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우수한 비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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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우수한 비극은?
  • 김현
  • 승인 2019.04.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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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비극의 주인공이 된 우리들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고전을 읽고 함께 대화하는 형식을 통해 고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 문턱을 넘습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에는 김경선(한국교육복지문화진흥재단인천지부장), 김일형(번역가),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등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고전읽기 연재는 대화체로 서술하였는데요, ‘이스트체’ 효모의 일종으로 ‘고전을 대중에게 부풀린다’는 의미와 동시에 만나고 싶은 학자들의 이름을 따 왔습니다. 김현은 프로이드의 ‘이’, 최윤지는 마르크스의 ‘스’, 김일형은 칸트의 ‘트’, 김경선은 니체의 ‘체’, 서정혜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베’라는 별칭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13장
 
“가장 우수한 비극의 플롯은 단일하지 않고 복잡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와 애련을 환기하는 행동을 모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부터 다음 세 종류의 플롯은 피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1)덕이 높은 사람이 행복에서 불행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2)악한 자가 불행에서 행복으로 변이하는 것을 보여 주어서도 안 된다. (3)극악한 자가 행복에서 불행으로 변이하는 것을 보여 주어서는 안된다.” 77쪽~78쪽
.
 

쳬: 여기서 ‘덕이 높은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스: 제 번역본에는 ‘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트: 저는 ‘점잖은 사람’이라고 되어 있네요.
 
이: 비극의 주인공은 점잖고 선하며 덕이 있는 참으로 어려운 사람이네요.
 
베: 요즘 우리가 보는 막장 드라마는 비극의 요소를 결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체: 비극의 주인공은 완벽한 듯 하지만 각주를 보면 지적·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트: ‘하마르티아hamartia’라고 해서 결점·과실이 있는 존재라고 하는데 그것이 도덕적 과실이 아니라 상황적·운명적으로 잘못된 선택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귀스타브 도레-1866년작 aJmartiva(하마르티아) 잘못, 죄.


스: 오이디푸스의 과실은 운명적 과실·선택이라고 보면 될까요?
 
이: ‘김길태’라는 연쇄살인자를 예를 들면, 그 사람은 ‘길에서 주어온 아이’라고 해서 ‘길태’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인생을 막살았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 사람의 출신내력이 그 사람을 잘못된 선택의 길로 가게 한 것은 아닌지 그것이 ‘하마르티아’의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때, 결과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지금의 자기를 맞이할 때 오는 상황적 결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 요즘 사회이슈인 ‘조현병’도 자신에 대한 규정이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겪는 거라고 본다면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베: 정신병이 개인의 결함인지 사회적·상황적 결함인지에 따라 접근 방식은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복합적인 것 같아요.
 
트: 음란물 중독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카톡방으로 공유까지 하면서 요즘 연예계가 시끄러운 걸 보면 성 인식의 문제, 남성과 여성의 문제, 성 중독의 문제 등 작게 보면 개인들의 일탈이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복잡하고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 같아요.
 
이: 이런 상황적 요소들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면 ‘하마르티아’의 결점은 이미 개인을 넘어 사회, 시대, 운명으로까지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누구나 비극의 요소 속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베: 그런데 입양아, 장애아, 그들의 부모들의 상황을 보면 그들이 짊어져야 할 결점들은 다른 것 같아요.
 
이: 입양당하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라서 행복한 상황이라면 더 할 나위 없지만 그들의 불행이 그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트: 장애아들도 마찬가지 일 것 같아요.
 
스: 그들에게는 비극이 이미 주어진 상황인 거죠.
 
체: 비극의 주인공은 중대한 개인적·상황적·운명적 결점 즉 ‘하마르티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남은 것은 이 양 극단 간의 중간 위치한 인물이다. 즉 덕과 정의에 있어서 월등하지는 않으나 악과 죄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결점에 의해서 불행에 빠지게 된 인물이 그와 같은 인물인데 그는 명망과 번영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주인공의 운명은 불행에서 행복으로가 아니라 반대로 행복에서 불행으로 변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원인은 그의 죄업에 있어서는 안 되고 그의 중대한 결점에 있어야 한다.” 78쪽.

 
체: 비극의 인물에 대해 좀 더 논의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표면적으로 규정한 질서와는 다르게 덕망있어야 할 분들이 은밀하게 무질서를 조장하고 누리기까지 하는 걸 보면 상황적 결함의 피해는 다수의 덕없는 일반인들이 당하고 덕이 높을 것 같은 분들은 개인적 과실을 실컷 누리다가 불리한 상황에서는 은폐하기 급급합니다. 그들을 보면 행복했다가 불행으로 떨어져 버린 비극의 주인공처럼 정의적 요건은 갖췄지만 애련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뭔가 씁쓸합니다.
 
스: 고위 공직자들, 대기업 회장님들, 의원님들 등 대체적으로 덕과 정의에 있어서 일반인들 보다 높은 수준을 요구받는 분들이 오히려 악과 죄업으로 불행에 빠지는 경우가 요즘 언론에 많이 비춰지고 있는 것 같아요.
 
트: 명망과 번영을 누리고 있는 분들인데 어느날 그 민낯이 세상에 드러남에 따라 갑자기 불행의 대상, 조롱꺼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요즘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체: 그들의 불행은 그들을 정의해 온 그 동안의 관례가 깨져서 발생하는 상황 같아요. 덕과 정의, 명망과 번영을 어떻게 누려 왔는지 그 과정을 그 동안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누군가 묻기 시작하면서 불행한 사례들이 드러난 것 같아요.
 
베: 불행의 사례들이 애련과 공포보다는 속시원함과 희화화로 느껴지는 것이 저만의 느낌인지 궁금해 지네요.
 
체: 행복했던 광복의 기쁨을 덕망있고 정의로운 척 했던 그들만 누리다가 너무 오래 누리다보니 무감각해져 실수로 드러난 상황인 듯도 합니다.
 
이: 비극이라는 연극의 대본은 그들이 썼는데 연기는 우리가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마치 마리오네트(줄인형) 인형처럼 말이지요...



 ▲ 체코의 마리오네트 인형


스: 그러게요. 적당히 도덕적이고 정의로우며 행복이라는 이상을 부여잡고 살아간 우리가 정작 비극적이고 애련하게, 그것도 공포속에서 견디어 온 것이라면 주인공은 우리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체: 비극의 대서사시가 지금도 진행중인 상황이군요. 다음 시간에도 계속되는지 기대하며 오늘은 여기서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리: 이
 
참고문헌:
아리스토텔레스, 손명현역(2009), 시학, 고려대학교출판부.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역(2017), 수사학/시학, 도서출판 숲.
Aristoteles, Manfred Fuhrmann(1982), Poetik, Griechisch/Deutsch, Philipp Rec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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