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과 리얼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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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과 리얼 아이돌
  • 박교연
  • 승인 2019.09.03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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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8월 27일 선미는 신곡 날라리를 발표했다. 가학적인 이미지로 점철된 뮤직비디오는 시작부터 선미를 캐리어 안에 가둬둔다. 선미는 캐리어에서 기어 나오면서 금발 머리를 비비 꼬며 노래를 부른다. 선미가 본격적으로 안무를 추고 노래를 부를 때는 선미와 비슷한 금발의 마네킹이 뒤에 빼곡히 서있다. 이는 마치 ‘리얼돌’을 연상시킨다. 인기를 얻은 여성가수는 당당해지기보다 이상하게 가학적이고 사물화가 된다. 아이유가 그랬고 이번에는 선미가 그랬다.
 
아이유는 스물셋 뮤직비디오에서 젖병을 물고, 옷에 우유를 뿌리고, 영화 로리타의 장면을 그대로 따라했다. 앨범 곳곳에는 “눈 깜빡하면 어른이 될 거야. 지금 내 모습을 헤쳐도 좋아. 너랑 나랑은 지금은 안 되지. 시계를 더 돌리고 싶어.”라는 가사가 대놓고 쓰여 있다. 아이유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결코 소아 성도착증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이런 행보는 여성인권, 특히 아동청소년 인권에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포르노그래피가 성범죄를 줄여줄 거라는 환상과 반대로 포르노그래피는 성범죄를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이건 여성을 대상화하는 대중문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P.J 라이트는 2014년까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포르노와 성폭력 사이의 관계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연구를 메타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메타분석 결과에 따르면 포르노는 폭력에 대한 지지적인 태도를 길러준다고 한다. 폭력, 강간신화의 수용성, 성희롱 등이 바로 그 예다. 하지만 포르노 시청의 가장 큰 해악은 다른 것보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시키는 것에 있다. 성적 대상화는 여성을 온전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대상화된 여성은 섭식 장애, 우울증 등을 포함한 부정적인 심리를 겪으며 직장 내 성과와 직위 등 사회적 성취에서도 불공평을 경험하게 된다. 주변인이 여성을 대상화한 미디어 콘텐츠에 자주 노출될수록 그런 경향은 더 커졌고, 남녀를 불문하고 대상화된 여성에게 공감하는 정도가 낮았다. 그러므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건 전체 여성인권에 많은 영향을 준다.
 
벨 훅스는 비욘세를 거론하며 “비욘세는 테러리스트이자 안티페미니스트”라며 “자신을 성적으로 표현하는 상업화는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예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예란 광운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외면적으로는 성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해 보이지만 실상은 젊은 여성성이 더욱 견고하게 규제돼 왔다”며 ‘걸그룹 신드롬’을 비판했다. 그는 “10대 청소년은 걸그룹의 음악, 춤, 패션 스타일을 따라하고 30~40대의 삼촌 팬덤은 걸그룹과 공모적 가족관계를 맺는다. 가부장적 관계 안에서 남성은 소녀 이미지 소비를 정당화하고, 10대 청소년은 걸그룹을 본받아 자기 성애화를 실천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은 지난 6월 대법원이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이후 더욱 의미가 커졌다.
 
레드벨벳은 Dumb Dumb 뮤직비디오에서 상자 속에 버려진 인형처럼 구겨 넣어진다. 매끈한 도자기인형처럼 분장을 하고 부자연스럽게 팔다리를 천천히 움직인다. 아이돌은 인형을 따라하고 성적도구로 사용되는 인형은 사람 같다. 이제 리얼돌을 구매한 남성은 인기가수의 이미지를 완벽히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집밖으로 나오면 길거리에는 인기가수를 따라한 여성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집에 두고 온 인형을 연상시킨다. 이쯤 되면 리얼돌과 리얼 아이돌, 그리고 리얼 여성이 구분이 안 가는 수준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은 리얼돌과 리얼 아이돌의 상관구조에 완벽하게 적용된다.
 
대중매체가 시청자에게 성적 대상화를 각인시키고, 자본주의가 그 실체를 리얼돌로 만들어 배급하고 나면 실존하는 여성이 성적 대상화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대법원은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왜곡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는 여성을 조금치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다. 이미 19세기 제1물결 페미니스트 엘리자베스 울슨홈 엘미, 프랜시스 스위니 등의 사상가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순전히 성적인 기능으로만 축소시킨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성은 여전히 성적인 기능으로 소비되고 있다. 단언컨대 여자아이는 그 누구도 리얼돌이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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