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과 유랑민으로서의 우리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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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꽃과 유랑민으로서의 우리 민족
  • 정민나
  • 승인 2019.01.04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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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이용악의 북방시와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 정민나 / 시인




고대 이야기의 형식에서 발전하여 풍부한 소재를 가지고 대중 앞에서 영웅담을 들려주었던 대표적 서사시로 호메로스의 <일리야드>, <오딧세이>를 들 수 있다. 역사 이전의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문학은 서술 형식으로 많은 사건을 그려왔다.

한국 서사시 연구는 각 시대의 개별 작품을 통해 이루어져 왔지만 그 장르적 개념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서사시’, ‘서정시’, ‘극시’의 장르 개념을 각기 달리 구분해서 서구 문학의 3대 기본 양식으로 확립된 바 있는데 신화 서사시 「東明王편」, 「帝王韻紀」, 서사무가, 「국경의 밤」등 전승의 맥락 속에서 한국 서사시가 민족의 수난기에 창작되어 민족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 왔다는 것은 한국 신화에 대한 서사시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탐색은 한국 문학의 뿌리와 민족 서사시의 근원을 찾는 작업이 된다.
 
근대에 들어 민족의 정신과 민중적 양식의 서사적 특성을 살려 시대 상황이나 역사적 사실을 시적으로 문맥화한 우리나라 시인은 30년대 이용악이 있다. 그의 서사시는 시문학 속에 서정과 서사의 장르적 특성을 적절하게 통합하여 향유 주체인 민중에게 이해하기 용이한 시의 형상을 꾀하였다. 이것은 서정시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서사 양식의 장점을 살린 것으로 시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용악의 시세계와 서사시의 선택
 
자신의 고향을 ‘변경’ 혹은 ‘경계’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던 이용악은 북간도와 연해주를 오가는 생활을 경험한 절망과 비애를 시로 형상화 한다. 그는 일본의 압제가 다른 곳과 다름없이 행해진 만주를 그의 고향 경성과 동일한 공간으로 본다. 유이민의 현장성을 보여주는 이런 공간에서 차원이 다른 민족의 의미를 포착, 창조의 지평을 구체화 하였다.

‘민족’을 설명하는 국립 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의 뜻풀이에는“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 인종이나 국가 단위인 국민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곳에 혈연(血緣)이라는 요소가 생략 되어 있다.
 
오랑캐는 고려 장군에게 쫒겨난 사람들인데, 그의 시 「오랑캐 꽃」을 보면 오랑캐와 유랑민으로서의 우리 민족을 등치시키고 있다. 곽효환은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연구」에서 이용악의 “북방 공간은 국경이 갈라지고 민족적으로 분리 되는 공간으로 인식하지 않고” 아주 오래 전부터 무고하고 고난 받는 변두리 피차별자들의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김종철 역시 "이용악의 시 어디에도 우리나라와 민족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도 추상적인 애국심의 표현도 없다“고 한 바 있다. 이는 이용악의 「오랑캐 꽃」에서 드러나는 북방 변두리 유이민들과의 연대감을 제대로 포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용악의 시에는 경제적 궁핍과 신산한 가족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노동자들과 유이민의 삶이 펼쳐져 있다. 이용악이 고향을 떠난 것은 가계의 지독한 가난 때문이며 힘겨운 생활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당대의 수많은 가장들의 비참한 삶을 대변한다. 이를 통해 당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의 상황을 깨닫게 되고 따라서 고통스러운 삶을 통한 의식의 확대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대인들의 형상을 만나게 된다.
 
1930년대 후반 이용악은《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 꽃》(1947), 《이용악집》(1947)을 발간하여 소월 백석과 더불어 북방정서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시화하였다. 또한 유이민의 삶을 취재하여 이향과 귀향의 정항을 일찍이 간파하고 고향상실이나 유랑자 의식과 같은 유이민의 실상을 시로 제작하였다. 이용악의 《분수령》과《낡은 집》을 보면 이향과 탈향이 주조로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윤영천은 이용악의 시를 ‘유이민 문학’이라고 분류한다.

 
이용악의 북방시와 서사적 의미구조

 
조선의 민초들이 쌀과 땅을 바라고 만주로 이민에 줄을 잇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이고 19세기 중엽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에 이르면 이주민 2,3세대들이 그 지역을 고향땅으로 알고 자라게 되었다. 만주를 고향으로 상정하고 그곳을 찾아간 우리나라 시인 중에 청마와 백석이 있다. 그들은 자기 시의 자양 안에 만주를 일종의 해방구이자 가능성의 땅으로 상정하였다. 그러나 이용악은 고향을 단지 아름다운 세상으로 그리워하는 이들과는 사뭇 다른 시를 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정처 없는 유랑으로 떠돌아 다녀야 하는 유이민의 삶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들과 공통점이 있지만 이용악의 경우 고향 ‘북쪽’을 생각하는 마음은 늘 강퍅하고 궁벽하였다. 자신의 고향이 변경지역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애틋한 향수를 갖는데 이러한 양가적인 생각은 고향에 대한 자조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제비같은 소녀야>와 <전라도 가시내>는 모두 <오랑캐 꽃>에서 나오는 ‘팔려간 여인’의 모티프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시들에서 시인은 국경 지대를 전전하며 살아야 했던 곤궁한 유이민들의 설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용악 시창작의 주된 과제는 소외된 이웃과 북방 동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대자적 주체의 소명의식과 이상 구현의 실천적 의지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내 주권과 삶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주인 의식에 기초한 대자적 관점과 반성적 성찰은 굶주림을 피해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웃에 대한 연민과 아픔을 함께한다. 개인의 서정을 떠나 사회적인 관심을 내포한 이용악의 시작 태도는 국내의 유이민의 비극적 삶을 곧 모순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또한 공동체 의식으로 드러나게 한 것이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이용악의 시에는 ‘나’, ‘너’, ‘우리’, ‘함께’, ‘모두’’라는 시어가 많이 등장한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은 유랑자의 곡진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대감이고 동질감이다. 이 시에서 ‘나’와 ‘너’는 구체적 대상을 지칭하기보다 ‘나’와 ‘너’로 표상되는 ‘우리’라는 공동체 구성원을 이른 것이다.
가령 그의 시에서 제국주의의 폭압에 못 이겨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나가는 고통스런 화자의 체험을 식민지 하층민의 보편적인 차원으로 형상화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연해주 우라지오에서 소금 밀수를 하던 이용악의 아버지는 연해주에서 객사를 하는데 여기서 굶주림을 피하여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웃들에 대한 연민은 이용악 자신이 체험한 현실에서 나온 것이며 그들의 아픔과 함께 하는 민족 공동체 의식과 합일된다.
 
시인은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 사람끼리 시름에 젖어 유랑의 기차에 올랐지만 절박한 소원까지 버릴 수는 없다는 의지를 형상화한다. 자신에게 고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나 고향이 있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운 것임에도 그런 자각을 통해 화자가 견고하게 단련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의식의 확대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은 자신과 함께 탑승한 당대 민중들이고 그들에게“너는 차라리 밤을 부름이 좋다 창을 열고 거센 바람을 받아들임이 좋다”라고 견고한 현실 인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오랑케꽃>                                                        <하얀 오랑케꽃>



그래도
우리를 실은
차는 남으로 남으로만 달린다
 
(… 중략 …)
 
너는 차라리 밤을 부름이 좋다
창을 열고
거센 바람을 받아들임이 좋다
머릿속에서 참새 재잘거리는 듯
나는 고달프다 고달프다
 
너를 키운 두메산골에선
가라지의 소문이 뒤를 엮을 텐데
그래도
우리를 실은
차는 남으로 남으로만 달린다
 
— 「그래도 남으로만 달린다」 부분 (『낡은 집』1938)

 
함북 경성 출신의 이용악은 일본과 서울을 거치며 고향과 타향을 계속해서 오가지만 유랑의 삶을 멈출 수 없는 주변인으로서의 그의 좌절은 고향에 대한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의식을 갖게 한다. 고난의 근원이 사실은 고향의 현실인 탓에,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현실적 고통으로 각인되는 고향의식을 통절한 심정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실된 ‘시원의 경험’은 삶의 훼손을 측정하는 잣대로서 환기 되지만 이처럼 이용악은 개인사적 고단한 생활 체험을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끌어 올린다.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山脈이 바람에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른다
 
— 「북쪽」 전문 (『분수령』1937 )

 
이용악이 형상화하는 고향은 늘 그의 지친 몸을 안온하게 받아주는 휴식처가 아니다. 1930년대 말 조국의 현실은 일제의 수탈로 궁핍하고 피폐한 수난의 역사를 지나고 있었고 민족사의 영욕이 부정적으로 제시되고 시름 많은 서사가 암울하게 펼쳐지는 시기였다. 그는 막막한 고향을 떠났지만 그런 고향이 그리워 가난과 불모의 땅으로 다시 돌아온다. 돌아왔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고향’을 아련한 슬픔을 안고 다시 등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계속한다.

이용악은 30년대 말 북방 마을의 현실을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로 그리는데 두 번째 시집인《 낡은 집》에서는 그런 고향이 그리워서 먼 길을 돌아왔다고 하였다.
 

하얀 박꽃이 오들막을 덮고
당콩 너울은 하늘로 하늘로 기어올라도
고향아
여름이 안타깝다 무너진 돌담
 
돌 우에 앉았다 섰다
성가스런 하로해가 먼 영에 숨고
소리없이 생각을 드디는 어둠의 발자취
나는 은혜롭지 못한 밤을 또 부른다
 
도망하고 싶던 너의 아들
가슴 한구석이 늘 차그웠길래
고향아
돼지굴 같은 방 등잔불은
밤마다 밤새도록 꺼지고 싶지 않었지
 
드디어 나는 떠나고야 말았다
곧 얼음 녹아내려도 잔디풀 푸르기 전
마음의 불꽃을 거느리고
멀리로 낯선 곳으로 갔더니라
그러나 너는 보드러운 손을
가슴에 얹은 대로 떼지 않었다
내 곳곳을 헤매여 살 길 어두울 때
빗돌처럼 우두커니 거리에 섰을 때
고향아
너의 부름이 귀에 담기어짐을
막을 길이 없었다
 
“돌아오니 나의 아들아
까치둥주리 있는
아까시아가 그립지 않느냐
배암장어 구어 먹던 물방앗간이
새잡이하던 머들방천이
너는 그립지 않나
아롱진 꽃 그늘로
나의 아들아 돌아오라”
 
나는 그리워서 모두 그리워
먼 길을 돌아왔다만
버들방천에도 가고 싶지 않고
물방앗간도 보고 싶지 않고
고향아
가슴에 가로누운 가시덤불
돌아온 마음에 싸늘한 바람이 분다
 
— 「고향아 꽃은 피지 못했다 」부분 (『낡은 집』1938.)
 

“배암장어 구어 먹던 물방앗간”과 “새잡이 하던 버들방천”의 고향이고“아롱진 꽃그늘”이 그리워서 먼 길을 돌아온 고향인데 화자는 다시 떠나려는 마음을 가진다.“가로누운 가시덤불‘이나 "싸늘한 바람이 부는” 가슴은 모두 안주할 수 없는 고향의 현실에 그 요인이 있다. 수탈이 자행된 고향은 지독한 가난으로 이어져 안타까움과 혐오의 양가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자는“고향아 여름이 안타깝다”와 “돼지굴 같은 밤 등장불은 밤마다 밤새도록 꺼지고 싶지 않았지”와 같은 현실 인식을 토로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의 시는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해야 했던 우리 민족의 현실을 ‘오랑캐꽃’에 의탁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화자가 고려장군이라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에 대한 동정으로 옮겨가는‘각성’의 과정을 담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극심한 멸시와 천대를 받아온 부족이‘오랑캐’라면 이러한 오랑캐를 변방으로 내쫒은‘고려장군’은 가해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오랑캐꽃’이 우리 민족의 표상이라면 그것은 일제 강점기 피압박 민족으로서 피해자의 처지를 은유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오랑캐’의 시적 의미는 민족적 대립 관계를 형성 하는 것이 아니라 변두리 피차별자들의 설움과 소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랑캐꽃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사흠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리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쫒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 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니 몇백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었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이용악 「오랑캐 꽃」 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고통 받는 유이민들과의 공감의 표시를 형상화 하고 있다. 그 옛날에는 여인이 팔려간 공간이기도 하고 지금은 일제의 폭력과 수탈이 자행되는 곳이지만 북방의 한 변경마을은 북간도와 연해주를 오가며 공동생활을 해온 다민족의 애환을 환기시킨다.
 
민족의 시원을 구성하는‘오랑캐’에 대해 홍정선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한다. “‘숙신’, ‘예맥’, ‘선비’, ‘모용’, ‘말갈’, ‘여진’ 등 여러 민족이 흥기했다가 소멸한 고대 동북지방에서는 ‘흉노민족’, ‘부여민족’, ‘고조선 민족’‘, 선비 민족’, ‘고구려 민족’ 등으로 흡수되어 국가를 만들었다가 다시 흩어지고 역사가 되풀이 되었다.”또 조동일은 중국 주나라와 치열하게 싸운 ‘동이족’의 문화가 우리 문화와 맥락이 닿아 있다고 보고 있는데 서나라는 전국 시대 초나라와 싸우다가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할 때 중국판 태안에 들어갔다. 그 뒤 나라 잃은 백성들 가운데 일부가 한반도로 이주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국의 건국 서사시가 부여계 건국 신화와 공통된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들어 추론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를 통해 “국가와 민족, 민족과 종족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1930년대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북쪽 변경의 사람들에 대해 이용악이 ‘혈연’이라는 요소가 생략된 고통 받는 동족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 22장, 천병희 역, 문예출판사, 1991.
임화, 『문학의 논리』, 학예사, 1940.
김욱동, 『대화적 상상력 - 바흐친의 문학이론』, 문학과 지성사, 1988,
홍정선, 「민족 문학 개념에 대한 역사적 검토」, 『문학과 사회』, 1988.
윤영천, 「민족시의 진전과 좌절」, 『이용악 시선집』, 창작과 비평사, 1995.
이명찬,「한국 근대시의 만주 체험」, 한중일 문학연구 13권 한중일 문학회, 2004.
곽효환,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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