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시의 두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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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시의 두 양상
  • 정민나
  • 승인 2019.02.0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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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정민나 / 시인



독일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는 사회적 제반 조건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것을 ‘주체’로 보았다. 그뿐 아니라 이를 일종의 허위를 벗어버리는 행위 자체로 간주한다. 전쟁의 상처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었던 50년대를 지나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내면적 반성의 사유방식이 60년대 시적 주체들에게 요구 되었다. 이에 김수영, 신동엽과 김춘수의 시에서 드러나는 시적 주체의 사고방식을 살펴봄으로써 60년대 세계의 존재양상을 읽어내고 이 시기 근대성이 도달한 자리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모더니즘 시와 서정시를 구별하는 60년대 시의 흐름은 김수영과 신동엽 등의 시인들이 보여주는 ‘참여시적 경향’과 김춘수의 시에서 나타나는 ‘순수언어’에 관심을 가진다. 50년대의 카오스를 넘어 60년대 문학이 보여주는 것은 ‘주체의 자기의식’이라 할 수 있다.
세계에 대한 부정과 비판, 내면을 향한 반성적 시선이 긴장을 이루는 지점에 주체의 자리가 형성된다. 60년대 문학을 논하는데 있어서 ‘반성적 주체’의 문제는 근대성의 문제를 해명하는 주요한 단서가 된다.

 
김수영과 신동엽의 시세계
 
김수영은 전후의 혼란한 사회 속에서 지속적으로 모든 사물과 외부 현실 바로 보기에 전력하였다. 김수영의 근대적 이성은 4•19를 기점으로 하여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한국의 근 현대사에서 4•19는 진보와 자유를 향한 근대적 이성의 정점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4•19의 혼돈 체험을 계기로 김수영은 새로운 시적 사유의 과정을 밟아 나간다. 시인은 이 역사적 상황을 겪어내면서 비로소 현실에 대해 전면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 수 있었다. 혁명의 좌절 이후 전개된 일상의 경험을 주체의 자기의식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김수영의 시 세계는 출발한다. 그는 당대적 삶을 텍스트화 하는 과정 속에서 일상의 문제를 수용하고 내면화하는 근대적 주체의 사유 방식을 보여준다.
 
市長거리의 먼지나는 길옆의 / 좌판 위에 쌓인 호콩 마마콩 멍석의 / 호콩 마마콩이 어쩌면 저렇게 많은지 / 나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모든 것을 制壓하는 生活 속의 / 愛情처럼 / 솟아오른 놈 // (유년의 기적을 잃어버리고 /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나) // 여편네와 아들놈을 데리고 / 落伍者처럼 걸어가면서 / 나는 자꾸 허허…… 웃는다 // 無爲와 生活의 極點을 돌아서 / 나는 또 하나의 生活의 좁은 골목으로 / 들어서면서/이 골목이라고 생각하고 무릎을 친다
- 김수영, 「생활」 부분

 

김수영의 시에서 드러나는 ‘활기’는 도시적 생활이 보여주는 속도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4•19 혁명이 좌절된 직후에 쿠테타의 방법으로 집권한 5•16군사 정권은 역사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왜곡되는 공동체 내의 인간관계를 대면하면서 시인은 그러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속물성과 비굴성을 자각한다. 시인이 이 도시적인 것의 부정성을 인식할 때, 현실의 소음으로부터 내면의 투명성을 지킬 때. 혹은 일상의 소음이 지닌 부정성을 반성적 사유로 끌어들일 때 그의 시는 생기가 돋는다.

문학평론가 김준오는 60년대 시를 부정적 세계에 대한 비극적 인식으로 보았다. 그는 이 시기 ‘세계 상실의 허무주의’가 훼손된 존재와 그 본질에 대한 미학적 저항의 양상으로 드러난다고 보았다. 김수영의 언어에 대한 자의식 역시 미학적 성취의 계기로서 작용한다.

경쟁과 양적 성장만을 목표로 하는 1960년대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질서 체계 한 가운데서 김수영이 꿈꾼 것은 ‘새로운 역사’, ‘위대한 도시’였다. 이것의 실현을 위해 그는 시에서 ‘전통’과 ‘사랑’을 역설한다. 즉 그가 반성하는 사유 과정은 전통과 사랑의 발견을 통하여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60년대 4•19 체험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체현하고 있었던 또 한 시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신동엽이다. 시인이 지향했던 세계는 ‘두레 공동체 사회’이다. 이는 진보적이기보다는 과거 지향적인데 4월 혁명 이후 자유에의 의지를 강렬하게 형상화한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네가 본건, 먹구름 / 그걸 하늘로 알고 / 一生을 살아갔다 //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 쇠항아리, / 그걸 하늘로 알고 / 일생을 살아갔다. // 닦아라 사람들아 / 네 마음 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부분

 

신동엽은 이즈음의 세계가 피폐한 원인이 기계 문명에 있다고 보았다. 그의 반문명적 사고는 60년대가 근대화 서구화의 길, 즉 서구에 대한 종속의 길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 올바른 근대성은 무조건적인 서구적 근대화의 추종이 아니라 극복이라는 점과 궤를 같이 한다.
신동엽의 시가 이 시에서처럼 ‘원시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지만 이것은 근원적 세계의 회복을 지향하는 시인의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시에서 도시와 대타적으로 설정된 공간은 ‘고향’이다. 고향은 근원적 생명의 세계가 보존된 공동체를 의미한다. 60년대 도시화의 진행과 연관된 또 다른 측면은 고향이라는 공동체의 삶이 파괴당하여 폐허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점이다.
 
신동엽은 또한 근대화의 진행 과정의 본질을 ‘노동’과 ‘소외’라는 점을 짚어내고 있다. 이러한 부정 정신과 함께 세계 생성의 행위 속에서 그의 문학적 효용성은 극대화 된다. 동학혁명과 4•19는 역사적으로 과거 완료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화되는 역사이다. 그의 시 〈금강〉에서 보여주는 역사로의 귀환은 현실을 역사성의 텍스트로 전이시킨다. 그의 모더니티는 가장 구체적인 현재성 속에서 역사의식을 정의한다.


김춘수와 데포르마시옹의 시학
 
모든 원칙의 부정’과 ‘영원한 변화’의 조류 가운데 현대문학의 특성이 놓여있다면 대상 세계와 자아의 부정을 통한 세계 인식의 길을 찾은 사람 가운데 또 한 시인, 김춘수가 있다. 그는 과거와의 결별을 통하여 현재를 일구어내는 ‘현대’의 특성을 문학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아도르노는 “문학에 대한 규정은 일상적 어법과 생활 세계로부터 유리되고 탈 중심화된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하였다. 예술에 관계되는 어떠한 것도 자명하지 않다는 사실은 ‘새로운 것’, ‘과도적인 것’, ‘잠정적인 것’, ‘활동적인 것’에서 문학적 성격을 해명하는 것과 같다.

시인 김춘수는 존재에의 관념적 탐색을 지속했다. 그는 자기 시 세계에 대한 부정의 연속을 통해 인간의 훼손된 본질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합리적 인식 대신에 의미가 배제된 리듬만의 ‘무의미’시로 귀착하여 현실을 대상화하였다. 이 대상 세계를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이미지의 통일성을 와해시켰다. 그리하여 상식적이며 일상적인 담론의 소통을 지양하였다. 그는 끊임없이 과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것에 탐닉하면서 현대적 정신을 드러냈다.

1960년대 문학의 새로운 점을 말하는 가운데 시인 김춘수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유발하는 현실을 기록한다. “세계를 상실했다는 자의식은 필연적으로 세계의 본질에 대한 인식과 함께 기존 언어체계에 대한 불신과 회의에 도달”한다. 그는 “타락한 현실에서 소통되는 언어는 그 현실에 오염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데포르마시옹(회화나 조각에서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아니하고 주관적으로 확대하거나 변형하여 표현하는 기법)의 시학’을 통해 그는 현실적 체험으로부터 해방된 절대언어의 형식이라는 모험을 구체화 한다. ‘데포르마시옹(변형)’ 시학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는 더 이상 규범적인 현실의 질서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 이 세계는 언어 속에만 존재하는 자율적인 형상체가 된다.
 
이런 미학적 특성은 이승훈의 ‘비대상시’, 오규원의 ‘사물시’, 정현종의 ‘주객 혼융’을 시도하는 ‘추상 경향의 시’ 등으로 이어진다. 60년대 모더니즘 시의 방법적 핵심으로 떠오른 데포르마시옹의 시학은 과학적 합리성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전쟁이 끝난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자유를 구가하는 60년대 시인들의 태도는 본질을 지향하는 언어 실험을 계속하였다. 이를 통해 세계 상실 의식을 각자의 미적 태도에 따라 매우 다른 양상으로 변용하였다. 그것은 자기 시와 사회에 대한 매우 의식적인 탐구를 보여 주는 행위였다.
 
 
 
참고문헌
강소연, 『1960년대 사회와 비평문학의 모더니티』, 역락, 2006.
민족문학연구소, 『1960년대 문학연구』, 현대문학분과, 깊은 샘, 1998,
강연안, 『주체는 죽었는가』, 문예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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