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사회보다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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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사회보다 내 인생”
  • 한인경
  • 승인 2019.01.28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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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다시 주목하는 영화 - 『휴먼 캐피탈』



<한인경의 씨네공간>은 2016년에는 그해 상영된 독립영화들을, 2017년부터 현재까지 ‘다시 주목하는 영화’라는 테마로 평론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이미지 너머로 발견하는 한 권의 철학서와 같다. 우리는 그 속에서 힐링하고 비상하며 철학적 사유로 삶의 의미를 읽는다.


인생 자존감

다시 주목하는 영화
『휴먼 캐피탈 Il capitale umano, Human Capital)
 

“상류사회보다 내 인생”
 
개  봉 : 2013(111분/이탈리아)
감  독 : 파올로 비르지
출  연 : 파브리지오 벤티보글리오(디노 역), 마틸드 기올리(세레나 역),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칼라 역), 파브리지오 기푸니(지오바니 역)
장  르 : 드라마       
등  급 : 청소년 관람불가



출처:영화『휴먼 캐피탈』 

 
엔딩 크레딧 문구,
“과실치사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루카’는 내년 가을이면 형기가 끝난다. ‘마시’의 보험회사는 피해자의 가족에게 보상금 218,976유로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상기 액수는 사람의 기대수명 및 수입능력, 정서적 유대관계의 양과 질에 따라 결정된다. 보험회사는 이것을 ‘휴먼 캐피탈’이라 부른다.”

영화는 현실과 인간의 삶을 다양하게 조명한다.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는 소중한 인생 참고서가 되기도 하며, 대학 교재로서도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영화 <휴먼 캐피탈>은 익숙치 않은 정서일 수 있는 현대 이탈리아 상류사회의 비정함과 인생 자존감의 의미를 되새겨 준다. 이 영화는 주 배경이 졸부에 가까운 상류층이지만 사람 사는 모든 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학교 연말 행사에서 음식 등 뒷정리를 마친 직원이 귀가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영화의 시작이다. 그리곤 그 사고와 연관된 상황을 주요 3인의 시점에서 플래쉬 백으로 파고 들어간다.

이견 없이 볼 수 있었던 영화였고 몰입도, 긴장감도 높았다. 전개와 결과가 예상되는 서사구조에서 감독은 연출의 묘를 발휘했다. 구성을 각각 1장 ‘디노’, 2장 ‘칼라’, 3장 ‘세레나’로 나누었는데 각 장의 인물 시각에서 펼쳐진다. 이러한 형식이 물론 새삼스러운 구성은 아니지만, 마지막 4장까지 속도감 있으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하나의 상황을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면서 발생하는 오류와 과장이 얼마나 주인공들의 일상을 꼬이게 했는지 증명해 주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한 번뿐인 인생 자존감 회복을 암시면서, 갈등이 정리되는데 유족에게 객관적 잣대라고 규정된 휴먼 캐피탈에 따라 사망 보상금 액수가 공개된다.



출처:영화『휴먼 캐피탈』


『휴먼 캐피탈』이란 제목에서 읽히듯 사람과 돈의 이야기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굳이 동서양의 구분도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탈리아 상류층에서 흐르기 시작한 탁류는 돈과 권력을 좇는 자와 그것을 이용하는 타락한 자들을 오염시킨다. 타락한 돈의 가치와 뿌리 내린 권력 역시 당연히 악취가 난다.
 
등장인물 요약으로 대강의 스토리를 정리한다.
물질 풍요를 누리는 냉혹한 펀드 투자 사업가 ‘지오바니 베르나스키’, 남편의 부에 푹 묻혀 사는 전직 배우, 예술에 대한 꿈이 있는 듯하나 자존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오바니의 아내 ‘칼라’, 상류층 진입을 꿈꾸는, 부인은 바람이 나서 떠났고, 동거녀와 살고 있으며, 인생 대박을 꿈꾸며 지오바니에게 아부,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배팅, 투자금 90%를 날린 전형적인 돈의 노예 ‘디노’, 고등학생으로 화목한 가정을 그리워하나 나름대로 현실 적응을 하며 꿋꿋이 생활하는 디노의 외동딸 ‘세레나’, 거의 괴물에 가까운 캐리커처를 그려 방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오타쿠 수준의, 세레나가 사랑하는, 불안한 정서 ‘루카’, 지오바니의 철없는 아들 ‘마사’.

디노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를 칭찬하고 싶다. 디노는 아부하고, 비겁하고, 자식까지 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인생 대박을 노린다. 일확천금을 향한 일방통행, 존재 가치 따위는 전혀 관심 없다. 껌까지 거칠게 씹으면서 인생 찌질이 연기를 훌륭히 해냈다.



출처:영화『휴먼 캐피탈』


<에이리언:커버넌트>(2017), <마션>(2015)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가 작년에 개봉됐다.  <올더 머니 All the Money in the World>(2018), 재벌 3세의 유괴 실화를 다룬 영화다. 백만장자 할아버지 ‘게티’의 황금만능주의 가치관 그리고 수전노, 몰락까지 돈이 우리 인생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영화로 <휴먼 캐피탈>과도 의미 있는 매치가 된다.

감독은 휴먼 캐피탈 즉, 인적 자산, 인적 자본이란 화두를 던졌다. 이 기회에 각자의 자산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측정 자체가 곤란할 것 같은 가치까지도 환산한다니 말이다. 보험 회사에 청구되는 수많은 경우의 사망 건에 규정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쨌든 확장해서 사고사든 자연사든 망자의 휴먼캐피탈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휴먼 캐피탈도 궁금하다.

이탈리아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이탈리아 영화는 다소 낯설기도 하다. 이 영화는 2014년 시카고 국제영화제에서 미술상을 받았고, 2016년 부산에서 열린 ‘유럽영화 프리미어 상영회 European Film Festival’ 당시 상영되었다. 프랑스나 인도 영화는 할리우드의 높은 장벽에도 불구하고 대중 속으로 진입하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배우의 이름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상징적인 배우로 단연 <해바라기>(1970)에서 강렬한 이미지가 아직도 생생한, 그리고 지금도 현역인 83세의 소피아 로렌을 들고 싶다. 드넓게 펼쳐진 해바라기 밭과 그녀의 모습은 지금도 한 폭의 그림처럼 남아 있다.



출처:영화『휴먼 캐피탈』


‘파올로 비르지’(1964~ )는 코미디 영화 연출로 먼저 이름이 알려진 이탈리아의 중견 감독이다. 2012년 멜로 드라마 <사랑은 당신>에 이어 다음 해에 탄탄한 구성을 보여준 영화 <휴먼 캐피탈>을 만들면서 코미디 외의 장르에서도 역량을 보여준다. 필자는 아직 보질 못했는데 그가 만든 최신작으로 중병에 걸린 노부부의 마지막 여행과 로맨스를 그린 ‘레저 시커 The Leisure Seeker’가 기대되는 이유다.

필자는 2018년 10월 25일부터 28일까지 열렸던 ‘가톨릭 영화제’에서 ‘카프지앵 CaFFsien’으로 참여하면서 스위스, 벨기에, 독일, 스웨덴, 체코, 아이슬란드 등 유럽 여러 나라의 수작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 일본 만화의 화려한 색채와는 사뭇 달랐던 애니메이션 작품들과 다양한 주제의 단편 영화들은 참으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좀 더 많은 상영관에서 유럽의 영화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하이쿠(俳句) 시인 ‘마쓰오 바쇼(1644~1694)’는 인생의 허무함, 삶의 유한성, 속절없음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순간인 걸 모르다니!

『한 줄도 너무 길다』 中에서, 류시화


감독은 돈만을 좇는 자들의 더러운 욕망, 퇴색된 습관적인 정서 등에 앵글을 맞췄다. 그리고 그 폐허 더미 속에서 고개 내미는 새싹을 틔우며 희망의 불씨를 살려두었다.
새삼 바쇼의 메시지가 시공을 넘어 울림을 준다.
한인경/시인, 인천in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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