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킴과 버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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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킴과 버림의 의미
  • 유은하
  • 승인 2011.04.11 1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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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유은하 / 화도마리공부방


공부방(지역아동센터)을 만들고 일한 지 어느덧 만 10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언젠가 아들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엄마, 매일 힘들다고 하면서 왜 공부방 일을 해?‘
“좋아서 하지.”
“왜 좋아?”
“내가 일을 하니까 네가 공부를 하고 먹는 거지. 네 친구들과 동생들이 공부방에 와서 쉬고 놀고 공부하고 먹지 않느냐?”
“그게 좋은 거야?‘
“아무렴 좋고 말고.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단다. 공부방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일을 하는 즐거움, 꿈을 갖는 즐거움을 얻게 한단다.”

10년 동안 아이들과 부모들과 실랑이를 하고 이웃과 지역사회와 실랑이를 벌인 적이 많았다. 수많은 사안을 놓고 결정해야 할 일도 참으로 많았다. 그럴 때마다 어떤 것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고민했다.

2010년도에는 지역아동센터 평가문제를 놓고 전국 모든 지역아동센터가 보건복지부와 씨름을 벌였다. ‘평가’를 받는다는 것 자체도 진단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서열을 정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해갈 수는 없었다.

‘평가’를 통해서 지역아동센터의 현 주소를 진단하고 앞으로 발전해야 할 방향도 정할 수 있는 장점도 있기에 일단 ‘평가’는 받아들일 수도 있다. 문제는 ‘평가’를 통해서 점수가 낮은 지역아동센터는 운영비를 감액하겠다는 데 있었다.

지역아동센터 월 운영비 300만원은 두 사람의 인건비와 프로그램비, 사무비, 관리비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이 금액을 절반 정도로 감액한다는 것은 지역아동센터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운영비와 평가를 연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전국 지역아동센터들의 공통된 입장이었기에 페널티를 적용하는 평가는 거부하겠다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초기에 전국 지역아동센터들의 응집된 힘은 보건복지부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현장에서부터 흔들리면서 결국 ‘평가’를 수용하였고 ‘운영비 현실화’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물론 평가 거부운동을 통해 상대평가에 대해서 절대 평가로의 전환, 평가지표 및 평가 절차 수정 등 지역아동센터에서 요구했던 사항들이 일부 받아들여지는 성과를 가져온 건 분명하다.

그러나 운영비 페널티 적용 여부에 대한 지침이 철회되지 않았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항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제가 있다면 운영비를 삭감하기보다 조언을 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도해주고 발전해갈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다 같이 상생하고 어울리는 길이다.

인천은 평가와 운영비연계를 통한 서열화를 버리고 어울림을 위한 상생을 지키기로 하였다.

전국이 운영비 현실화로 방향을 전환했음에도 오로지 인천지역만 끝까지 남아서 올바른 평가운동을 위해 운영비 페널티적용에 대한 지침을 철회하라는 싸움을 지속했다. 결과는 인천지역만 운영비 50% 삭감이라는 보건복지부의 결정이 내려졌다. 예산을 집행하는 권력을 가진 세력에게 ‘감히 맞선’ 데 대한 결정이다. 참으로 오만한 결정이었다.
 
정치(政治)는 곧 ‘바른 다스림’이다. '바른 다스림'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바른 다스림을 위해서는 ‘견해의 방향이나 행동지침의 바름’과 함께 '실현하는 과정에서의 올바름'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과연 누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지 견해와 지침의 바름을 가름해볼 필요가 있다. 과정에서의 올바름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핵심 사항 중 하나가 어울림(和)이다. 어울림은 '홀로 옳음'(獨善)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노선이 바뀌고 정책도 바뀌는 걸 무수히 보아왔다. 여전히 수정되지 않은 문제는 다른 건 옳지 않고 홀로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조화를 이루려는 어울림은 사라지고 적대적 관계와 적대적 저항만이 존재할 뿐인데 권력을 가진 세력은 이것을 정말 모를까? 

인천지역이 이 싸움을 하면서 보건복지부가 바람직하지 못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예상을 했었다. 인천지역의 지역아동센터만 2011년에는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이 전개될 것이라는 것까지도 예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서열화에 반대하는 우리의 싸움이 옳기 때문이었다. 

순간순간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을 예측하면서 ‘평가를 수용하고 운영비 현실화로 돌아서자고 할까’ 하는 갈등도 있었다. 전국은 돌아섰는데 인천만 이 싸움을 하는 속사정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 사회적인 이유도 있다.

내가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참여한 것은 서열화에 속박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이들과 꿈을 꾸는 우리만은 순위를 정하지 말고 다 같이 상생하는 풍토를 만들고 싶어서이다. 지금의 서열화는 복지부 지침이 정해지면 그대로 따라야 하고 현장의 고충을 담지 않아도 예산을 주는 곳이기에 눈치를 보며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살기 싫다.

지킴과 버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

돈을 지키기 위해 명예를 버려야 할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버려야 할 까.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남의 것은 모두 버려야 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늘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잣대로 삼아 지키고 버려야 하나? 그 잣대가 바로 어울림과 하나됨이라고 믿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물 사이, 사람과 하늘 사이, 그 사이에서 어울림을 찾고 하나됨을 이루는 것은 지킴과 버림의 영원한 잣대로 된다.

우리 삶의 양식인 자본주의는 어울림이나 하나됨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환경운동을 하는 이들도 사람과 자연사이의 어울림을 찾아 그것을 예로 드러내는 것이다. 인권운동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울림을 찾아 그것을 예로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복지운동을 하는 이들도 어울림과 하나됨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꿈꾸고 만들기 때문이다.

아들이 또 물었다.

“엄마 올해 더 힘들다며 그래도 이 일을 할 거야?”
“그럼. 공부방은 이제 내 꿈이고, 현실이고 내 미래란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꿈을,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잖아. 그럴수록 가슴 밑바닥에서 열정과 용기가 더 일어나는 걸. 엄마는 50이 넘어서도 꿈을 꾼다. 60이 되어서도 70이 되어서도 여전히 꿈을 꾸고 이루어 나갈 거야.”

사람들은 자주 부딪친다.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자주 있다. 모처럼 만난 사이가 원수로 되기도 한다. 참으로 눈물겹다.

평가거부운동을 하면서 평가를 받은 곳도 평가를 받지 않은 곳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자신의 주장이 진리를 담았고 객관타당성이 있다면서 싸우는 듯도 하다. 하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주장하는 ‘진리’는 빌미에 지나지 않고 제 속에 머물러 있던 다툼의 마음이 튀어나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뒤틀리게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갈라섬의 병을 앓게 된다. 상처를 받아 갈라서고만 내 벗 동주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 갈라섬의 상처를 치유하자. 치열하면서도 조용하게 하자. 우리는 네가 꼭 필요하다. 우리들 마음에서 하나됨의 노래가 울릴 수 있을 때까지. 서로가 서로를 즐겨 아끼자. 인천의 지역아동센터 모든 선생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다시 깃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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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2011-04-15 00:24:04
복지부의 평가가 예산삭감이라는 결정에 한숨이 나오네요. 사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과 차상위계층 아이들은 학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고학년이 될수록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정부나 지자체는 무얼 바라고 ,무얼 계획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부디 힘내시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사랑물 2011-04-11 11:35:47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선생님들의 사랑이 눈물겹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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