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염장(鹽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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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염장(鹽醬)
  • 유광식
  • 승인 2019.07.12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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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영종진공원(영종역사관) / 유광식


영종진공원 안에 위치한 영종역사관, 2019ⓒ유광식


나가보았자 인천 땅 안이지만 좀 멀게 가 본다. 월미도, 강화도, 영종도, 교동도, 석모도 정도가 손가락 안에 든다. 어느덧 예전부터 거닐어 보고자 했던 영종도 구읍뱃터 부근에 닿았다. 월미도 선착장에서 차를 여객선(자전거 3,500원, 일반 차량 7,500원)에 실어 건널 수 있기도 한 곳이다. 나는 자동차를 타고 영종대교를 거쳐 남으로 곧장 달려 영종진공원에 도착했다. 

영종진공원에는 4가지 시설 포인트가 자리한다. 영종도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영종역사관(2018년 개관), 공원의 야외무대, 운양호 사건이 조명된 전몰영령추모비와 잘 조성된 휴식 같은 산책길이 그것이다. 영종진은 구읍뱃터 옆 태평암이라는 곳에 자리한 조선의 해군기지였다. 강화도조약의 빌미가 되었던 운양호 사건으로 인해 조선의 군인이 희생당했던 슬픔이 깃든 공원이다. 당시 병영의 모습을 성벽과 태평루 정자가 대신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알 수 있을까 해서 영종역사관에 들렀다. 

 
영종진공원 안 전몰영령추모비, 2019ⓒ유광식
 

영종역사관은 새건물이지만 다소 급하게 지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느낌의 건물이었다. 달라진 입장 풍습인지 자동발매기에서 입장료(성인 1,000원)를 결제했다. 평소의 삐딱한 시선을 뒤로하고 안내에 따라 1층부터 돌아보았다. 1층, 2층은 역사의 공간이었고 3층에서는 기획전시 <소금을 담다>가 연말까지 열리고 있었다. 전시 관람을 통해 영종도의 본 이름이 ‘자연도(紫燕島)’로, 선사유적부터 시작하는 유서 깊은 섬임을 알 수 있었다. 영종도에서 한반도의 역사가 축약되어 진행된 것처럼 지금의 영종도 또한 그 위상은 그대로인 것 같다. 

 

 3층 기획전시실, 2019ⓒ김주혜


2층 전시실, 2019ⓒ유광식

1층 체험전시실, 2019ⓒ김주혜
 

소금생산이 많았던 곳이어서인지 창고에 쌓아놓은 소금처럼 체험시설과 전시가 풍성하다. 아이들은 직접 삽을 들고 수레에 소금을 담아 넣는 체험을 즐기고, 부모님들은 곁에서 찰칵 사진을 찍느라 부산하다. 야외 공간에서는 주말을 맞아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아이들과 부모님, 선생님들이 뒤섞여 논다.

영종역사관 시설의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계단에서 발견했다. 층고는 높고 층계의 폭이 좁으며, 평평하지 않은 마감 상태여서 계단이 위태로워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될 것 아니냐 하겠지만 기초 시설인 계단을 잘 만들어 놓은 곳이야말로 든든한 기억장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서울역사박물관의 중앙로비로 들어서면 곧장 보이는 것이 바로 기다랗고 오르고 싶어지는 계단이다. 

전시를 모두 관람한 후에, 영종진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근래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구읍뱃터 주변의 키다리 호텔들이 수직구조로 약간의 엇박자를 낸다고 생각할 때 쯤, 건너편 북항과 월미도의 수평적 장면에 이내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만다. 외부계단을 조금만 내려가면 물 빠진 갯벌에 나가볼 수도 있다. 씨사이드파크의 레일바이크 정류장 쪽으로 걷고 있는데, 해변 길을 따라 시원한 바람결에 남단 갯벌과 인천대교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갯벌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빠와 아들의 모습은 퍽 정감 있어 보였다. 

 
영종역사관 앞 갯벌진입로, 2019ⓒ유광식

영종역사관 옆 레일바이크 매표소 앞, 2019ⓒ김주혜
 

영종진공원은 다른 공원과는 조금 다르게 기존의 나무를 적절히 활용하여 산책길을 조성했다. 오래된 숲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나무의 생김새를 보면 자유로움의 정서가 편안하게 다가오니 말이다. 기회가 닿으면 벤치에 앉아 영종도에 전해지는 많은 설화를 통해 섬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 햇빛, 물, 소금, 땅 등의 생각에 사로잡힌 와중에 그 옛날 바위 위에 올라서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어둠을 쪼개어 응시해야만 했을 장병의 모습이 그려졌다. 지금의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활주로 옆에 서 있는 ‘장군바위’가 떠오른 것이다. 근방의 지대가 높아지면서 습지 형태로 변해가고 있어 장군의 기세가 위태롭다. 보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영종진공원 야외무대, 2019ⓒ유광식


영종도 하면 대부분 공항과 을왕리 해수욕장만 생각하게 되지만 이제는 영종역사관에 들러 역사를 이해한 후 공원을 산책하며 영종도의 숨은 결을 음미해봐도 좋을 것이다. 다소 땡볕이라 여름보다는 선선한 가을에 여운이 잔잔하게 남을 것도 같다. 마치 소금과 함께 하는 ‘기억의 염장’ 마냥 말이다.  

 
영종씨사이드파크(바다옆공원) 앞 남단 갯벌과 인천대교, 2017ⓒ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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