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철새가 퍼뜨리지 않아
상태바
조류독감, 철새가 퍼뜨리지 않아
  • 박병상
  • 승인 2011.01.06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구제역이 초래한 국가 비상사태가 누그러지기도 전에 조류독감이 발생했다. 그것도 반경 3킬로미터 안전반경 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와 같은 가금류를 일제히 살처분해야 하는 고병원성이고 철새들이 전파했다는 전문가의 검토가 어김없이 있었던 모양이다. 철새라. 23.5도 기운 지구가 하루 한 번 자전하고 해마다 한 차례 태양을 도는 한, 시베리아에 흩어져 사는 새들은 봄과 가을로 우리나라를 징검다리처럼 들렸다 남쪽 따뜻한 지역으로 떠나거나 갯벌이 드넓은 우리나라 서해안이나 내륙의 넓은 호수로 이른 겨울마다 무리 지어 내려앉는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철새가 왜 요즘 조류독감을 전파하는 걸까.

살처분. 참 끔찍한 의미를 담은 단어다. 죽인다는 뜻이 아닌가.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의 전파를 막는 방법이 살처분뿐인지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합리적 판단은 어렵지만 살아남은 가축으로 질병을 이겨낼 품종을 찾아낼 수는 없는 것일까. 살처분을 원칙대로 안락사시킨 후 실시하는지 여부는 나중에 따지더라도, 안전반경으로 정한 면적이 지나치게 넓은 건 아닐까. 가축도 분명한 생명인데.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은 전에 없었을까. 불과 2000년 이전을 생각해보자. 과로나 사고로 현장 공무원이 죽어갈 정도로 수많은 가축을 빠른 시간에 죽이는 처분이 자행되었던 기억이 도무지 없다. 바이러스가 전보다 더욱 무서워졌다지만 사람을 공격하는 독감은 분명히 예전에도 있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일 텐데, 새를 공격하는 독감 바이러스가 왜 요즘 극성이고, 사람은 조류독감이 발생한 양계장을 중심으로 저병원성은 반경 300미터, 고병원성은 그 10배인 3킬로미터의 안전반경을 정해 그 안에 있는 멀쩡한 닭과 오리와 메추리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는 걸까.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더라도 바이러스의 전파력은 물론 무섭다. 그렇다고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저병원성은 300미터, 고병원성은 3킬로미터까지 저절로 퍼지는 근거는 확보하고 있는 걸까. 독감에 걸리면 닭과 오리와 메추리들은 모두 맥없이 죽는 걸까.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보니 감염된 양계장이 처참하기는 했다. 비닐하우스로 만든 양계장 안의 닭들 거개가 죽어 널브러진 건 확실하다. 그렇다고 모두 죽은 건 아니었다. 사체들 사이를 겅중겅중 뛰며 카메라와 기자를 피하는 닭들도 적지 않았다. 그 닭들은 어쩌면 조류독감을 이겨낼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건만, 안전반경 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들을 불문곡직 모조리 죽인다. 어차피 식탁에 오를 운명이므로 생존 기간을 조금 앞당겼을 따름인가. 비록 어두컴컴하지만 불이 들어오면 사료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고, 비좁아 부대낄지언정 노상 따뜻한 축사 안에서 조상이 물려준 천명을 절대 누릴 수 없는 닭과 오리와 메추리는 존엄성 있는 생명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살코기를 빨리 키우거나 알을 많이 낳는 기계에 불과하다.

조류독감을 철새가 옮겼다는 전문가의 주장은 맞을 텐데, 조류독감의 책임을 철새에게 물을 수 없다. 철새에게 고의성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식구나 친구나 동료가 집과 학교와 직장에 나와 콜록거린다고 모두 독감에 걸리는 게 아니듯, 옮기고 싶어도 받지 않으면 옮길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조류독감이 이번에는 왜 익산의 닭과 천안의 오리를 공격하게 된 걸까. 두 곳이 다른 양계장에 비교해 시설이 낡았거나 관리가 부주의한 건 아닐 것이다. 운이 나빴을지 모르는데, 그 운 때문에 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는 싹 죽고 말았다. 어쩌면 다른 지역에도 창궐할지 모른다. 철새가 서해안 일대를 여전히 날아다니기 때문이 아니다. 전국 양계장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는 철새가 전하는 바이러스를 받을 준비가 언제나 돼 있는 탓이다. 질병을 이겨낼 면역력이 전에 없이 약해졌다.

온갖 철새들이 뒤죽박죽 내려앉은 서해안 일대의 습지는 예방백신을 맞지 않았어도 처참한 양계장과 달리 평온하다. 땅을 파헤치며 마당을 돌아다니던 닭들도 조류독감에 걸리곤 했을 텐데, 떼로 죽는 일은 없었다. 이미 허약해진 사람이 이따금 독감으로 사망하듯 조류독감에 걸린 닭도 꾸벅꾸벅 졸다 드물게 죽었겠지만 대부분 이내 건강을 찾았다. 훨씬 많은 닭들은 아예 감염되지 않았을 것이다. 철새들도 마찬가지일 게다.. 조류독감에 감염돼 기력을 잃은 철새는 머나먼 길을 날아오는 도중에 떨어졌을 테고, 날아온 철새들은 갯벌이나 호수에 내려앉아 이것저것 먹으며 배설하겠지. 그러다 질병도 나눌 테지만 대부분 견뎌내어 봄에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극히 일부가 죽었고, 그 사체를 수거한 전문가가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분리했을 것이다.

종류 별로 무리지어 앉는 철새들은 드넓은 갯벌에 퍼져 있으므로 서로 질병을 나눌 기회가 적을 테지만 지금은 어떤가. 갯벌이란 갯벌을 자본의 탐욕을 위해 경쟁적으로 매립하면서 생존을 위해 우리나라 서해안을 찾는 철새들은 내려앉을 곳을 잃었다. 먹이를 구하던 갯벌은 비좁아졌고 근처 호수는 바글거린다. 수천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날아 기진맥진한 철새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비좁은 습지에서 밀집된 상태에서 호흡하고 배설하면서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철새가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닭과 오리와 메추리에게 전할 기회가 많아진 셈인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사람에게 있다.

갯벌이 온전했을 때, 마당에서 키운 닭들은 서로 쪼면서 서열을 정하고 흙을 파 벌레들을 잡아먹었으며 마음에 닿는 암수가 자유롭게 짝짓기를 해왔다. 닭이 가축으로 길들어진 이후 수천 년 동안 그래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닭은 셋으로 나눌 수 있다. 부화되자마자 쓰레기통에 던져져 질실해 죽는 수평아리는 대상에 끼지 못하니 빼고, 죽어라고 무정란만 낳는 많은 암탉과 유정란을 낳는 암탉이 적은 수로 있고 유정란을 죽어라고 낳는 암탉과 죽어라고 짝짓기만 하는 선택받은 극히 일부의 수탉이 있다. 그리고 고기용으로 부화기에서 부화돼 도축 때까지 죽어라고 몸집을 키워야 하는 병아리가 나머지 대부분이다. 통닭용과 삼계탕용은 엄격하게 분리돼 무지막지하게 사육된다. 통닭용은 4주 만에 죽어야 하는 삼계탕용보다 2주 정도 더 살지만 아직 병아리에 불과하다. 조그맣던 병아리가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사람으로 따지면 생후 1년 만에 몸무게가 200킬로그램에 달할 정도다. 가슴살이 하도 빨리 비대해져 제대로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갓 부화한 병아리들이 도축장에 갈 시간이 되면 양계장은 커다란 병아리들로 가득 차 사람이 발 딛을 틈도 없어 보이는데, 그 병아리들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유전자가 거의 같다. 사람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도록 극단적으로 품종을 개량한 탓에 조상이 가진 유전적 다양성을 거의 잃은 것이다. 그 결과 환경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질병을 이겨낼 면역이 아주 취약해졌다. 따라서 외부와 차단된 축사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맞추고, 사료, 항생제, 호르몬과 같은 사육 조건을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 태풍으로 문짝이 떨어져나가거나 눈으로 지붕이 무너지고 우박으로 뚫리는 날이면 조류독감에 감염된 양계장 이상 처참하게 된다.

사람들의 먹성을 만족시킬 정도로 빨라야 하는 닭고기 가공은 기계가 맡았다. 하루에 100만 마리를 처리할 수 있는 닭고기 가공공장의 정교한 기계는 오차 범위가 좁다. 들쭉날쭉한 닭 때문에 값비싼 기계를 고장나게 만든 양계장은 고객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대한민국의 삼계탕 뚝배기는 크기가 한결같다. 뚝배기에 들어가는 닭이 제각각이라면 같은 돈을 내는 손님들이 달가워할 리 없다. 그 식당은 경쟁에서 쳐지고 말 것이다. 통닭 한 마리에 5천원이든 아니든, 겨울철 아파트 출입구를 차지하는 장작구이 장사가 두 마리에 만 원을 받든 아니든, 청와대에서 2주일마다 통닭을 주문해 먹든 아니든, 쉽사리 조류독감에 걸리게 품종이 개량된 전국의 닭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살처분될 운명을 지니게 된 것이다. 오리도 메추리도, 구제역 때문에 죽어나가는 돼지와 소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닭고기 제조공장을 가진 하림이 이번 청주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으로 큰 소실을 입을 것으로 염려하는 언론은 계란이나 닭고기를 익혀 먹으면 사람에게 조류독감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닭을 사육하던 사람에게 조류독감이 전파된 사례는 많다. 1997년 홍콩에서 조류독감이 사람에게 감염된 이래 최근까지 300여 명이 조류독감으로 사망했다. 사람의 독감으로 사망한 수보다 훨씬 적지만, 안전반경 이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는 살처분될 것이다. 아니 생매장될 것이다. 서둘러야 하므로 안락사시킨 뒤 매몰하는 일은 성가시게 여길 것이다. 덩치가 큰 소는 주사로 살처분한 뒤 매립하고 돼지는 굴삭기 삽날로 살처분한 뒤 매립하지만, 자루에 구겨지듯 담기는 닭과 오리와 메추리는 생매장될 가능성이 높다. 청정지역이라는 지위를 어서 회복해야 손해를 벌충할 정도로 많은 닭과 오리와 메추리와 돼지와 소를 팔아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그런 축산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 조류독감과 살처분, 구제역과 살처분은 반복될 것이다. 살처분이 남발되는 만큼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창궐할 토양은 만연해진다.

어떻게 해야 조류독감이 줄어들까. 정답은 뻔하다. 지금처럼 계란과 살코기를 먹어치우는 한 줄어들 리 없다. 조류독감을 알지 못했던 예전의 식습관으로 돌아가서 닭과 오리와 메추리의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러자면 거대한 양계장에서 무지막지하게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은 인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살처분도 줄어들 것이고 철새를 원망하는 시선도 줄어들겠지. 석유를 가공한 비료와 농약으로 재배한 수입 옥수수도 줄어드니 지구온난화도 줄고 석유위기도 뒤로 미룰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탐욕이 줄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것이지만 정답을 잘 아는 사람은 오답을 피하려들지 않으며 문제를 증폭시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