도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느냐란 뜻이다. 고주에도 일설(一說)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 해설은 부모를 개나 말과 비교하고 있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8,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가 효에 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부모의 표정을 보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이 어려운 일이니, 일이 있을 때 젊은 사람이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음식이 있을 때 나이 드신 분에게 먼저 갖춰 드린다고 하여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해설> 색난(色難)은 고주의 포함에 의하면 부모의 얼굴색을 살펴 그 뜻을 따르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주자는 자식이 부모에게 항상 온화한 얼굴로 대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여기서는 고주를 따랐다. 제자(弟子)는 다산에 의하면 나이가 어린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선생(先生)은 존장(尊長)을 일컫는 말이다. 찬(饌)은 음식을 갖춰 드리는 것이다. 증(曾)은 즉(則)이다.

  <보충> 4장의 孟懿子問孝로부터 여기까지는 효에 관한 문답이다. 그런데 공자는 각기 상대에 따라 그 대답을 달리하고 있다. 그것은 인(仁)과 예(禮)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과 예에 관한 공자의 언행도 그 상대에 따라 각기 다르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공자는 효에 관해(인과 예에 관해서도) 추상적으로 획일적인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는 사람에 따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 실천의 문제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그 자질과 처한 조건이 다 다르다. 따라서 그 사람의 자질과 조건에 따라 대답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이 각기 그 상황을 고려하여 행동을 달리하는 공자의 유연성은 너무도 유명하여, 후일 맹자는 공자를 “시의에 따라 행동하는 성인(聖之時者, 『맹자』 「萬章下」 1)”이라고까지 하였다. 위의 경우에도 각기 그 배경을 알 수 있다면 공자가 그렇게 달리 대답한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편의적인 수단으로 그때 그때의 형편에 따라 방법을 달리한다는 방편(方便)도 이와 유사하다
 
9, 子曰 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하루종일 회와 함께 이야기하였으나 회가 나의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이 마치 바보와 같았다. 그러나 그가 물러간 후 그 사생활을 살펴보니 그대로 행하고 있더라. 회는 정녕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해설> 회(回)는 공자의 제자로 성은 안(顔), 이름은 회(回), 자(字)는 자연(子淵)이다. 『사기』 「중니제자열전」에 의하면 공자보다 30세 아래라고 한다. 不違는 말을 묵묵히 듣기만 하고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안회가 공자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거나 물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발(發)은 들은 바의 이치를 명확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10, 子曰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 人焉廋哉.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그 동기를 보고, 그 경유하는 바를 살피며, 그 머무는 것을 관찰하면, 그 사람됨이 어찌 숨겨지리오, 어찌 숨겨지리오.”

  <해설> 이(以)는 인(因)으로 처음에 시작하게 된 동기(動機)다. 유(由)는 경(經)으로 중간에 경유(經由)하는 길이다. 안(安)은 지(止)로 마지막에 머무는 곳이다. 시(視)는 무심히 보는 것이요, 관(觀)은 주의하여 보는 것이고, 찰(察)은 더욱 상세히 보는 것이다. 다산(茶山)의 『논어고금주』에 의거했다.
  사람을 겉으로 보이는 행동거지만 갖고는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무슨 목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그것까지 살펴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 또 그 동기가 좋다 하더라도 방법이 정당치 못하면 안되며, 방법이 정당하다고 하여도 마지막에 머무는 곳이 좋지 않으면 안된다.
    
11,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옛것을 찾아 익혀 새로운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

  <해설> 온(溫)은 심(尋)으로 찾아 궁구(窮究)하는 것이다. 고(故)는 옛것(古)다.
  모든 새로운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 위에 서 있다. 따라서 옛것은 새로운 것을 이루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옛것을 답습만 해서는 안된다. 옛것의 이치를 궁구하여 새로운 것을 창의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면 능히 남의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후한(後漢)의 왕충(王充)은 『논형(論衡)』 「사단(謝短)」편에서 이 말을 부연하여 말하길, 옛일만을 알고 오늘을 모르는 것을 육침(陸沈), 즉 육지에서 물에 빠져 죽는 것이라고 하고, 오늘만을 알고 옛일을 모르는 것을 맹고(盲瞽), 즉 장님이라고 하였다. 재미있는 해설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이상은 고주, 신주를 위시한 보통의 해석이나, 다산의 해석은 다르다. 다산은 可以爲師矣를 스승이 되는 것도 해 볼 만하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온(溫)은 심온(燖溫)은 따뜻하게 데우는 것이다. 남을 가르치게 되면 옛 지식이 다시 데워지고 또 새로운 것도 알게 되니, 남의 스승이 되는 것도 가히 해 볼 만한 일이라는 뜻이다. 

12, 子曰 君子不器.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된다.”

  <해설> 기(器)는 한가지 용도로 밖에 쓰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 시대 선비(士)의 이상적인 모습(君子)은 시서예악(詩書禮樂)을 고루 갖춘 지성인으로서 백성의 행복을 위해 정치에 종사하는 것이다. 그릇(器)은 제각기 용도에 따라 그 종류가 다 다르다. 여기서 그릇은 농부, 장인(匠人), 상인과 같은 한 분야만의 전문가를 의미한다. 군자가 그릇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편벽한 한 분야만의 전문가가 되지 말고 널리 학덕을 갖추어 두루두루 능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참고> 자장 4에 “작은 도를 공부하면 멀리까지 가는 데 발이 묶일 우려가 있어 군자는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13, 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
  자공이 군자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먼저 그 말하고자 하는 것을 행하고 그 후에 말이 뒤따른다.”

  <해설> 자공(子貢)은 공자의 제자 중 재아(宰我)와 함께 말을 잘하는 것으로 평판이 나 있는 사람이다(言語 宰我子貢―선진 2). 따라서 공자가 그에게 말보다 행동을 앞서하라고 가르친 것으로 추측된다.
  청(請)의 황식삼(黃式三)은 『논어후안(論語後案)』에서 先行 其言而後從之로 끊어 읽을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그 뜻은 별 차이 없다.

  <참고> 학이 14, 이인 22, 24, 헌문 29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14, 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두루 사귀되 편당을 짓지 않으며, 소인은 편당을 짓고 두루 사귀지 않는다.”

  <해설> 주(周)는 주자의 신주에 의하면 널리 두루하는 것이요, 비(比)는 편당(偏黨)을 짓는 것이다. 모두 남과 두텁게 친하다는 뜻을 갖고 있으나, 주(周)는 공(公)적으로 하는 것이고, 비(比)는 사(私)적으로 하는 것이다. 소인(小人)은 군자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군자라는 말의 유래와 같이, 소인도 본래는 비천한 계급 출신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그 뜻이 전화되어 도덕적으로 저속한 사람을 일컫게 되었다.
  군자와 소인의 나뉨은 의(義)와 이(利)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군자는 의를 바탕으로 널리 만민과 더불어 사귀나, 사사로운 이해 관계로 편벽하게 교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그 반대이다.

  <참고> 자로 23에 “군자는 서로 어울리면서도 부화뇌동하지는 않으며, 소인은 부화뇌동하면서도 서로 어울릴 줄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15,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식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해설> 학(學)은 선인(先人)들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요, 사(思)는 혼자 생각하여 궁구(窮究)하는 것이다. 망(罔)은 견식이 어두운 것이고, 태(殆)는 위태로운 것이다.
  배우되 그것을 깊이 궁구하여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 배운 바가 진전되지 않아 견식이 좁고 어두워지며,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을 경우 자기만의 독단적인 생각에 빠져 위태롭게 되기 싶다. 

  <참고> 위령공 30에서는 생각하는 것이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고 있다.

16,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이단을 공부하면 해로울 뿐이다.”

  <해설> 공(攻)은 치(治), 즉 공부하는 것이다. 이단(異端)에 대해 신주의 범(范)씨는 양주(楊朱)나 묵자(墨子)와 같이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유가(儒家) 외의 다른 학파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범씨의 해석은 다산도 지적하고 있듯이, 양주나 묵자가 공자보다 후대의 사람으로 공자 당시에는 아직 문호(門戶)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자장 4에서 자하는 “비록 작은 도라 하더라도 반드시 볼 만한 것이 있으나, 멀리까지 가는데 발이 묶일 우려가 있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배우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로 미루어 본다면, 공자가 말하는 이단이란 아마 인(仁)과 예악(禮樂)으로써 천하 만민을 편안케 하는 그러한 공부 외의 다른 잡학(雜學)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攻)을 공격한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학자들도 있다. 송(宋)의 채절(蔡節)의 『논어집설(論語集說)』, 청(淸)의 왕개운(王闓運)의 『논어훈(論語訓)』 등으로, 이단이 한 쪽으로 치우쳐 정도(正道)에 어긋나는 폐단이 있지만, 군자는 자기의 길만을 꾸준히 갈 뿐, 거기에 대해 공격하지 않는다. 자신의 공부에 오히려 방해가 되고, 또 남으로부터 쓸데없는 원한을 사게 되어 해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청의 이공(李塨)은 『논어전주(論語傳注)』에서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의 “이단을 공격하여 없애면, 사특한 주장의 폐해가 그치고 정도가 가히 실행될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已)를 지(止)로 읽은 것이다.
 
  <참고> 자장 4

17,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해설> 유(由)는 공자의 제자로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는 자로(子路), 또는 계로(季路)이다. 『사기』 「중니제자열전」에 의하면 노(魯)나라 태생으로 공자보다 9살 아래라고 전해진다. 회(誨)는 가르쳐 주는 것이다.
  자로가 용기를 숭상하여 알지 못하는 것도 억지로 안다고 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공자가 이를 경계한 말이라고 주자(朱子)는 풀이한다. 자로 3에서도 공자는 자로에게 “답답하구나 유야!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은 접어 두는 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같은 맥락이다.
  청(淸)의 유월(兪樾)은 『군경평의(羣經平議)』에서 誨女知之乎의 지(知)는 지(志)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내가 네게 가르쳐 줄테니 잘 새겨 두어라.”는 뜻이 된다.

  <보충> 학문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의혹이 있는 것을 안다고 하면 그 안다고 하는 것 전체가 의혹에 근거한 불확실한 것이 되고 만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가 모든 의혹을 그 뿌리까지 파헤쳐 마침내 그 자신이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분명한 사실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는 명제로부터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켰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공자는 관심이 학문의 이론적 토대 구축보다는 실천에 있었던 관계로 데카르트와 같은 방법론적 회의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으나, 의혹이 없는 분명한 것을 안다고 하고, 의혹이 있어 불확실한 것은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분명히 하였다. 이는 공자 또한 자신의 학문을 한 점의 의혹도 없는 명백한 진리 위에 구축하려고 애썼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자의 치열한 학문적 자세를 엿볼 수 있다.  

18, 子張學干祿.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자장이 녹을 구하는 것을 배우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많이 듣되, 의심이 가는 것은 접어두고, 그 나머지를 삼가하여 말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많이 보되, 확신이 안 서는 것은 덮어두고, 그 나머지를 삼가 행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없고 행동에 후회가 없으면, 녹은 자연 그 가운데에 있으리라”

 <해설> 자장(子張)은 공자의 제자로 성은 전손(顓孫)이고, 이름은 사(師), 『사기』 「중니제자열전」에 의하면 공자보다 48살 아래이다. 學干祿의 간(干)은 구한다는 뜻이고, 녹(祿)은 벼슬아치가 받는 봉록이다. 자장이 벼슬을 얻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를 청한 것이다. 문(聞)은 스승으로부터 얻어 듣는 것이다. 궐의(闕疑)의 궐(闕)은 비어두는 것으로 의심이 나는 것은 일단 접어두라는 말이다. 기여(其餘)는 의심이 가서 접어두고 난 나머지를 말한다. 우(尤)는 허물이다. 견(見)은 책을 통해 본 것이고, 태(殆)는 위태로워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회(悔)는 후회다. 의심이 가고 애매한 것을 접어두라는 것은 바로 앞 장에서 말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말과 뜻을 같이한다.
  공자는 벼슬을 구하려는 자장에게 학문이 우선이며 학문을 하면 벼슬은 저절로 온다고 대답하고 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자장이 학문보다 벼슬에 뜻을 두고 있어 그것을 경계한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청(淸)의 정호(鄭浩)는 『논어집주술요(論語集注述要)』에서 간록(干祿)을 풀이하기를 복(福)을 구하는 것(求福)이라고 하고 있다. 덕을 쌓아 허물과 후회를 적게 하면, 남으로부터 비난받을 일도  없고, 또 귀신으로부터 책망받을 일도 없어, 복이 자연히 굴러 들어오게 된다고 공자가 자장을 가르친 말이라고 한다.
  앞의 15장부터 여기까지 공자는 배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보충> 공자는 춘추 말의 난세에 태어나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경세(經世)에 일생의 뜻을 두었다. 그에게 있어 군자란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학문을 정치에 구현하여 만백성을 평안케 할 사명을 지닌 지성인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나라에 도가 행하여지고 있으면 벼슬을 해야 하며(邦有道 穀―헌문 1\邦有道則仕―위령공 6), 나라에 도가 행하여지고 있는데도 지위가 낮고 가난함은 수치라고(邦有道 貧且賤焉恥也―태백 13) 하였다.  
  그러나 벼슬보다 우선하는 것은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는 것이다. 공자는 아직 배움이 천박한 자고(子羔)를 비(費) 땅의 읍재(邑宰)로 삼으려는 자로를 비판하였다. 자로가 백성과 인민이 있는데 굳이 책을 읽는 것만이 학문을 하는 것이냐고 반박하자 그는 저래서 나는 말만 교묘히 둘러대는 자를 미워한다라고 꾸중을 하기까지 하였다(선진 24).
  또한 공자는 벼슬이라고 하여 무조건 지지하지도 않았다. 군자가 벼슬을 함은 자기의 학문을 바탕으로 세상에 도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나라에 도가 없으면 벼슬에서 물러나 세상으로부터 은거해야 한다(舍之則藏―술이 10\無道則隱―태백 13\邦無道則可券而懷之―위령공 6). 나라에 도가 없는 데도 벼슬을 하여 녹을 먹거나 부귀를 얻는 것은 치욕일 뿐이라고(邦無道 富且貴焉恥也―태백 13\邦無道穀恥也―헌문 1) 한다.

  <참고> 학문과 녹에 관해서는 위령공 31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19,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
  애공이 묻기를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하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시길 “곧은 사람을 발탁하여 굽은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이 복종하지만, 굽은 사람을 발탁하여 곧은 사람 위에 놓는다면 백성은 복종하지 않습니다.”

  <해설> 애공(哀公)은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의 군주로 성은 희(姬)요 이름은 장(蔣)이다. BC 494년에 즉위하여 16년 간 왕위에 있었다. 자대왈(子對曰)이라고 하지 않고 공자대왈(孔子對曰)이라고 한 것은 애공이 노나라 왕이기 때문에 공대한 것이다.
  거(擧)는 천거(薦擧)하는 것이고, 조(錯)는 올려놓는 것(置)이다. 제(諸)는 지어(之於)의 줄인 말이고, 왕(枉)은 굽은 것이다. 擧直錯諸枉은 곧은 사람을 발탁하여 굽은 사람들 위에 올려 놓아 그들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고, 擧枉錯諸直은 그 반대이다. 다산의 『논어고금주』, 청(淸)의 유보남의 『논어정의』, 일본의 오규소라이(荻生徂徠)의 『논어징(論語徵)』이 모두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하안(何晏)의 『논어집해』(고주)에 인용된 포함(包咸)이나, 주자의 『논어집주』(신주)의 해석은 이와 다르다. 조(錯)를 버리다(廢置)는 뜻으로 해석하여 곧은 사람을 천거하고 굽은 사람을 버리면 백성이 복종하고, 그 반대이면 백성이 불복한다라고 풀이한다. 어느쪽이던 의미는 큰 차이 없으나, 안연 22에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이라고 굽은 사람을 곧게 만든다는 표현(能使枉者直)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전자가 좀더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여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말이다.
 
  <참고> 안연 22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20, 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 如之何. 子曰 臨之以莊則敬 孝慈則忠 擧善而敎不能則勸.
  계강자가 묻기를 “백성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충성하며 선행에 힘쓰게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시길 “백성에게 장중한 태도로 임한다면 공경할 것이요, 부모에게 효도하고 백성을 자애롭게 사랑한다면 충성할 것이고, 착한 사람을 천거하여 능력이 없는 사람을 가르치게 한다면 백성이 선행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해설> 계강자(季康子)는 노나라의 대부로 삼환(三桓) 중 제일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계손(季孫)씨의 가주(家主)로 이름은 비(肥)이다. 아버지는 계환자(季桓子)이다. 권(勸)은 선행에 힘쓰게 하는 것이다.
  擧善而敎不能則勸이라는 구절은 바로 앞의 擧直錯諸枉 則民服과 같은 맥락이다.

21, 或謂孔子曰 子奚不爲政. 子曰 書云 孝乎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이르기를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정치를 하지 않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서(書)』에 이르기를 ‘효도하라, 오직 효도하고 형제 간에 우애(友愛) 있어라. 그러면 정사에 베푸는 것이 있느니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정치를 하는 것인데 어찌 따로 정치를 할 것이 있겠습니까?”

  <해설> 서(書)는 보통 『서경(書經)』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서경이라고 부르는 책은 한(漢)대에 정리된 것으로 당시에는 상서(尙書)라고 불렸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 오늘날 우리가 서경이라고 부르는 책이 지금의 내용대로 존재했을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원래 서라는 말은 각 왕조나 왕들의 여러 기록들을 담은 일종의 사서(史書)를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 서(書)는 『서경』이 아니라, 공자 시대까지 전해 내려온 여러 가지 역사 기록들(書) 중 어느 하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공자가 인용한 구절은 현재의 『서경』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이른바 위고문상서(僞古文尙書)의 주서(周書) 군진편(君陳編)에 실려 있으나, 이 위고문상서는 AD 4 세기 경인 동진(東晋) 시대의 위작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공자가 인용한 서(書)의 구절이 어디까지인지조차도 불확실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孝乎惟孝 友于兄弟만을 서(書)에서 인용한 구절로 보기도 한다.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는 혈연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공자 시대의 사회는 이 혈연적 질서를 매개로 조직된 사회였다. 공자에게 있어 이것을 떠난 정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22, 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이 되어 신의가 없다면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큰 수레에 수레채 마구리가 없고, 작은 수레에 멍에 막이가 없다면 그 무엇으로 가겠는가?”
 
  <해설> 예(輗)는 수레체의 마구리, 월(軏)은 수레채의 막이로 모두 멍에를 매는 곳이다. 
  예(輗)와 월(軏)이 없으면 수레와 우마(牛馬)가 각기 분리되어 마차가 갈 수 없는 것처럼, 신(信)이 없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속이 사라져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된다.

23, 子張問 十世可知也.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可知也. 周因於殷禮 所損益可知也. 其或繼周者 雖百世可知也.  
  자장이 묻기를 “십대 후를 알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은(殷)나라는 하(夏)나라의 예를 이어받았으니 그 줄어들고 늘어난 것을 알 수 있고, 주(周)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이어받았으니 그 줄어들고 늘어남을 알 수 있다. 혹 주나라의 뒤를 이어받는 자가 있다면 비록 백 세 후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해설> 세(世)는 왕조(王朝)가 한 번 바뀌는 것을 말한다.
  하(夏)나라는 우(禹)임금에 의해 건설된 나라로 중국 최초의 왕조로 전해지고 있으나 고고학적으로는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다. 마지막 임금 걸(桀)의 폭정으로 인하여 은(殷)나라 탕(湯)왕에게 멸망당했다고 한다.
  은(殷)나라는 고고학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중국 최초의 왕조다. BC 17세기 경부터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일대를 중심으로 발달한 나라이다. 탕(湯)왕이 하나라를 타도하고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주(紂)왕 대에 이르러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멸망당하였다(BC 1122년 혹은 1026년).
  주(周)나라는 은 왕조를 계승한 나라다. 원래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중부 지역의 기산(岐山) 부근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은(殷)의 복속국이었다. 그 시조는 후직(后稷)이라고 한다. 문왕(文王) 대에 이르러 크게 발달하였고, 그 아들인 무왕이 은의 주(紂)왕을 멸하고 천하를 차지하였다. 최초의 수도는 지금의 섬서성 서안(西安), 즉 장안(長安) 부근에 있던 호경(鎬京)이었다. 유(幽)왕 대에 융적(戎狄)의 침입을 받아 멸망당하였으나(BC 771년), 그 아들 평(平)왕이 수도를 지금의 하남성 낙양(洛陽) 부근으로 옮겨(BC 770년) 나라를 재건하였다. 이를 주(周)의 동천(東遷)이라고 하며 그 이전을 서주(西周), 이후를 동주(東周)라고 한다. 동주 시대의 주 왕실은 이미 권위를 잃어 겨우 명맥만 존재하는 형편이었다. 동주 시대는 흔히 춘추전국시대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으며, 편의상 다시 춘추시대(BC 770~453년)와 전국시대(BC 452~221년)로 나눈다. 난(赧)왕 대에 이르러 진(秦)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BC 256년).
  여기서의 예는 문물제도를 말한다. 현재는 과거의 바탕 위에 서 있으며, 미래는 현재로부터 이루어진다. 인간 세상에는 보편적인 이치가 있으니, 그 보편적인 이치를 깊이 이해하고 역사를 헤아릴 수 있다면 비록 먼 미래라도 능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의 역사관이다.

24,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그 귀신이 아닌 것을 제사지내는 것은 아첨이요,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해설> 귀(鬼)는 제사의 대상이 되는 조상의 영을 가리킨다. 첨(諂)은 아첨하는 것이다. 그 귀신이 아닌 것을 제사지내는 것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귀신에게 아부하는 것이다.

  <참고> 의와 용에 대해서는 양화 23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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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진 2010-02-03 16:08:49
형 논어 잘 읽고 있습니다. 한번에 너무 많이 올리지 마시고 조금씩 나누어서 올려주세요.
세번 내지 네번에 걸쳐서 한 장을 끝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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