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거품을 제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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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거품을 제거하자
  • 박병상
  • 승인 2010.12.0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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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에 이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세계인의 시선을 모았다. 다녀온 이의 소감이나 언론의 기사를 종합할 때, 대회 운용의 짜임새나 축제의 즐거움보다 현저하게 눈에 띄는 건, 단연 규모인 모양이다. ‘세계의 공장’이라 칭하는 중국이 긁어들이는 외화를 동원한 물량공세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는데, 비록 아시안게임일지라도 광저우는 남중국의 체면을 위해 작심하고 북경 올림픽 못지않게 준비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2년 뒤 박람회를 개최할 여수와 4년 뒤 아시안게임을 준비해야 할 인천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 대회 개최지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시설을 자랑하는 이번 아시안게임이지만 확대된 규모만큼 축제의 열기가 아시아 전역으로 펴진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참가에 의의를 둔다지만 거의 모든 게임이 한-중-일 삼국의 독무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싱겁기 짝이 없는 예선을 마치면 역시 한-중-일이 경합하고, 그 경합의 결과도 절반 이상 중국이 독식하지 않던가. 그러니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한중일 축제의 들러리라는 느낌이 들거나 다음 대회에 나오기 꺼려질 수 있겠다. 4년 뒤 인천 대회에서 중국의 독주가 뒤집힐 리 없겠지만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처럼 우리도 싹쓸이에 동참하려 든다면 아세안의 원성이 표면화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데, 그런 걱정은 나중 일이다. 지금 인천의 사정은 그리 한가롭지 않다. 우선 지나치게 초라하지 않을 규모부터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 지난 인천정부가 투기를 전제로 한 개발행위에 과하게 몰두한 까닭에 부풀 만큼 부풀려진 거품은 시방 인천 경제에 위기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더 큰 거품을 위해 이러저러한 거대 개발사업에 뿌린 막대한 자금이 땅에 저당된 마당이 아닌가. 부푼 거품이 한꺼번에 꺼져 발생할지 모르는 충격을 막아보고자 발버둥치는 인천은 현재 경기장 건설에 염출할 여유 돈이 없다. 그렇다고 4대강 사업에 애먼 돈을 퍼붓고 있는 중앙정부에 손을 내밀 수 없는 처지다. 인천의 사정을 이해할 마음과 하사할 돈이 중앙정부에 있는가 여부와 관계없이, 인천시는 부산과 달리 지원 약속도 받지 않고 아시안게임을 무모하게 유치하지 않았던가.

이 와중에 서구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의 규모를 축소한 건 다행이라기보다 아쉽다. 프로 축구와 야구 게임으로 유료관중이 찾아올 뿐 아니라 대형 결혼식장까지 유치한 문학경기장도 적자에 허덕이는 현실이다. 옛 숭의동의 종합경기장이 축구 전용 경기장으로 모습이 바뀌면 바로 프로축구도 자리를 옮길 예정이므로 문학경기장의 적자도 깊어질 텐데, 문학경기장보다 큰 규모의 경기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주경기장 건설을 줄기차게 요구한 서구의 인사들은 뾰족한 대책을 가지고 있다던가. 온갖 상업시설이 총동원될 숭의동의 축구 전용 경기장도 걱정일 텐데, 서구에서 거대 상업시설 유치 이외의 대안이 가능할까. 거대 자본이 소유할 그런 상업시설은 서구 주민들의 유동성 자금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일 수 없으면 들어서지 않을 텐데. 지역 소상공인의 생계는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인천 북부에도 문학경기장 규모의 운동장에 있어야 한다는 형평성 논리는 불투명한 경제를 미루어볼 때 무모했다. 서구와 인천 북부에 부족한 시설이 비단 경기장만은 아니다. 또한 서구에 있어도 나머지 지역에 없는 시설과 공간이 많다. 형평성 논리로 장차 인천 동서남북에 종합운동장이 있어야 하는 건 어니지 않은가. 경기장 이용 시민과 관중이 지역마다 넘친다면 고려해볼 가치가 있겠지만, 어디 그런가. 소프트웨어의 열기가 없는 경기장의 거대한 하드웨어는 지역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전국에 새로 지은 우리나라의 경기장만이 사정도 아니다. 우리와 달리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신청하려 하지 않는 일본의 사정도 비슷하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가. 인천시는 최근 “2014아시안게임 선수 연습시설 등으로 활용 예정이던 체육공원을 조성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4천500억 원에 달하는 재원을 조달할 여력이 없어 계양구 용종동과 남동구 수산동, 도림동, 논현동 그리고 연수구 선학동에 들어설 예정이던 체육공원과 선수 훈련 시설 조성 계획들을 사실상 백지화했다는 것인데, 서구에 조성할 주경기장 인근의 경명체육공원 조성 계획도 원점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북경에 이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규모에 부러움을 느낀 시민들은 다소 아쉽겠지만 예산은 물론이고 다음 대회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할 때 인천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천시민은 경기를 반납하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고 아쉬워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전면 재조정할 대상인 선학동 149-1번지 일원은 44만 8천 여 제곱킬로미터 면적에 하키장과 볼링장이 예정돼 있다. 5000관람석 규모의 하키 경기장과 3000관람석 규모의 보조 하키 경기장, 그리고 500관람석을 가진 56레인의 볼링장이 들어서고 정식 규모의 축구 경기장 2면이 선수 훈련 장소로 마련할 계획이었으며 나머지는 체육공원이 들어설 것이었다. 그를 위해 토지 소유자 262명과 보상을 협의해 올해 초, 대부분의 보상이 이루어졌지만 결국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당초 예고된 근사한 시설이 들어서지 않아 아쉬워하는 이도 있을 테지만, 인천의 경제 사정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하키 경기 열기를 미루어 볼 때, 차라리 다행이라 여기고 싶다. 전국에 선수는 물론이고 하키 동호회 회원이 얼마나 될까. 성남에 국제 규모의 하키장이 있으면 되지 인천에 8천 명 규모의 하키 경기장이 2면이나 있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볼링도 그렇다. 인천에 이용객이 줄어 울상인 대규모 사설 볼링장이 그리 많은데, 관람석을 핑계로 거대한 경기장을 새로 지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업을 포기하려는 사설 볼링장을 지원해 관람석을 마련하는 방법이 훨씬 경제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대안이 아닐까.

문학경기장도 20억 이상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야한다. 광저우는 나을까. 1억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주변 광동성과 홍콩 인구와 경제력을 감안한다면 인천보다 사정이 다소 나을지언정 인구 670만의 광저우 역시 새로 지은 숱한 경기장 때문에 한동안 부담스러워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미 보상을 상당히 마친 선학동을 비롯해 5군데 부지는 어떻게 활용해야 바람직할까. 대부분의 지역이 그린벨트거나 농경지라는 점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원상복구가 어렵다면 녹지가 태부족한 인천에 나무들이 가득한 자연공원, 빗물을 완충하며 지하로 스미는 비오톱 공간으로 다시 창조될 수 있다. 이미 유럽과 북미는 물론이고 가까운 일본의 도시들이 시민에게 배려하듯, 텃밭을 찾아 인근 도시로 주말마다 떠나려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 점이 4년 뒤 인천의 환경과 경제를 위한 최선의 대안일 수 있다.

4년 뒤 아시아의 젊은 손님들을 잔뜩 불러놓고 다시 한-중-일의 잔치판을 벌리는 건 아무래도 결례라는 느낌이다. 우리가 일부러 경기력을 포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아시아의 이웃을 위해 인천이 다른 차원의 대범함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열기는 높았지만 장비가 열악한 몽골 야구 선수단에게 배트를 무상으로 제공했듯, 경기장을 덜 지어 숨통이 트는 예산의 일부라도 활용해 그저 참여에 보람만 느낀 뒤 허탈하게 떠나곤 하는 국가 젊은이의 경기력 증진에 기여하는 일이다. 돈을 지원할 수 있겠지만 돈보다 이웃 국가들과 논의하여 코치를 파견한다면 그들의 참여 의지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현역에서 은퇴한 인천의 젊은이에게 보람 있는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천의 위상이 긍정적으로 높아지면서 장기적으로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인천시민 생활체육의 저변도 그만큼 넓고 깊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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