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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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스
  • 정민나
  • 승인 2019.08.2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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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키 스 / 조정인
 

 


키   스

                                  - 조정인

 
그 때, 나는 황홀이라는 집 한 채였다
 
램프를 들어 붉은 반점이 어룽거리는 문장을 비췄다 인화성이 강한 두 개의 연료통이 엎어지고 하나의 기술이 탄생했다 두 점, 퍼들대는 얼룩은 일치된 의지로 서로에게 스미었다 무풍지대에서도 불꽃은 기류를 탔다 불꽃은 불꽃을 집어삼키며 합체됐다 불꽃 형상을 한 혀에 관한 속설이 꿈속에서 이루어졌다 한 줄, 문장이 타올랐다 나는 심연처럼 깊게 타르처럼 고요하게 끓을 것이다
 



현재 인천에 거주하면서 시를 쓰는 조정인 시인은 2019년 6월, 《사과 얼마예요》를 상재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어떤 사물이나 장면을 보고도 전율할 수 있는 사람은 원초적 순결함을 지닌 사람이다. 그런 시인을 읽을 줄 아는 독자는 ‘키스’의 황홀한 순간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이 시에서 키워드는 ‘키스’와 ‘독서’이다. 시인은 ‘키스’와 ‘독서’를 모두 인화성이 강한 두 개의 연료통으로 보고 있다. 연료통이 엎어지면 대개 불꽃으로 화르르 타버린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허무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 탄생하는 절묘한 기술에 대해 말한다. 시인은 “퍼들대는 두 얼룩이 서로에게 스”며 “무풍지대에도 기류를 타는 불꽃”을 감지한다. ‘키스’와 ‘독서’라는 상이한 두 개의 사실적 경험 세계에서 심금心琴의 교류는 시작된다. 시인은 그것을 문맥의 이중화로 풀어 놓는다.
 
그리하여 ‘키스’와 ‘독서’의 교집합은 ‘황홀’이다. ‘키스’란 상대방의 입에 자기 입을 맞추며 전율하는 동작이다. ‘독서’ 또한 작가가 써 놓은 문맥을 따라가며 감정이입하거나 공감을 넘어 감동을 느끼는 행위이다. 일상적 언어를 벌여 그 벌어진 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시인의 이러한 행위는 대상에 대한 자세한 관찰과 활달한 상상에서 비롯된다.
 
20세기 스페인의 최고 시인이었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pederico Garcia Lorca(1898~1936)는 “예술 작품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련되고 잘 다듬어진 기법 뿐 아니라 영감이라는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불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해독할 수 없으나 미지의 실체에 대한 직관적 파악은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무지를 정복하는 일이 된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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