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정상에 하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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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 하얀 배
  • 유광식
  • 승인 2019.06.28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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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수도국산 (송현근린공원) / 유광식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앞, 2019ⓒ유광식
 

유년시절에는 어딜 가든지 산 중심으로 주위를 자연스럽게 돌아보았다. 산과 벗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인천에서도 산을 찾게 된다. 동인천역에서 내린 뒤,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찾는 산이라면 자유공원 응봉산 또는 그 건너 월미산이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또 하나의 산이 있다. 동구의 생활사를 담고 있는 산, 수도국산이다. 수도국산을 걸어서 오르는 사람은 대부분 주민들이겠지만, 손 안에 내비게이션을 켜고 곧장 오르면 너른 중·동구 지역을 파노라마 광경으로 바라보며 벅찬 감동을 챙겨갈 수 있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입장권, 2019
 

산 정상에는 배 모양의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이 있어 과거 송현동과 송림동 일대의 생활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척박한 시절 풍경이 오늘날엔 생경한 체험으로 남게 되었다. 그 당시 사방에서 수도국산으로 몰려든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숙연해지기도 한다. 박물관 전시실에 입장할 때 예전에는 배 밑 출입구로 입장을 했었다. 지금은 2층에서 입장해 1층을 돌아보고 다시 1층으로 올라와 퇴장해야 한다. 박물관을 몇 번 가보았지만 나는 기획전시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잠시 착각했다. 안내데스크에서 기획전시실의 위치를 물었건만, 다소 퉁명스러운 응대가 못내 아쉬웠다.

 
달동네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입구, 2019ⓒ김주혜
 

올해 기획전시의 테마는 송현동 이야기로, ‘인천의 마음고향 송현동’展이다. 지난날들의 생활, 산업, 문화의 이야기를 서른 평 정도의 공간에 펼쳐 놓았다. 송현동이 문학적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별 총총 빛나는 수도국산 비탈에서 피어난 꿈들이 얼마나 풍성했겠느냐는 마음이 들었다. 송현동에서 꿈을 듣고, 꿈을 먹으며 우는 새들이 소나무만큼이나 많았을 거란 생각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조용필의 ‘꿈’을 흥얼거렸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 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송현동展 기획전시장 내 파노라마 영상의 한 장면, 2019ⓒ유광식
 

최근 인천에 적수(赤水)가 나타났다. 초기 대응이 미흡했던 것이 지적되었고, 원인 규명에 논란이 크다. 내게도 생활의 적수가 존재한다. 관이 삭아서 그런 건지 온수 방향으로 수도밸브를 돌려서 켜면 잠시 후 적수가 ‘짜잔!’하며 나온다. 금세 맑은 물로 대체되긴 하지만 켤 때마다 그러니 걱정이 된다. 늘 그러려니 하고 지낸 지도 3년째다. 그런데 최근 더한 적수가 인천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이다. 수도국산 수돗물이 펄쩍 뛸 노릇이다.

 
접근을 가로막는 송림초교 주변 어느 주택가 골목, 2019ⓒ유광식

 
바로 옆 송림동 마을에서는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문제가 현재 최대의 적수(敵手)이다. 수도국산 아래를 관통하는 산업도로는 여전히 변명이 통하지 않아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고, 말 타는 어영대장 신정희 동상은 왜 세워뒀을까 싶다. 송림초교 주변은 최근 재개발 철거 중으로, 뿌연 먼지가 전에 지펴 올린 꿈 만큼이나 자욱하다. 공원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싶지만 어디 자본 앞에서 할 말이던가. 차분한 물(수도국산) 아래 이슈만 뜨겁다.

 
수도국산 위에서 내려다 본 송림초교 주변 철거구역, 2019ⓒ유광식
 

수도국산(송현근린공원)엔 커다란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떨어지는 물놀이장 ‘또랑’도 있고 여름엔 족욕을 즐길 수 있다. 산책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가만히 멈춰 서서 도시의 변화를 관찰할 수도 있다. 하얀 배를 움직이는 선장은 휴가를 갔는지, 박물관 선체는 점차 노후화되고 있다. 시장님은 수리 검토를 약속했지만, 언제일지 모르게 물만 담기는 풍선처럼 조금씩 위태로워지고 있다. 가끔 산에 가서 배를 타고, 하늘을 바라보며 새들의 음악소리를 듣고 싶다. 수돗물을 콸콸 쏟아내는 수도국산에 소나무의 푸르름이 배 안에 가득하길 말이다. 

 
송현동 순대골목의 불 밝힌 간판들, 2016ⓒ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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