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은 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명상활동가)’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글: Jacob 김 선
‘Tu ne vois pas que le monde il est jaloux du bonheur que je te donne. Tu connaîtras plus tard le bonheur que tu avais.’
'내가 너한테 주는 행복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어. 좀 있으면 지난날의 행복을 알게 될 테니, 두고 봐‘
같은 층에 사는 레몽 생테스라는 남자가 뫼르소 방으로 들어온다. 동네에서 그는 여자들을 등쳐먹고 산다고들 한다. 등쳐먹다(talk the shirt off one’s back)는 표현이 참 재밌다. '등을 쳐서 뭔가 원하는 바를 얻는 행위'인데 레몽의 대상은 여자들이고 그녀들은 레몽의 농간에 넘아가 레몽이 원하는 뭔가를 빼앗긴 것이다. 등쳐먹는 족속은 지금 우리 안에도 넘쳐난다. 최근 몇 년동안 한국사회를 비롯한 전 세계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광풍에 많은 이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가상화폐 시대를 기대하며 많은 이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모습을 가능케 한 개발자들이 어쩌면 잘 모르는 사람들을 미래기술로 등쳐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그 결말은 아직 모르겠다.
아무튼 레몽도 분명 그런 류의 사람인 듯 하나 일단은 그냥 나쁜 사람인 것 같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그는 자신의 직업을 창고 감독이라고 말한다. 대체로 동네에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독특한 뫼르소는 그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레몽은 뫼르소 방에 잠깐 들어와 앉아 자신의 얘기를 자주 하곤한다. 뫼르소가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편견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있는 그대로를 보면서 그대로 받아 들이는 모습은 레몽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축복일 것이다. 레몽은 키는 꽤 작고 어깨는 딱 벌어지고 코는 권투 선수의 코 같다. 싸움한 코다. 레슬링 선수 귀가 뭉뚱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옷차림은 언제나 반듯하다. 사기꾼들의 전형이다.
뫼르소는 층계를 올라가다 레몽이 자기 집에 소시지와 포도주가 있다고 들어오라고 해서 그의 방에 들어갔는데 그의 집 역시 방 하나에 창문 없는 부엌이 딸려 있었다. 등쳐먹는 사람치곤 형편이 말이 아니다. 그의 침대 벽에는 천사 석고상과 운동선수들 사진과 여자의 나체 사진이 두서너 장 걸려 있다. 방안은 더럽고 침대는 어질러져 있었다. 그는 석유램프를 켠 다음 지저분한 붕대 하나를 꺼내 오른손을 싸맸다. 어떤 녀석이 시비를 걸어서 싸웠다고 했다. 권투 선수 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법이다.
레몽은 자신이 고약해서 아니라 참지 못하는 성미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약한 사람이 성미가 급한 법인데 이것을 변명이라고 하니 레몽은 좀 그렇다. 레몽은 그 녀석과 싸우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줄곧 붕대를 감고 있었다. 뫼르소는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관조적인 것인지 무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포즈다. 레몽은 자신이 싸움을 건 게 아니라 그녀석이 버릇없이 굴어서 그랬다고 계속 말하는데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려는 어린아이와 같다. 동조를 구하는 레몽에게 뫼르소는 정말 그렇다고 믿어준다. 그러자 레몽은 얼시구나 그 사건에 관한 충고를 구하고 싶었다며 뫼르소를 추켜 세운다. 뫼르소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뫼르소가 사나이답고 세상 물정을 잘 알아서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뫼르소에게 볼 수 없는 면을 레몽만 엉뚱하게 발견한 느낌이 싸하다. 자기를 도와준다면 뫼르소의 친구가 되겠다고 레몽은 말한다. 친구가 되어 준다고 선심을 쓰는 듯한 레몽의 말은 오히려 뫼르소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뫼르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뫼르소에게 친구가 되고 싶냐고 다시 물었을 때 상관없다고 뫼르소는 말한다. 생테스는 만족해한다. 친구라는 말을 반복한 보람이 있는 순간이다.
소시지와 와인을 먹으면서 레몽은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약간 망설이는 말투로 어떤 여자를 알게 되었는데 자신의 정부였다고 말한다. 여자를 등쳐먹은 내력이 나오고 있다. 그가 싸운 사람은 그녀의 오빠라고 한다. 등쳐먹은 대가일 것이리라. 레몽은 정부의 살림을 차려 주었는데 자신이 속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등쳐먹힌 것인가? 방세와 식비 등 천 프랑이 들었는데 그녀는 아무 일도 안하면서 도저히 생활할 수 없다고만 한다고 한다. 꽃뱀에게 되려 물린 상황 같다. 레몽은 그녀에게 잠시라도 일을 하면 자신이 짊어질 자질구레한 비용 부담은 덜어진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일을 하지 않고 생활할 수 없다는 소리만 해 대는 걸 보고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등쳐먹을 요량으로 시작한 정부와의 관계가 어그러져 보이니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레몽은 정부의 핸드백 속에서 복권 한 장을 발견했는데 그녀가 어떻게 샀는지 설명을 못했다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얼마 뒤 그녀의 방에서 전당표 한 장을 발견했는데 팔찌 두 개를 잡힌 것이었는데 레몽은 팔찌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하면서 자신이 속고 있었다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된다. 왜 속임을 당하고 있었는지 알 것도 같다. 그래서 레몽은 그녀와 관계를 끊었는데 그 전에 먼저 그녀를 두들겨 패 주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레몽에게 구타유발자인 셈이다.
레몽의 속 마음은 어땠을까? 영화 구타유발자의 한 장면처럼 정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가장 잔혹한 방법인 땅 속에 묻고 싶었을 것 같다. 그래도 구타는 안된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안된다는 것을 레몽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 자신이 그녀에게 주는 행복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모르고 있고 좀 있으면 지난날의 행복을 알게 될 것이라고 뫼르소에게 말하는 것이리라. 많이 답답했나 보다. 뫼르소에게라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레몽은 정부를 피가 나도록 때렸는데 전에는 그녀를 때린 일이 없었다고 한다. 손찌검은 했지만 살살 했던 셈인데 이번엔 본격적이었다고 말한다. 본격적인 것이 시작됐으니 앞으로가 걱정이다. 그런데도 속 시원하게 다 주지 못해서 충고가 필요하다고 뫼르소에게 말한다.
우리의 뫼르소는 어떤 충고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