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평화의 도시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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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을 평화의 도시로 만들자"
  • 박영일
  • 승인 2011.01.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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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칼럼] 박영일 교수 /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등 일촉즉발의 전쟁분위기에 동북아 중심도시로 비약하려던 인천의 꿈이 짓밟히고 있다.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가 갈등과 증오의 대결구도로 반전되면서 평화를 향해 항진하던 인천 앞바다가 다시 대결과 죽음의 바다로 역류하고 있다. 이는 직접적으로 전쟁 불사의 결의로 세습적 전체주의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북쪽 당국의 무모한 도발행위에서 비롯됐다. 동시에 북한붕괴론에 기대어 남북관계를 파탄시킨 이명박 정부의 무능과 무책도 근본요인이다. 이제 남북대결의 직접 피해자인 280만 인천시민이 나서야 할 때다. 우리 삶터를 지켜내고 앞바다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되돌려 우리 민족을 파멸에서 구해내야 한다. 그 운동의 첫걸음으로 '평화의 도시, 인천' 만들기를 제창한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여 수도권의 관문으로 출범한 인천은 영광과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면서 거대한 지역공동체로 성장하였다. 해방 전에는 비록 침략 외세가 주도하였지만, 동북아시아 정치경제활동의 주된 무대였다. 한반도의 남북, 중국, 일본을 잇는 물류, 해운의 중심도시였다. 그러나 해방 이후 냉전체제 하에서 남북분단과 중국 대륙과의 교류 단절로 해양 진출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남북대결의 최전방에서 해안초소가 되고 말았다.   

서해 바다가 얼어붙고 대륙과 연계 해로를 잃으면서 인천은 무역항으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철조망으로 바다와 격리되어 인천 시민의 뇌리에서 바다가 지워졌다. 대신에 산업화과정에서 서울의 위성산업도시로 전락했다. 자연자원이 희소하여 기초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할 요소부존상태에서 인천은 방대한 수도권 시장을 겨냥한 임해공업단지로 지정되었다. 바다를 메우고 땅을 파헤쳐 산업도로를 뚫고 공장을 짓고 주택단지를 조성하였다.   

그 결과 인천은 삶의 질을 도외시하고 양적 확대에만 치중해온 한국경제의 성장모순이 집약된 도시의 전형이 되었다. 외연적 확장만이 있었고 시민이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삶의 터전으로서 환경을 정비하지 못했다. 각종 통계가 뒷받침하고 있다. 인천은 전국 주요도시 중에서 경제지표상으로는 최상위에 속하지만, 생활조건이나 교육,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는 최하위권이다. 경제활동은 상대적으로 활발하다. 그러나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생활환경이나 문화·여가활동, 사회·정치참여기회, 자연경관 등 생활·문화적 매력은 영점에 가깝다. 그래서 인천은 밥벌이에는 좋지만 사람답게 살 곳은 아니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평판을 얻었다. 시민이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미련 없이 인천을 떠났다 

바로 이런 인천의 기형적 발전을 규정해온 국내외적 조건이 1990년대 이후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는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남북 대결이 화해·협력구도로 전환했다. 대내적으로 냉전주도세력의 영향력이 약화되어 민주화가 진전되고 지방자치가 실시되었다. 서해가 평화의 바다로 되살아나고 해양진출의 기회가 회복되면서 산업화 과정에서 확충된 공업기반 위에 인천항이 확장되고 인천공항이 들어섰다. 동북아의 상품, 사람, 돈, 기술, 정보가 인천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천의 모습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베드타운에서 도시기능을 균형 있게 갖춘 자족적인 국제도시로 역동적인 발전을 개시했다. 경제구조가 고도화·다양화되었다. 산업구조가 저부가가치 소재산업에서 지식·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 전환했다. 숙련노동·전문기술인력에 대한 일자리가 늘어나고 지역의 중소협력업체도 번성하기 시작했다. 국제무역, 물류 기능이 확충되면서 해운시장이 형성되고 유통·금융·각종 비즈니스 서비스산업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도시기능의 집적지로서 도심상권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생활환경도 크게 개선되고 있다. 교육, 주택, 교통 등 생활관련 공공재 공급이 확충되고 있다. 바다를 가로막았던 철조망이 철거되고 연안도서와 임해경관이 시민이 일상적인 삶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인천시민이 인천에 애착과 긍지를 지니게 되었다. 황량한 타향 공단에서 꿈과 사랑의 보금자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시민활동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인천시민으로서 시민의식, 주인의식, 애향심이 들불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동북아의 평화와 남북의 화해·협력이 인천 도시발전의 필수조건임을 증명한다. 동북아에 평화와 협력의 시대가 전개되지 않고서는 인천이 높은 소득기회, 쾌적한 생활·문화 환경, 시민의 투철한 주인의식을 갖춘 자유, 정의, 평화, 복지가 넘치는 도시로 발전할 수 없음을 생생하게 웅변하는 것이다. 

1991년에 서명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통상“‘남북기본합의서”), 분단 반세기만인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과 그 후 전개된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인천이 민족의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우리민족대회가 열렸고 2005년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북쪽 산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한 민족 화합의 한마당이 되었다. 더욱이 2007년 남북정상이 합의한 “서해안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남북을 잇는 한반도의 심장으로서 인천의 위치를 재확인하였다. 

이로써 인천의 도시발전에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전쟁의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평화의 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남북대결이 심화되고 전쟁의 그림자가 서리고 있다. 인천의 꿈이 사라지고 있다. 대신에 60년 전 전쟁 참화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제 인천 시민이 일어나야 할 때다. 우리의 삶터를 지키고 남북협력과 민족통일, 동북아의 평화와 공영을 견인하기 위해. 인천을 '평화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280만 인천시민의 지혜와 역량을 모으자. 전쟁을 막고 평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천시민이 '지금 여기'에서 하야 할 역사적 사명이고 밝은 미래를 향한 비전이다. 


지난 11월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으로 섬이 불타고 있다.
이 사건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2010년 주요 사건으로 부각됐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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