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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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예찬
  • 안정환
  • 승인 2020.02.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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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안정환 / 연세대 의공학부
신포시장

 

구경 한번 와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화개장터> - 조영남

 

가수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 섬진강을 따라 영남과 호남의 경계인 하동에 5일장인 화개장터는 조선시대부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유래가 깊은 전통시장이지만 결정적으로 조영남의 노래가 히트를 친 것이 더 유명해진 계기가 되었다. 전통 시장은 구도심 어딜 가도 만날 수 있다. 가깝게는 신기, 간석, 구월동, 십정동 등 각 시장마다 저마다 이색적인 자랑거리 하나쯤 갖고 있어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한 품목에 따라 시장을 선택하면 될 터이다.

 

우리나라 전국의 전통시장의 개수가 대략 1,450개 정도로 조사되어 있다. 그 중 인천에 소재한 전통시장은 32개이다. 시장의 모습은 비슷해 보이나 각각 개성도 다르고 저렴한 가격대로 구성되어 있는 먹거리와 찬거리는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보글보글 지글지글 끓고 볶는 소리와 향기는 오감을 자극하고 기어이 지갑을 열어 쓸데없는 과소비(?)를 하도록 유혹당하기도 한다. 각종 떡이며, , 나물, 구수한 팥죽, 족발, 튀김닭, 어묵, 떡볶이 등등 굳이 미식가가 아니라도 이쯤 되면 맛의 감각을 넘어서게 된다. 전통시장 어디에나 있음직한 왕족발’, ‘3대째 전집’, ‘참새 방앗간’, ‘국산 고기만 팝니다 순이네 정육점등등 그 이름도 정답다. 쓸데없이 꼬부랑 영어로 간판을 달거나 국적도 없는 단어를 혼합한 기묘한 간판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최근에는 전통시장 살리기 정책에 따라 많은 부분이 현대화 되었다. 우선 하늘이 뻥 뚫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바닥은 질퍽거렸고 피할 곳이 없어 장보기 물건들이 흠뻑 젖기 일쑤였다. 여름이면 작렬하는 폭염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고,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으로 추위에 떨어야 했었다. 지금은 아케이드 천장을 설치하고 각 점포마다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어 예전의 불편은 이미 향수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러나 대형 할인마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뒤로 전통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발길은 점점 멀어져 갔다. 화려한 공산품들과 덤으로 주는 할인행사, 실내에서 의식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은 좀 더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당겼다. 리어카 보다 더 큰 카트를 끌며 할인물건을 집어 넣다보면 어느새 십만원은 훌쩍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원리는 분명 필요할 것만 같았던 그 많은 할인물건들이 집에 오면 어느새 넘치거나 필요 없거나, 부담스럽거나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방 구석구석마다 한번 쓰고 던져놓은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고, 창고나 수납장에도 없어도 될 물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그 물건들에 기가 눌릴 판이다.

 

3년 전, 신기시장 근처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불편해서 시장은 구경만 하고 정작 쇼핑은 습관대로 대형마트로 부모님과 함께 다녔었다. 여전히 한 번에 몇 십 만원어치를 쇼핑해야만 만족스럽게 집으로 오곤 했다. 가족들은 코앞에 전통시장을 두고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신기시장은 남부종합시장과 두 개가 합쳐져 제법 큰 규모다. 이곳에 2대째 한 곳에서 호떡을 굽는 포장마차가 있다. 젊은 아주머니 두 분이 굽고 포장하고 하는데도 거의 매일 줄을 서야 살 수 있는 유명한 집이다. 뻥을 좀 보태면 이곳에서 먹어본 호떡은 가히 인생호떡이라 할 만 했다. 점차 그 맛에 이끌려 시장 통에 자주 가면서 이제는 전통시장 예찬론자가 되어 버렸다.

신기시장
신기시장

 

우선 전통시장에 가면 큰돈이 없어도 맘이 편하다. 덤으로, 할인으로 사람을 유혹하거나 몇 개씩 세트로 묶어서 팔지 않는다. 필요한 것을 딱 한 개만 사고 싶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소소한 먹거리 또한 길거리에서 와구와구 먹어도 전혀 부끄럽거나 주변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와글와글 소란스럽고 질펀한 난장이 전통시장의 정겨운 분위기다.

 

또 다른 전통시장인 신포국제시장은 인천에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호선을 타고 인천역에 내리면 역 바로 앞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의 정문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삼국지 벽화거리와 근대박물관, 화교역사관을 둘러보고 신포역 방향으로 골목을 끼고 걸어가다 보면 신포국제시장이 나온다.

그 유명한 신포닭강정과 중국인들이 만든 공갈빵은 많은 이들이 찾는 음식이다. , 차이나타운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타 지역 사람들과 한국을 여행 온 외국인도 한번 씩은 둘러보는 인천의 대표 볼거리다. 닭강정을 사러 온 사람들의 입구까지 길게 늘어선 줄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만화축제로 유명한 가좌시장은 정문부터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러워 이곳을 찾는 이들을 즐겁게 해준다. 곱창 매니아들이라면 한번쯤 가보았을 모래내시장, 좀 멀지만 외포항 젓갈수산시장은 각종 다양한 젓갈부터 해산물을 파는 수산시장으로 강화도 바다 앞에 위치해 항구의 모습도 즐겨 볼 수 있다. 온갖 나물과 싱싱한 생선과 각종 작업복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석바위 시장, 그 크기에서 압도당하는 없는 것 없는 부평시장, 한편으로 십정동의 축산물 도매시장은 정육점이 골목에 즐비해 있어 육안으로 비교해보며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격도 마트보다 훨씬 저렴하다. 인심 좋은 주인을 만나면 덤으로 돼지껍데기도 얻을 수 있다.

 

고등학교를 지방에서 나왔기에 가끔 친구들이 인천을 찾아온다. 이들에게 인천의 무엇을 보여줄까 고민하다 가장 먼저 전통시장을 데려간다. 인천의 맛과 정과 색깔을 읽을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어느새 전통시장 해설사가 되곤 한다. 만족스러워하는 그들을 보면 뿌듯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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