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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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는 꽃
  • 김효정
  • 승인 2010.11.1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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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김효정 / 영화 프로듀서, 영화사 '꿈꾸는 오아시스' 대표

혹시 "할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여성의 성기 중 조금이라도 돌출된 부분은 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칼로 모두 도려내 실로 꾀매 버리는 의식의 할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성인식이라는 명분을 갖고 이 지구의 반대편에서 행해지고 있는 의식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3세부터 15세까지 여자 아이들이 할례를 함으로써 진정한 여성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전통을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할례 도중 과다 출혈과 사후 감염 등으로 인해 여자 아이들 사망률은 20~30%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도시에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소녀의 반가운 미소.

왜 할례를 이야기하는가?

한 논문에 의하면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여성할례는 꼭 필요했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클리토리스를 잘라내면 태어나 한 번도 성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남편을 독점하기 위해 여러 명의 부인들이 서로를 질투하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물건을 사듯 결혼한 여성을 단지 종족 번식의 수단으로만 쓰는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예입니다.

"아니, 각국 정부에서 금지하면 이제 된 거 아니야?"라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남성들은 할례를 받은 여성을 선호합니다. 결혼을 한 첫날 밤, 남편은 부인이 할례를 했다는 증거인 봉합했던 실을 풀고 부부 관계를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온 가족에게 이 결혼이 성스럽게 이루어졌다고 공표합니다. 할례를 한 여성은 순결한 처녀라는 의미에서입니다. 그렇기에 할례를 받지 않은 여성은 처녀가 아니라고 손가락질 받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할례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말리아 출신 모델 와리스 디리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데저트 플라워>는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아닌, UN 연설에서 할례를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올리며 끝을 맺습니다. 그녀는 그와 동시에 모델로서의 삶은 끝이 났지만 인권운동가가 되어 와리스 디리 재단의 대표로 할례 반대 운동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사막을 동경하며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 등의 사막레이스를 완주하며 아시아 첫 번째 사막레이스 여성 그랜드슬래머가 된 저는, "왜 그 땅에 살고 있는 여자들의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내 꿈을 이뤄주고, 용기와 자신감을 선물해준 사막, 그 사막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 프로듀서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던 끝에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먼 땅의 이야기이지만,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여성들이 다시 꿈 꿀 수 있도록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피는 꽃>을 위해 우리는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날마다 잠든 동생을 업느라 열한 살 소녀의 허리는 휘어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한국의 여고생 영은은 1년 전 케냐에서 3주간 봉사활동을 하며 의사의 꿈을 키웠습니다. 기본적인 소독과 간단한 알약 하나가 없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제 또래 여자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꿈을 키워나갈 꽃다운 나이에 벌써 두 아이의 엄마이자 세 번째 부인인 소녀, 아니 어린 신부. 아무 것도 모르는 맑은 눈의 세 살 난 딸에게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할례를 시켜야 하는 엄마. 꿈을 잃은 소녀들의 눈은 아픔을 참고 있습니다. 제 딸에게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은 유산이지만 그녀들에겐 그럴 힘이 없습니다.

그 친구들이 진정 원하는 꿈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전통이란 이름으로 할례를 유지하는 것이 진정 행복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잘못된 관습을 바꾸어 모두 함께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영은은 다짐합니다. 직접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내 작은 생각, 그리고 몸으로 행하는 실천 하나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아픈 이야기를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전 세계 모든 여성이 할례를 받는 거 아니냐"고 되묻는 아프리카 친구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꼭 대답해 주고 싶습니다. 자신에게는 꿈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너희들도 꿈 꿀 수 있는 세상이 있다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대한민국도 이제 세계와 함께 생각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UN MDG(유엔 새천년개발 목표)의 실현을 기대하며 전 세계 수십 억 인구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아프리카 여성 할례의 현실을 바로 보고 어쩔 수 없는 그들의 현실과 그 해결 방안에 대해 다 함께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김효정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 저자,
동양 최초 사막레이스(4Deserts) 여성 그랜드슬래머 (전 세계 3번째)


와리스 리디의 삶을 그린 쉐리 호만 감독의 <데저트 플라워> 한국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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