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미투는 졸업하지 않았다
상태바
스쿨미투는 졸업하지 않았다
  • 박교연
  • 승인 2019.05.21 0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칼럼] 박교연/ '페이지터너' 활동가
 


스쿨미투가 시작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동안 학생들이 용기를 내서 외친 목소리는 모두 묻혔다. 인터넷에 스쿨미투 네 글자를 적기만 해도 피해 사례는 우수수 쏟아지는데, 교육부 통계자료를 보면 중징계를 받은 교사는 고작해야 한 명이다. 언어 성폭력을 가한 교사들을 모두 발본색원하여 징계 처리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교육청과 학교는 대책위를 설립하여 학생들과 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줬어야 했다. 스쿨미투의 피해자이자, SNS상에 스쿨미투를 익명으로 중계했던 한 학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졸업까지 참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의 생각이 변하면 학교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리려 했다. 하지만 스쿨미투는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갔다. 교육청과 학교는 사건을 마무리하기에 급급했다. 더욱이 당사자인 학생들은 스쿨미투 이후 경찰조사 결과나 대책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스쿨미투 폭로 학생들은 또 다른 가해자로 학교에서 낙인찍혔다.”

교육청이나 정부 부처의 성평등 교육에 관한 발표나 논의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별다른 게 없다. 여전히 학교단위의 성교육은 연간 15시간을 별도의 강의 없이 각 교과과정 내에서 가르치도록 되어있고, 성폭력 예방교육만 별개로 연간 3시간이 지정되어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과에선 성과 관련된 단원의 교육을 피하고 있으며, 보건과 가정 과목에서만 일부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성교육의 양뿐 아니라 성교육의 질에도 문제가 많다. 현재 성교육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성교육 표준안을 따르고 있는데, 성교육 표준안은 많은 항목에서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피해자 여성이 범죄에 노출되지 않으면 된다”고 말한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은 수능난이도 실패에 대한 유감을 표하며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이후 수능에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평가원 원장은 사임하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스쿨미투 때는 그런 적극적인 대처가 없었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성범죄 저지른 교직원 즉시 징계)’에 대한 논의가 있긴 했지만, 확답도 아니었고 추후 대책발표도 없었다.

이건 수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단지 대입보다 더 중요한 건 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다. 5월 15일 스승의 날에조차 SNS에는 #스쿨미투, #나도_겪었다, #강간문화 등의 해시태그가 쏟아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언론은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며 교권에 대한 우려만 높다. 교권이 추락한 이유에는 분명 해결되지 않은 무수한 교내 성폭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민 소모임 ‘정치하는 엄마들’은 “교육 당국이 스쿨미투 관련 현황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난 1년 동안 전국 90여 곳 학교에서 연달아 일어난 바 있는 스쿨미투를 전수조사했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별로 어떤 성폭력이 이뤄졌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최악의 한 줄’도 투표를 통해 꼽았다.

거기엔 “내가 입술로 인공호흡해줄까?”(경남), “얼굴이 사과 같이 빨개서 따먹고 싶다”(충북), “고년 몸매 이쁘네. 엉덩이도 크네”(광주), “고등학교 가면 성관계를 맺자.”(서울), “내가 열 달 동안 생리 안 하게 해줘?”(서울), “정관수술해서 너희와 성관계해도 임신 안 해, 괜찮아.”(김해), “예쁜 학생이 내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 줄게.”(서울), “화장실 가서 옷 벗고 기다리면 점수 잘 줄게.”(대전)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언행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이렇게 성폭력 수위가 심각한데도 현재 스쿨미투 가해자의 징계 혹은 후속조치에 대해 일반 시민은 알 수 있는 게 없다. 전국 16개 교육청이 대부분의 정보를 ‘비공개’나 ‘정부부존재’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한참 스쿨미투 논란이 뜨거웠을 때 교육청은 분명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서 이와 같은 문제를 다시금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 학생들의 제보에 따르면, 가해 사실이 드러나 학교에서 사라졌던 교사들이 1년이 지나 다시 학교로 돌아오고 있다. 류하경 변호사는 “공공기관의 처분은 모두 공개가 원칙이고 예외가 있을 때만 비공개가 가능한데, 학교 성폭력 가해자는 그 예외 사례가 될 순 없다”고 말했다. 교육청의 정보 비공개처리는 사립 유치원 비리 때와 마찬가지로 결코 학생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교육당국은 가해자에 관한 정보공개는 물론이거니와, 피해학생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후속조치를 빠르게 진행해야한다.

지난 달 4월 26일 금요일 밤 9시, 옛 서울시청 건물 벽에 대형 프로젝터 빔으로 학교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었다. 거기엔 학교 성폭력으로 인해 자퇴한 학생부터 어렸을 적 폭력사실에 아직도 고통 받는 70대 노인의 말까지 담겨있었다. 학교는 졸업했지만 거기서 얻은 상처는 졸업하지 못했고, 수십 년 동안 피해자를 따라 다녔다.

학교는 아이들이 가장 날 것인 상태로 처음 접하게 되는 사회다. 그런 학교에서 얻는 상처는 결코 작지 않고 이후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성교육 수준과 학생인권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가 없다. 안전한 교육, 성 평등한 교육. 그게 그렇게나 힘들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스쿨미투는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졸업하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