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년 윤기가 자르르~, 경인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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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년 윤기가 자르르~, 경인고속도로
  • 유광식
  • 승인 2019.12.2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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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20) 서구 구간 - 유광식 /사진작가

 

미추홀구 용현동 인천IC 부근의 경인선 종점 표지석, 2019ⓒ김주혜
미추홀구 용현동 인천IC 부근의 경인선 종점 표지석, 2019ⓒ김주혜

집 밖으로 나서자마자 길 따라 하루를 지낸다. ‘동선이라는 배를 타고 파도를 즐기는 하루를 말이다. 인천에서 지내려면 큰길 하나를 지나치지 않을 수 없다. 긴 시간 동안 인천의 산업과 생활, 관광의 통로 역할을 맡아 온 경인고속국도가 바로 그것인데, 19681221일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로 개통했으니 쉼 없이 달려 온 지도 50년이 넘었다. 현재 시속 70가 상한인 이 도로는 일반도로화 사업에 따라 꾸준히 감속이 진행 중이다.

 

석남제1고가 위에서 서울 방향으로 바라본 경인고속도로, 2018ⓒ유광식
석남제1고가 위에서 서울 방향으로 바라본 경인고속도로, 2018ⓒ유광식
경인고속도로 옆으로 자리한 석남2동 생활 구역, 2017ⓒ유광식
경인고속도로 옆으로 자리한 석남2동 생활 구역, 2017ⓒ유광식

지금은 남으로 북으로 서울과 인천, 수도권을 연결하는 도로가 많아졌지만, 과거엔 경인고속도로가 철도를 제외하고는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주요한 길이었다. 이 길을 오갔던 인천 사람들의 각별한 애정 또한 존재하고 말이다. 서구 구간을 남북으로 가르는 경인고속도로는 양옆으로 보도육교가 다수 설치되어 있다. 어렸을 적에는 도시에 육교가 너무 많아서 싫었는데, 이제는 육교가 사라져 가는 추세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서구생활의 시작과 끝은 육교가 담당할 정도로 나는 육교를 자주 이용한다. 육교는 보행자와 배달 오토바이의 실크로드 같은 역할이다. 육교에는 간혹 광고가 붙기도 한다. 광고는 각종 TV·라디오·SNS 등과 비교했을 때 그 종류는 적지만 사람들에게 각인이 잘 되는 것 같다. 경인고속도로의 양옆으로는 고속도로의 빠른 속도에서 빗겨 난 주택들이 포근함을 머금은 채로 자리한다. 최근 부평에서 넘어오는 7호선 공사의 영향으로 주택가 안쪽에는 도심형 신축아파트가 빈번하게 지어지고 있다. 아파트 공사로 인해 철거 예정인 도로 방음벽보다도 높은 벽이 속속 들어서는데, 어찌 된 일인지 도로는 말이 없다.

 

서인천IC 보도육교에서 천마산 방향으로 바라봄, 2019ⓒ유광식
서인천IC 보도육교에서 천마산 방향으로 바라봄, 2019ⓒ유광식
거북시장보도육교를 넘어가는 청소년들(캐노피가 설치된 보도육교), 2019ⓒ유광식
거북시장보도육교를 넘어가는 청소년들(캐노피가 설치된 보도육교), 2019ⓒ유광식

경인고속도로 아래에는 3년 전 개통한 인천지하철 2호선이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철도와 고속도로의 동거는 외부 사양으로 말하자면 영종대교와 유사한 모습이다. 경인고속도로를 달리면 빠른 속도의 고속도로와는 별개로 느린 삶의 호흡을 지닌 거북이마을을 넘은 뒤, 공장지대와 대학교를 흘깃 지나쳐 인천항 종점에 이르게 된다. 경인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숱한 삶의 구성원들이 동서로 움직이고 남북으로 오가며 한 시대를 직조해낸 셈이다. 자동차 소리에 묻어두어야 했던 삶의 힘겨움을 모두 말할 수야 없겠지만 윤택한 생활이 된 배경에서 경인선의 반지르르한 도로가 한몫을 해낸 것도 같다. 도로는 사실 모양새도 그렇지만 소화기 계통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는 꽉 막힌 도로라는 오명도 있고 통행료 논란이 자칫 자동차 소리 못지않은 소음이다.

 

가좌역 앞 오래된 공장식당과 고속도로 방음벽, 2019ⓒ유광식
가좌역 앞 오래된 공장식당과 고속도로 방음벽, 2019ⓒ유광식
석남체육공원 보도육교 위에서 인천항 방면으로 바라봄(오전에는 하행선이 오후에는 상행선에 햇볕이 비추어진다.), 2019ⓒ유광식
석남체육공원 보도육교 위에서 인천항 방면으로 바라봄(오전에는 하행선이 오후에는 상행선에 햇볕이 비추어진다.), 2019ⓒ유광식

18년 전,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올 때 경인고속도로를 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의 인천 이야기의 시작은 경인고속도로와 함께 하는 셈이다. 시원하게 달리기를 했지만 이후 속도를 내지 못할 이유도 숱하게 섞였다. 그 이유가 쌓이고 쌓여 윤이 나 세월의 흐름을 묵묵히 지켜낸 경인선의 노고에 애틋해졌다. 최근 진출입로가 몇 군데 뚫렸는데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일반도로화의 수순이라고 한다. 경인고속도로의 52년차 철야 근무가 대견하기도 안쓰럽기도 하지만 이젠 휴가를 떠날 참이니 안심도 된다.

 

가정역 부근 루원시티 개발 현장, 2018ⓒ유광식
가정역 부근 루원시티 개발 현장, 2018ⓒ유광식
(가정동 483-7) 옛 가정1동 행정복지센터 건물, 2018ⓒ유광식
(가정동 483-7) 옛 가정1동 행정복지센터 건물, 2018ⓒ유광식

2019년을 정리하는 타임이다. 나라 안팎의 일들이 산더미, 암초 밭이라고 해도 늘 지내고 보면 종점이듯 은은한 종소리에 하루를 묻게 된다. 도로의 복작거림이 도로 밖으로 불똥이 튄 듯 석남보도육교 옆 석남체육공원은 아이,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한데 섞여 있다. 공원에는 체육시설도 있고 청소년들의 농구대도 있으며 아이들 그네와 미끄럼틀도 있다. 어르신들의 장기배틀과 내기 윷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네모반듯한 정감 어린 장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장소가 트이지 않은 채로 구역마다 펜스와 나무로 경계 지어진 모습에 답답한 마음도 든다. 도로 교통상황과 같은 이치로 제각각인 삶의 모형을 맞춰 사는 것이 간혹 버겁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모난 부분을 깎고 맞추어 ~를 이루며 지내 간다. 반드시 부동산의 차이는 아닐 것이라 믿는다. 부동산 말고 온 계층이 어울리는 놀이동산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데 말이다.

 

거북시장(도로 일부를 점유해 시장이 세워졌다.), 2017ⓒ유광식
거북시장(도로 일부를 점유해 시장이 세워졌다.), 2017ⓒ유광식

밤에도 자주 육교를 건넌다. 한편 집 가까이에는 7호선 공사 때문에 멀쩡한 육교계단이 없어진 석남제1고가가 있다. 언제인가 육교 철거 사실을 모르고 스스로 용감하게 도로를 걸어 내려오는 위험천만한 사람의 모습을 목도하기도 한다. 귀신인가 하며 놀라기도 하는데 서로가 위험한 일이다. 육교가 좀 더 만들어지기를 바라지만 경인고속도로에 횡단보도가 설치되는 날이 더 빠를 것도 같은 농담 섞인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밤중 도로의 가로등은 뿌연 빛을 반사하는 달처럼 보이고, 오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별똥별이 되어 사라지고 다가오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아니 소원을 빌게 된다. 윤이 났으면 좋겠다.

 

한밤중의 경인고속도로, 2017ⓒ유광식
한밤중의 경인고속도로, 2017ⓒ유광식
한 겨울밤 석남제1고가 육교 위에서(현재는 사라짐), 2018ⓒ유광식
한 겨울밤 석남제1고가 육교 위에서(현재는 사라짐), 2018ⓒ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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